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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비밀. 인간을 외롭게 만든다.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를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사춘기를 치열하게 겪은 둘째 녀석 덕분에 나는 가능하면 생각을 유연하게 하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할 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건 아닐까? 였다. 그리고 잘 키운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도 했었다. 이제 그 치열한 사춘기가 지나가고 있는 둘째를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 있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의 영향은 지대하지만, 아이가 가진 성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어릴 때는 사랑으로 키우고, 사랑하면서도 배려해야 하고, 잘잘못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것만 제대로 한다면 사춘기 시절 사고를 쳐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 하지만 만약 내 아이가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성 정체성을 가졌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이야기는 주인공 ‘나’가 누군가로부터 과거의 사건을 연상시키는 메시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백골 시신이 발견된다. 그는 왜 죽었고, 왜 그게 지금 발견된 것일까? 이 소식을 접한 나는 중학교 3학년 어느 날로 시간이 이동된다. 엄마의 친구였던 미라 아줌마와 미라 아줌마의 딸 태라 누나와 아들 태리. 그리고 학원에서 알게 된 무늬와 희영. 그리고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공유했던 윤도까지 잊으려 했고, 잊었다 생각했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한창 예민한 시절. 여자가 아닌 남자 윤도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었던 것일까?


이 소설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어쩜 이렇게 내면 묘사를 잘했는지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 느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그것도 사춘기 소년이, 느꼈을 고통. 그리고 사랑. 열병 같은 첫사랑. 하지만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속앓이. 그래서 생각했다. 나의 십 대는 어떠했고 나의 첫사랑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물론 나는 여자를 사랑한 적 없기에 주인공 ‘나’가 느끼는 혼란함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묘한 간절함이나 그 묘한 설렘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는. 한 발짝 다가갔지만, 다시 뒤로 물러서야 하는 그 기분. 이 절절한 문장들이 온몸에 붙어 떨어져 나갈 것 같지 않은 느낌들. 책을 읽는 내내 혹 누가 주인공 ‘나’의 마음을 알고 놀리는 것은 아닐지, 혹 왕따가 되는 건 아닐지 두근거렸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본다. 누군가 성 정체성으로 고민을 한다면, 결국 부모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며 충고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게 내 아이라면 그런 충고에 반응할 수 있을까? 3자가 되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혹은 관대할 수 있는 누군가의 말이 송곳처럼 아프지 않을까? 이 책은 성 정체성의 혼란을 가진 중3 사춘기 남자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면, 김혜진 소설 '딸에 대하여'는 레즈비언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엄마의 입장에선 레즈비언 딸을 보는 게 힘들고 괴롭고, 아이 입장에선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에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 그 사실을 알게 될까 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그걸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예전보다 확실히 이런 퀴어 소설이 많이 나온다. 예전에 김봉곤(우리나라 게이 1호 작가라고 알고 있다)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이번 소설은 뭐랄까? 주인공 ‘나’의 감정이 조금은 이해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침묵과 비밀. 그것은 모든 걸 안갯속에 밀어 넣어버리고 인간을 외롭게 만든다. (53)

떠나간 것은 떠나보내야 한다. 기억도 사람도. 기억의 주인은 나다. (243)


주인공 ‘나’의 고민과 아픔, 고뇌와 절규, 그리고 성장까지. 독특한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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