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박주영)을 읽고
‘그동안 나는 ’왜‘라는 질문 없이 살아왔다. 내게는 언제나 목적이 주어졌고, 그 목표는 ’어떻게‘가 중요할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시키는 방법을 배웠다. 목적을 달성시키지 못하면 도태되었고 순위권에서 밀려나면 생존이 어려워졌다. 왜 그래야만 하느냐는 질문은 사치였다.’ (275)
지금 우리는 ‘왜’라는 질문 없이 살아가는 사회의 꼭두각시는 아닐까? 잘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잘 살면, 잘 살게 되면 곧 행복이 올 거라고, 경쟁에서 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또 그렇게 무한 경쟁 사회 속에 내몰린다. ‘왜’라는 질문 없이. 이 사회가 우리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빼앗아 가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스파이들에 의해? 극히 일부 사람들의 생각이 우리들에게 그대로 내려오고 우린 그렇게 세뇌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시간이든 연일 다양한 00 사건이 터진다. 이런 사건을 보면서 생각한다.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 거라고. 우리에게 ‘왜’라는 질문을 빼앗아 간 그들에 의해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우리가 우매했던 것일까? 아님 그들이 우리를 농락했던 것일까? 책을 한 권 읽었을 뿐인데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이 사회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과 고치지 못하는 우리들이 안타까워서. 이런 책은 아이와 꼭 읽고 싶다. 요즈음 아이들 역시 '왜'라는 질문에 인색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이 책의 리뷰를 쓰고 있지만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매듭지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책을 만난 건 행복한 일이다.
소설은 어떤 기록에도 올라가 있지 않는 일란성쌍둥이 중 동생 D가 실종된 정신과 의사 언니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시작은 이렇지만 소설에는 모두 6명의 인물이 나온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쌍둥이 동생 D,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지난 십오 년의 기억이 사라진 X, 스파이로 승진을 원하는 Y, 엉망인 세상을 바로 잡겠다고 말하는 노련한 스파이 B, 팔리지 않는 소설을 쓰며 어느 순간 자신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소설가 Z, 스파이로 은퇴한 후 헌책방 주인으로 일하는 노인. 누군가에 의해 진실은 왜곡되고 조작되고 조정당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을 알고도 침묵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때문 아닐까? 내가 스파이인 줄 모르면서 스파이가 되어 버린 세상.
이 책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준다. 그 뭔가가 아주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그래서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뭔가를 던져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
가장 덜 양심적이고 덜 진지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는 잘못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가 속한 이 세상이 틀렸다고 느끼면서도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누군가는 먹고살기 바빠서, 누군가는 더 잘 먹고 더 잘살기 위해서. (47)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이 있어서 사람들은 자신이 더 많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132)
아주 많은 것들을 잊어버립니다. 문제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지워지는 기억들입니다. 우리가 잊어버리면 잊어버릴수록 유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88)
세상은 지배하기 더 쉬워졌다.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며 그저 그렇게 살다 죽는 건 억울한 일이 아니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 원망해야 하는 건 오로지 당신 자신뿐이다 그래서 자살은 당연한 것이다. (211)
학창 시절 질문을 하면 선생님도 아이들도 싫어했다. 정해진 수업 방법만 고집했던 선생님들은 질문의 답에 인색했고, 친구들은 질문하면 수업이 늘어지고 길어진다고 싫어했다. 어느 순간 수업 시간에 질문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 세상에 질문이 사라지면 그 사회는 망한 것 아닐까? 수많은 ‘왜’라는 질문을 마음 안에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왜를 알기 위해 행동했으면 좋겠다. 오로지 잘살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삶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왜’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루하루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른다. 막장 드라마의 10배쯤은 되는 이 막장 같은 현실에서 목소리 내는 어른들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의 나라인지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에 걸맞은 참 좋았던 책 읽기. 내 머릿속에서 ‘왜’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기를, 우리 아이들의 머릿속에서도 '왜'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