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이현)을 읽고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와 엄마는. 애증의 관계일지 모른다. 어릴 때는 분명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는. 하지만 딸이기 때문에 효도는 해야 하는. 겉으로는 사이가 좋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엄마가 모르는 마음이 상처가 남아있는 정도? 1남 3녀의 중간. 어른들이 말하는 첫째는 첫째여서, 둘째인 오빠는 아들이어서, 막내인 여동생은 막내여서 사랑받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말.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던 말이다. 그런 나에게 6살이지 7살인지 모를 그때. 엄마가 아프면 나도 같이 아파서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그 당시 외갓집에서 살게 되었다. 무속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무당일 것이다. 그 무당한테 나를 팔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여기서 말하는 판다는 건 내 사주를 팔아 엄마와 거리를 두라는 의미 같은데(이것도 지금에서야 그렇게 하라는 건 아닐까 하는 짐작이지만) 어릴 적 그 이야기를 듣고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상실감과 허무함을,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이 그 당시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후 외갓집에서 살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버려졌다는 마음의 상처가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부모는 알지 못하는 내 어린 시절의 심리 상태. 그 시절의 나를 알기에 내 아이들만큼은 무서움과 공포 속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입히는 상처.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작은 것에도 자칫 잘못하면 아픔이 된다는 걸 알기에 아이를 키운다는 건 힘든 일이다. 특히나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더 살피고 살펴야 한다. 아몬드와 유원을 잇는 성장소설이라는 문구에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읽게 된 책.
학교에서는 평범한 고교생이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할머니 집에서 보낸 호정. 어리지만 그곳에서 피부로 느끼는 원망의 분위기. 다시 부모님과 살게 되면서도 화목한 가족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가족들에게는 냉정하고 쌀쌀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의 호정이다. 고등학교 1학년. 자신의 반에 전학생 은기가 온다. 그에게는 자신과 같은 뭔가 말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와 가까워지지만 그와 또 다른 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처음 시작은 ‘악의’였을까? 새로운 전학생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웃고는 있지만, 눈은 웃지 않고,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하지 않는, 가까워질 것 같은데 다시 물러서는 그런 느낌 때문에? 왜 우리는 상대가 말하지 않는데 알려하고, 그걸 타인에게 말하고 전하려 하는 건지.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세상에 대해, 이 힘든 전쟁 같은 세상에 대해 알아 버린 아이에게 왜 그렇게 차가운 시선을 던지는 건지.
상처 없이 세상을 동글동글하게 살아갈 힘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게 내가 울 아이들에게 바라는 작은 소망 같은 건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해 굉장히 까칠한 딸이었지만 이젠 그때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한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까지 해서 살려고 했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의 상처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니 영원히 그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를 부여잡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행복한 쪽으로, 행복해지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 노력할 뿐. 아이들은 누구나 성장하고 자라게 된다.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마음의 상처가 생기면서 성장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은기가 갖고 있는 상처는 호정에 비해 큰 것일 수 있지만 어떤 책에서 그랬던 것 같다. 상처의 크기는 사건에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내 상처가 상대에 비해 작을 수 없고, 상대의 상처가 내 것보다 작다고 마음대로 재단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 내 상처가 크니 네가 배려해 줘야 한다는 생각도 아니라는 사실. 마음의 상처 없이 사랑받고 어른이 되면 가장 좋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 아이를 살필 수밖에. 그래서 나는 늘 기도할 수밖에 없다. 내 아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모두 찬란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