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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가면은 몇 개일까?

독(이승우 작가)을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20년 만에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재출간된 이승우의 장편 소설 ‘독’. 이 작품은 지금은 폐간된 ‘소설과 사상’에 ‘독’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지만, 1995년 ‘내 안에 또 누가 있나’로 출간된 소설이라고 한다. ‘스스로 키운 망상 안에서 세상의 속죄양이자 구원자로 변신하는 반 영웅의 가짜 혁명 이야기’(책 뒤표지)라는 책 뒤쪽의 굵은 글씨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스스로 키운 망상이라는 문구에서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가 펼쳐질 거란 생각이 들었고, 다 읽은 지금은 혹 내 안에 다른 나는 누구이며, 내가 품고 있는 ‘독’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일기의 주인공은 임순관. 그는 자폐성향을 지닌 34세 남자로 자서전을 자비 출판해주는 출판사 ‘시민들’의 대필 작가다. 대필 작가로 밥벌이를 하지만 임순관은 세상과 사회적 교류가 거의 없다. 이웃들과도 교류하지 않는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도 자신만의 시간 감각대로 살아간다.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골라 죽이고 그 살인 현장에 화살을 남긴 연쇄살인사건, 아버지까지 살해한 사형수 손철희의 자서전을 대필하고, 이와 함께 젊고 아름답고 부유한 여자(민초희)에게 거액을 받고 자신의 시간을 팔아 자신이 본 것을 써야 하는 거래도 맺고 있다. 그런 임순관에서 어느 날 ‘신천지 설계협의회’라는 단체가 보내온 화살로 인해 삶과 자신의 내면에 균열이 인다.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사건이 대기하고 있는 것일까


책을 덮고 생각했다. 임순관이 말하고 있는 손철 희나 민초희는 혹 임순관 자신이 만들어 낸 허상은 아닐까? 하고. 사회적 교류가 없는 임순관은 철저히 혼자의 시간을 산다. 자신이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 왜 그들은 나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일까? 임순관의 일기이기에 오로지 임순관의 생각 안에서 글은 펼쳐진다. 그리고 그 글을 보면서 다양한 추측을 하게 된다. 혼자만의 생각 벽이 견고하고 높을수록 위험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가면을 벗으면 민얼굴이 나오지요. 여러 개의 가면을 벗어야 민얼굴이 나오는 사람도 있긴 해요. 너나 할 것 없이 민얼굴은 혐오스럽지요. 누구도 민얼굴을 해가지고 세상에 나다닐 수 없어요. 그러니까 가면을 쓰지요. 어떤 사람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지요.’ (265) 지금 나도 내가 알든 모르든 다양한 가면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날은 밝은 내가 나타나고 어떤 날은 어두운 내가 나타나는 것처럼.


20년을 넘게 만난 친구의 진심을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믿었고, 친했고, 악의라고는 전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기에 그 친구의 진짜 얼굴을 만났을 때 나는 깊게 상처 받았다. 그 민낯을 살피지 않았던 내가 잘못인 걸까? 아니면 제대로 감추지 못한 그 친구의 잘못인 걸까? 사이가 어그러지고 사람에 대해 전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그 사건. 그 사건이 일어 난지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친구를 웃는 낯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친구를 통해 들은 진심을 나만 몰랐다는 사실에 씁쓸할 뿐. ‘화살은 육체에 상처를 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에 충격을 주기 위해 활을 떠난다. 화살이 하늘에서 날아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화살은, 그것이 어디서 출발하든, 하늘의 복판을 가로질러 사람의 가슴을 겨냥하고 날아온다.’ (298)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말의 화살’을 생각했다. 만약 친구와 치고받고 싸웠다면 툭툭 털고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말로 패인 깊은 상처의 화살은 여태까지 쉽게 아물지 못하고 있으니까..


나도 사람이기에 ‘독’을 품지 않았다고 말 못 한다. 살면서 한 두 번은 ‘독기’를 품고 노력할 때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독기가 타인에게 정조준되면 너무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가끔 오랜만에 연락된 친구들은 말한다. ‘네가 이런 면이 있었다니... 너무 놀라워.’ 나도 나로 인해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이런 성격의 소유자였나? 싶어서. 우리 안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숨어 있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양한 감정과 성격이 나타날 채비를 하고 있으니까. 그 다양함 안에 악의를 감추려 교묘하게 날조된 감정도 숨어 있음을 안다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제2의 임순관 같은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성향과 행동을 교묘하게 합리화시키고, 악의를 숨긴 채 사건을 일으키니까. 20년이 지난 소설이지만, 지금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음에 놀란다. 이승우 작가의 책은 결코 쉽지 않지만, 쉽지 않기에 나에게 생각의 다양함을 던져 준다. 사람들이 가진 이중성,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가면들. 나는 오늘 어떤 가면을 쓰고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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