쉬어가는 페이지

by 글밤


전자책이 보편화된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책만을 읽는다.


전자책이 가진 단점이라면, 물론 그것은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만의 단점이겠지만 편리함 때문에 책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친구는 이북 리더기로 책을 읽는다.

그 친구와 얼마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거기에 진열되어 있는 리더기들을 보면서 나도 살짝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더 좋아진 성능의 리더기를 한참을 구경했다. (그리고 아마 이북 리더기는 점점 더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종이책을 고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처음은 책이라는 물질성이 가진 특별한 외관 때문이다. 각각의 종이의 질감, 그리고 그것을 직접 내 손으로 느끼며 넘기는 감촉,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책이 가진 고유의 향기 등

그리고 또 하나는 여백이다.

문서를 작성하고 마지막으로 여백을 확인하는 과정은 인쇄했을 때 조금 더 깔끔하고, 눈에 잘 띄기 위해서 하는 작업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을 거쳐 책 속의 내용들은 일목요연하게 여백 정리가 되어있다.

그 여백의 사용법은 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그 여백에 자신의 글을 적는다.

문장을 읽고 느낀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사라지기 전 붙잡아두기 위해.

(물론 리더기도 메모가 가능하다.)


나는 여백에 아무것도 적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의 감정과 생각을 따로 정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여백 자체가 또 다른 역할을 하는 이유도 있어서이다.

그 여백들은 나에게 쉬어가는 페이지이다.

책을 읽다 보면 눈이 피로해진다. 그러면 잠시 쉬어갈 공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 먼 풍경을 바라보거나 내가 있는 공간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지만, 금방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기에 책의 공백, 빈 페이지들을 쳐다보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효과적인 느낌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감정과 생각도 피로해진다.

책을 통해 너무 많은 생각들이 밀려들면 잠시 멈추고 그 생각들이 '나'라는 여과기를 통과할 수 있는 시간,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도 그냥 멍하니 책의 여백이나 멈추게 한 문장의 행간을 바라본다. 그것이 책에서 멀어지지 않고 계속 독서를 이어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다.



책 한 권을 한 번에 모두 읽는 것은 힘든 일이다.

중간에 계속 쉬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딴청을 피우게 된다. 만약 어떤 건물을 계단을 통해 오른다고 했을 때, 계단과 계단 사이, 층과 층 사이에서 쉬어가는 것처럼, 책의 여백들은 책을 완독 하기 위한 쉬어가는 페이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만의 여백 활용법이고, 독서방법에 정답은 없을뿐더러, 우리가 각기 다르듯 모두의 독서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건 결국 꾸준히 독서를 즐기는 것이다.



한 해의 절반이 어느새 지나가고 있다. 지금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라고 생각하며, 그 페이지를 독서로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수요일 연재
이전 17화소진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