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먼트 (백온유)를 읽고
동정과 연민의 시선에 적대심을 가진 것은 잠깐이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측은지심에 날을 세울 겨를이 없었다. (12~13)
자신들의 사소한 행복이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리라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140)
너무 슬퍼하지 마.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될 거야. 사람은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155)
죽음은 매번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왔다가 사라졌다. 항상 근처에 어른거리는 듯해도 누군가에게는 행복만큼이나 신기루에 가까웠다. (208)
처음 코로나 19가 발생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동선을 숨기는 바람에 그 사람은 국민 역적이 되어버렸다. 만약 그게 나라면, 혹은 3자가 보기에 창피한 곳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동선을 밝힐 수 있을까? 같은 전염병이라도 누군가는 슬쩍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그로 인해 생사를 넘나들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런 전염병이 무서운 것 아닐까? 약도 없고,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모를 감기 같으나 감기 같지 않은 그 무엇. 나도 코로나를 피해 갈 수 없었고, 무탈하게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5개월 넘게 가래가 나아지지 않고 있으니 약을 먹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이 지긋지긋한 가래가 언제 나아질지는 모르지만 나는 살아있다. 작년과 올 초. 코로나 19에 걸려 폐렴으로 돌아가신 주변 어르신이 많다. 지금 다시 코로나 19가 유행이라지만 처음과 같은 마음은 아니다. 어찌 보면 오랜 시간 코로나 19에 노출되면서 점점 무뎌지고 있는 건 아닐까?
고3인 시안이는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을 고민하지 않는다. 시안이는 매일 학교가 끝나면 병원으로 가 엄마를 간병한다. 몇 년 전 온 사회를 힘들게 한 전염병 프록시모에 감염된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간병인으로 일하는 최선희, 아빠, 그리고 시안이 엄마를 돌보지만 차도는 없다. 그리고 또 한 명. 해원(지원)은 평범한 고3이지만, 평범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해원의 가족은 그녀의 엄마가 슈퍼 전파자가 되어 지역 사회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자신들이 살던 동네를 떠나고, 해원은 이름까지 개명하고 평범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안은 해원의 오빠 해일을 만나게 되고 잠적한 해원 가족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때는 쌍둥이 자매처럼 가깝게 지냈던 두 가족.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지 못한 시안과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 해원. 평범하게 보이는 해원에게 시안은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제안하게 되는데..
시안의 인생도, 해원의 인생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을 사랑해줬던 엄마를 간병하는 시간. 처음에는 희망이 있었지만, 희망이 절망으로 변한 순간, 시안은 자신의 삶을 몇 번이고 놓아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시안이나 시안의 아버지나?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매해 달라지는 인생 앞에 시안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뭘까?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지만, 시안의 인생도, 해원의 인생도 아프긴 마찬가지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거였나?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이었나? 자신만 빼고 모두 평범하게, 그러면서 즐겁게 사는 것 같다. 대외적으로 간병하는 시안이는 착하고 예쁜 효녀다. 하지만 시안의 마음 안에는 매일 전쟁이 일어난다. 엄마를 사랑하는 건 맞지만,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좋겠지만, 아픈 엄마를 돌보는 삶은 너무 힘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안의 마음은 널을 뛴다. 엄마로 인해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게 지긋지긋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통의 삶을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시안은 다 싫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버겁다. 여느 집에서건 고3은 잠재적 서열 1위라고 한다. 공부하는 게 힘들다고 투정을 부려보고 싶고, 잔망도 떨고 싶고, 짜증을 부리고 싶다. 진로를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시안에게는 없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 엄마의 건강도 문제지만 불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다. 자신의 집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그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시안의 그 마음이 책을 읽는 내내 아팠다.
가난의 냄새. 아픔의 냄새. 그리고 죽음의 냄새. 그 냄새는 지우려 할수록 더 깊게 시안에게 파고든다.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열아홉 소녀에게 가난의 냄새는, 죽음의 냄새는 감당하기 버겁기만 하다. 자신과는 다르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해원을 보는 시안의 마음은 착잡하다. 살면서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아본 적 없다. 기왕이면 ‘덕분에’란 단어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해원이나 시안에게 ‘덕분에’란 단어는 어쩜 사치인지 모른다. 누구 탓을 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기에.
나는 아니라고 나는 그 주인공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코로나 19가 지나가더라도 또 다른 다양한 전염병이 우리 곁에 맴돌지 모른다. 누군가는 무증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걸리지 않는 게 좋다. 나처럼 후유증으로 이렇게 고생할 거라면. 언제쯤 우리도 평범한 일상을 맞이하게 될까?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답답했고,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 속상했다.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성장하고 자랄 테지만, 극단적인 아픔으로 성장하는 환경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아이 같지 않게 성장하는 건 아픈 일이니까. 우린 또 이렇게 살아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