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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 이유는 없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피곤해져

내가 말하고 있잖아(정용준)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이 생물(?)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여자인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결이 다른 생물(^^). 이제는 이해라기보다 아이들을 그 자체로 인정하면서 모든 것이 평정(?)되었지만 지금도 때론 저들은 왜 저럴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집 남자아이들은 내 앞에서 말을 잘한다는 것. 어떤 이야기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입에 풀을 칠한 듯 말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우리 집에선 그런 일이 없어 감사할 따름이다. ^^


주인공 ‘나’는 말더듬이다. 말을 더듬 게 되니 친구도 없고 괴롭힘을 당한다. 나는 말 더듬는 것 말고도 골치 아픈 일 투성이다.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도 모자라 국어 선생이라는 작자가 걸핏하면 일어나 책을 읽으라고 시킨다. 내가 말도 잘 못하고 책도 잘 못 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주인공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엄마다. 엄마는 요즈음 말로 금사빠다. 때문에 이별도 금방이다. 그래서일까?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엄마는 집에 오면 술을 마신다. 뭔가 멍해 있는 엄마가 상냥하게 말할 때는 직장에서다. 엄마의 상냥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114로 전화한다. 114 전화 안내원으로 일하는 엄마의 친절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엄마와 둘이서 살던 어느 날, 엄마는 전 애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애인과 한집에 살게 되었다. 엄마의 애인은 나를 무시하고 가끔은 때리기도 하는데, 그래서 나는 애인을 죽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언어 교정원에 다니게 된 나는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그냥 살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 그냥 사는 게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이유야. 다른 이유는 없어. 돌멩이가 왜 딱딱한지 아니? 왜 나무는 말을 못 하게? 몰라. 나무도 돌도 몰라. 사람도 그래. 사는 데 이유는 없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사는 건 피곤해지고 슬퍼진단다. (102)


열네 살 소년에게, 그것도 말을 더듬는 소년에게 왜 사냐고 진지하게 묻는 아이가 있다. 그렇게 묻는 아이는 이 소년에게 어떤 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아이가 살고 있다는 게 신기했을까? 아님, 이 애도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했을까? 이 세상에 그냥 태어난 것은 없다고 했다. 이 세상에 어떤 쓸모가 되었든, 의미가 있는 태어남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소년 주변에는 참 괜찮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 덕분에 소년은 조금 더 성숙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말 더듬는 게 완전히 고쳐진 것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글을 잘 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소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말을 잘한다고 그 사람이 대단하다 생각지 않는다. 말로 인해 망한 사람도 많아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귀를 열고 입을 닫아야 한다는 말에 동감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말보다는 귀를 열어 많이 들어주는 그런 엄마이고 싶다. 꽤 괜찮은 소설. 이런 소설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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