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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품는 게 힘든 이유는 고통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기억전달자(로이스 로이)를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한 때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던 아이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태어날 때부터 직업이든 꿈이든 정해진 그 뭔가가 있다면 좋겠다는, 그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정해준 그 길로 갈 텐데.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생각을 한다.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인생이 뒤죽박죽이고, 엉망진창이 될지라도, 스스로 찾아가는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흔들고, 하고 싶은 게 해마다 변하고 달라져도, 이런 생각의 변화가, 다른 욕구들이 생기는 그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단다. 이런 다양한 생각을 하는 아이에게, 너는 아직 공부해야 하는 학생이니 너무 많은 생각 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를 보면 웃음이 난다. 뭘 해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는 아이가 좋아 보인다고나 할까?


이게 정답이다 하고 가르쳐 주면 좋겠지만 나도 내 인생의 정답을 알지 못한다. 여전히 고민하고 여전히 생각이 많은 나를 보며 큰 아이도 어쩜 나와 같은 성향의 아이는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생각 속에서 더 나은 나를 찾고자 노력한다. 매 순간이 선택이고 그 선택을 위해 우린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생각 자체를 통제하는 세상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 그 이상의 상상을 할 수 없는 세상이 있다면. 또 얼마나 따분할까?


여기 어떤 세상이 있다. 이곳은 똑같은 형태의 가족이 있고,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이곳에서는 열두 살이 되면 위원회가 정해준 직위에 따라 어른이 된다. 주인공 조너스는 열두 살이 되는 그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다. 자신은 어떤 직위를 받게 될지, 어떤 어른이 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날. 모든 친구들이 직위를 받았지만 조너스는 그 어떤 직위도 받지 못했고 마지막에 위원장인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가 되었다고 발표한다. 기억 보유자는 마을에서 단 한 사람. 유일하게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선임 기억 보유자는 기억 전달자가 되어 조너스를 훈련시킨다. 처음엔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들이 조너스를 지배하지만 나중엔 고통에 시달린다. 전쟁이나 기타 과거 사람들의 아픔이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르는데....


인간이 가진 희로애락. 즐거움은 좋지만 노여움이나 슬픈 감정은 가능하면 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이젠 안다. 이 세상은 영원한 즐거움이나 행복이 없는 것처럼 영원한 슬픔이나 화도 없다는 것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진짜 감정이 없는 곳,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지만 진짜 내 가족이라는 연대감은 없는 곳, 허약하고 평균과 다르다면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도 당연한 행동이 되는 곳. 날씨를 조절해 언제나 좋은 날씨를 유지하고, 뭐든 정해진 틀 속에서 정확하게 이뤄지는 곳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예측 가능한 모든 일들. 예측하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곳. 과연 이런 곳이 진짜 안전하고 행복한 곳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날에는 교통이 거의 마비 상태에 빠지기도 했단다. 그건 전형 실용적이지 않았지, 우리가 ‘늘 같음 상태’에 들어가자 눈은 쓸모없는 게 되었지. (143)

만약 이 세상이 늘 같음 상태라면 어떤 기분일까? 처음엔 날씨고 뭔고 늘 같아서 행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늘 같은 상태가 과연 행복한 상태이기는 한 것일까? 생각만 해도 무섭고 소름 끼친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단순하고 점점 똑같아지는 세상. 그 어떤 도전도 할 수 없는 세상이 과연 인류를 위한 세상일까? 생각하게 된다. 기억을 품고 있는 자. 그자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기억을 품는 게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고통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그러니까 기억은 함께 나눌 필요가 있어. ' (262)


아무리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라도 혼자에게만 해당된다면 그 기억도 외로울 것 같다. 기억을 나누고 같이 행복해지는 것. 이게 진짜 행복은 아닐까? 다행인지 조너스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기 위해 용기를 낸다. 그리고 힘들지만 실천으로 옮긴다. 이런 상황이 미래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세상이 오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 있다. 기왕이면 지금보다 더 좋은 사회가 되면 안 되는 것일까? 인간의 감정을 국가에서 통제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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