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르다고 틀린건 아냐

아몬드(손원평)을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만약 내가 아이를 낳지 않고 혼자 살았다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가, 부모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소년의 이야기가 이렇게 인상 깊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혼자 남은 소년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 시티 미아. 이 소년의 성장기. 그리고 미묘한 마음 변화를 읽다 보면 마음 한쪽이 따스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나와 다른 모습. 보통, 평균의 모습이 아닌 소년을 우리는 손가락질하고 수근 거린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 세상에서 보통, 평균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소년의 이야기. 이 소년을 응원하고 싶다.


열여섯 소년 선윤재. 소년은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 아몬드라 불리는 편도체가 작아 분노도 공포도 느끼지 못하다. 미안한 감정, 행복한 감정, 왜 화가 나고 왜 웃고 우는지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느끼지 못한다. 그냥 글자 그대로만 느낄 뿐. 엄마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 덕에 별 탈 없이 지내던 소년에게 크리스마스이브이자 생일날 비극적 사고가 일어난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죽고, 엄마는 뇌를 다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윤재를 보는 사람들은 온통 호기심 가득한 눈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 엄마가 곁에 없자 윤재의 하루하루는 힘들어진다. 이런 윤재 앞에 ‘곤이’가 나타난다. 곤은 13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 누구도 곤을 이해하거나 알려하지 않는다. 곤은 온통 분노로 가득 차 있고, 모든 화를 윤재에게 쏟아 내지만 감정의 동요가 없는 윤재 앞에 오히려 쩔쩔맨다. 윤재는 이런 곤이 밉지 않고 곤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가는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생각해 본다.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그런 상태가 되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내 앞에서 사랑하는 할머니가 죽고, 엄마는 다치게 된다. 그걸 보면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나? 더군다나 그게 병이라는데. 하지만 사람들은 궁금하다.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느냐고, 그게 사람이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윤재가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마치 그게 윤재의 잘못인 양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윤재였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상상했지만 알 수 없었다. 나는 감정 과다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정 부족도 아닌 사람이니까. 반대로 내 아이가 윤재와 같다면 나는 아이에게 어떤 감정으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90)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지 죽어도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132)

더 끔찍한 건 뭔지 아니..... 애초에 낳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그 애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모든 게 지금보다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야. 그래 끔찍하게도 친아비가 아들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다. (222)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안 한 사람이 있을까? 아이는 분명 내 인생 행복한 부분이지만, 아픔의 한 부분을 담당하기도 한다. 아이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불쑥불쑥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 덕분에 감사한 일도 고마운 일도 많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고 세상을 알아간다. 또한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들을 알아가고 있다. 내가 윤재의 엄마였다면 나는 윤재를 어떻게 키웠을까?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아니면 더 독하게 그리고 강하게 키웠을까? 지금도 아이를 키우면서 수많은 ‘왜’라는 질문을 한다. 나와 이렇게 다를 수 있음에 놀라고, 다름을 인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친 여자처럼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기를 반복하면서 아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도 어른이 되기 위해 미친 듯 몸부림치고, 제 감정과 싸운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게 아니라고 온 마음과 온몸으로 치열히 전쟁을 치른다. 평범한 우리 아이도 이럴 진데 윤재는 오죽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윤재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것. 그런 변화가 고맙고 감사하다. 세상엔 우리가 다르다고 구분 지은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그 누구도 하나의 잣대로 다름을 나쁨으로 구분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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