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의 여왕(이유)를 읽고
세상에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데, 쓰레기에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처음엔 쓰레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남들은 쓰레기라 칭하는 그것들을 모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으니 쓰레기 역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전 물건이 귀한 시절에는 지금처럼 쓰레기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집이나 물건이 넘쳐난다. 누군가는 물건을 너무 쉽게 버려 문제고 누군가는 물건을 버리지 못해 문제다. 사람들의 인생에 적당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듯 우리의 삶 역시 시간과 함께 적절한 정리가 필요하다. 모든 물건들을 껴안고 죽을 수 없듯, 모든 것을 지키며 살 수도 없다. 가난하고, 그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그들의 삶, 그들에게 진정 편안함은 어쩜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슬프다.
재수생 해미는 대학에 가는 대신 포터를 몰며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 지창씨의 일손을 돕는다. 고물상은 지창씨의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고물을 소중하게 다룬다. 해미는 동네를 돌며 폐지와 고물을 수거하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고물상 일의 진리를 알아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지창씨가 해미 몰래 출장을 다님을 알게 되고 그 일이 고물과는 상관없는 유품 정리 일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동창 정우성 으로부터 알게 된 ‘이튜늄’ 뽑는 것에 미쳐있을 때 해미는 아버지를 대신해 유품 정리에 뛰어든다. 해미에게 유품 관리 일은 아주 오랫동안 해온 것처럼 거침없고 혈흔과 시취가 밴 공간을 깨끗이 지워내고 정리한다. 해미가 유품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아버지 지창씨는 생의 마지막 반전이라도 되는 양 이튜륨을 뽑아내고자 하는데...
작년에 유품 정리사란 직업을 가진 사람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그 당시 친척 어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있었기에 더 가슴에 와닿았던 기억이 있다. 갑작스레 돌아가셨기에 당신 살아생전 물건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셨다. 누군가는 고인의 물건을 가지고 싶었던 사람이 있는 반면, 그건 쓰레기 일뿐이라고 무시했던 가족이 있어, 그걸 바라보는 또 다른 3자는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내가 그 죽음의 당사자나, 가족이 아니기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때 생각한 것은 삶에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나는 얼마만큼의 흔적을 남기고 살아가게 될까? 블로그에 나의 글이 있을 것이고, 간간히 남긴 편지나 일기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 것들 말고는 내가 현재 가진 물건들인데, 내가 죽고 그것들이 쓰레기로 취급된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마음이 아프다. 살아 있던 시절 나에겐 소중한 물건들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아이들에게는 쓰레기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정신 말짱할 때 내 삶을, 내 물건들을 항상 정리하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고물을 취급하는 것과 유품을 취급하는 것. 누군가는 그걸로 돈을 벌지만 누군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엔 그들이 있어 삶이 정리되고, 물건이 정리된다.
죽음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안 된다. 여러 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누군가의 묵인 (64)
예전엔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건 내가 아직 젊다는 반증이었고, 아직은 죽음이라는 우울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죽음이 삶의 또 다른 연장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삶과 죽음은 같은 선상에서 존재한다.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고 영원한 죽음도 없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 환생하는 삶도 있을 테니까.
내 삶을 뒤돌아본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