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는 반려견이 될 수 없어

소멸 세계(무라타 사야카)를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점점 부모의 곁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녀석들의 투박한 말은 때론 나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 상황마저도 농담으로 승화시키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온다. 스스로 큰 줄 알고 때론 엄마인 나에게 툭툭 상처 주는 말을 하지만 이 아이들은 알까? 이 녀석들을 키우기 위해 좋아했고, 재미있어했고, 즐거웠던 회사를 그만둔 꽃다운 30대 초반의 엄마의 모습을? 만약 그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낮 동안 아이들의 육아를 맡아주겠다고 했다면 나는 회사를 다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에도 손 내밀 수 없는 상황이 회사를 그만두게 했고 지나고 보니 그래도 잘했구나 싶은 이유는 아이들의 모든 처음을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키우다 우울증으로 삶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나 역시도 우울증에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곁에서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어 버틸 수 있었는데... 사랑해서 결혼했고, 그래서 가족을 만들었는데, 왜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만 있는 것인지.. 만약 사회적 안전망이나 가족들이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준다면 이런 아픈 상황은 줄어들지 않을까? 이젠 어느덧 많이 자란 아이들을 보며 가족이라는 의미나 육아라는 의미를 생각하지만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한다. 만약 출산과 육아마저도 나라에서 통제하는 상황이 온다면.. 모두가 행복해 질까?


2차 세계 대전으로 많은 남성들이 전쟁터로 떠나자 저출산이 가속화된 평행세계. 이곳에서는 섹스를 통해 아이를 낳지 않는다. 결혼도 단체 미팅 프로그램처럼 원하는 조건에 맞게 매칭 시켜준다. 이들은 결혼을 해 가족이 되지만 성관계는 하지 않는다. 이들은 인공수정을 통해서만 아이를 얻는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는 가족이기에 성행위를 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근친상간으로 벌을 받는다. 이런 사회 속에서 주인공 아마네는 섹스를 통해 태어난 아이다. 남다른 방법으로 태어난 아마네는 자신의 출생에 이질감을 느끼며 연애, 섹스, 그리고 결혼, 가족이라는 제도에 의문을 갖는다. 아마네의 엄마는 자신이 섹스를 통해 아마네를 낳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아마네는 남편과 실험 도시로 이주하게 되고 가족이 없는 시스템이 적응하게 된다. 모두의 아이와 모두의 엄마. 아이를 낳지만 내 아이는 아니고, 모두의 아이가 되는데... 도시 전체가 인간 아이를 애완동물처럼 대하는 이곳. 이곳에서 아마네는 정착할 수 있을까?


아이를 도시 전체에서 키워준다니 굉장히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무섭다. 인공수정으로 누구의 아이인지 모를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은 모두의 아이가 된다. 책임질 필요 없고 그냥 예뻐하기만 하면 된다. 육아 스트레스도 없고, 내 삶을 살면 그만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예뻐하기만 하면 되는 이 시스템. 합리적인 시스템 같지만 소름 끼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받아들여진다면 어떤 세상이 될지 모르겠다. 그럼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엄마들은 확실히 줄어들 텐데, 왜 오싹해지는 걸까?


왜 사람들이 가족을 필요로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살아가는데 합리적인 방식이라서 그렇다고들 하잖아. 아이가 없는 경우엔 물론 그렇지. 합리성만 놓고 보자면 아이가 없는 게 낫다니까. 우리는 점점 진화하는데 가족이라는 시스템만 남아서 헛도는 느낌이야. (141) 이 글을 읽으며, 이 책을 읽으며, 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한다. 버틸 수 있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덕분인데 이런 세상에선 가족의 의미가 없어진 거니까. 내 아이들을 본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고등학생이 되고, 점점 독립적이고 자신의 세계에 맞게 반항하기도 한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아이를 잡아 놓을 수 없고, 내 틀에 맞는 아이로 키울 수도 없으니까.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건 또 무엇인지.. 가족을 시스템으로 치부할 수 있는 건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편의점 인간이라는 책도 신선한 충격을 줬었는데 이 책도 그렇다. 정말 미래에는 지금의 가족이란 시스템이 사라지게 될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정상, 비정상, 보통의 기준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