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대가족 , 오늘만은 무사히! (나카지마 교코)
한 공간은 아니지만, 우리 집은 3대가 모여 산다. 할머니(시어머님), 아이들 고모(손윗 시누이)와 삼촌(나이는 나보다 많은 시동생), 그리고 우리 식구 4명. 처음 결혼할 때부터 그렇게 시작했고 지금도 그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이 상태가 유지될 것 같다. 이런 내 상황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나를 불쌍(?)하거나 힘들지 않냐며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솔직히... 힘들다. 홀 시어머님에 결혼하지 않은 나이 많은 시누이와 시동생. 그리고 맏며느리의 자리. 차례와 제사 그리고 집안 대소사에서의 병풍 같은 며느리 자리. 잘하면 당연한 것이고 못하면 한소리 들어야 하는 자리. 더군다나 딱 한 명은.. 무조건 아들은 낳아야 하지 않느냐는 은근의 부담까지. 다행히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다. 두 녀석 다 아들이니까. 장난처럼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남편은 말했다. 무조건 1명은 아들이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낳을 때까지 낳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헐 대박...
결혼하기 전 우리 집이 1남 3녀의 시끌벅적한 가족이다 보니 나는 가족 수가 없기를 바랐다. 가족 수가 많다는 건 다양한 개성들이 모여 재미있을 수 있지만 그만큼의 다양함이 쉽게 싸울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니까. 그런데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대가족 속에 편입되어 버렸다. 지금은 익숙해졌다지만 여전히. 시댁 식구들과의 시간은 어렵다. 그나마 내가 견디고 참을 수 있는 건 아이들만큼은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어른들. 내가 냉정하고 차갑게 아이를 키운다면 어른들은 따스하게 감싸 안듯 사랑해 주신다. 내가 시어른과 함께 살면서 가장 감사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기회가 되면. 나는 단출한 우리 4 가족과 살아보는 걸 꿈꾼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
여기 어떨 결에 대가족이 된 집이 있다. 이 집의 가장 류타로는 72세로 치과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아내 66세 하루코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친정어머니(92세)를 모시고 있다. 평범하지만 나름 괜찮은 노후라 생각했던 류타로에게 어느 날 변화가 찾아왔다. 하나뿐인 아들은 30세이지만 히키코모리로 집에서 나가지 않고, 평범하게 출가했던 딸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 딸 이쓰코는 평범한 샐러리맨과 결혼해 몇 번의 사업자금을 빌려갔지만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쫄딱 망해서 사춘기 아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으니. 둘째 딸 도모에는 이혼을 선언하고 집에 왔는데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었다. 심지어 그 아이의 아버지는 전남편이 아니라 변변한 일자리도 없는 개그맨을 꿈꾸는 열네 살 연하남이다. 이런 날벼락같은 일이라니. 류타로의 집엔 나름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가족에게 평화란 무엇일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평화일까? 일은 일어났지만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안정을 찾아가는 게 평화일까? 예전 우리 집은 정말 시끄러웠다. 사춘기 4 남매의 충돌은 상상 초월이었으니까. 하루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고, 하루도 목소리 높이지 않는 날도 없었다. 그나마 머리가 커지고는 침묵으로 일관하기는 했는데 가족을 화목하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그래도 우리 집은 화목한 편이야. 어디를 봐서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건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시끄럽고 싸우고 화를 내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화목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꾸린 우리 집 4 식구는 화목(?)한 편일까? 웃지 않는 날이 거의 없고 대화 없는 날도 거의 없다. 가능하면 식구들끼리 밥을 먹으려 하고 고민이 있으면 이야기하는 편이다. 아이들의 일이야 스스로 알아가야 할 인생이니 충고 정도는 해줄 수 있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특별히 싸울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의견 충돌이 있다. 바로 습관적인 것들. 나는 바로바로 치워야 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못하고, 본인이 효자인 것은 상관없지만 그걸 나에게 강요할 때는 큰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젠 그 마저도 각자 스타일임을 알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시(?)할 때도 있지만. 이젠 이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각자 자신의 인생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 네 식구가 앉아 밥을 먹는 일이 손에 꼽는다. 이런 우리 가족이 화목하기는 한 것일까? ^^
가족은... 사실 너무 어렵다. 상처받기도 하고 상처 주기도 하니까. 가까운 사람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혹 가깝기에 무시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서로에 대한 배려를. 대가족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 집의 방법은 따로 또 같이. 따로 할 때는 철저히 자신만 생각하고 가족이 모였을 때엔 근황이나 서로의 인생에 질문하지 않는다. 각자 알아서 살아갈 테니까. 식사하고 안부 정도만 묻고 호기심을 갖지 않는 것. 그래서 나는 이 대가족 안에서 크게 무리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어쩌다 대가족이 된 히다 가족. 그들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서 다행이다. 가족에게서 생긴 일은 그 가족만의 방법으로 해답을 찾아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