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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 날개를 달자 Dec 09. 2022

가족의 형태가 변하지만 유연하지 못한 건 부모가 아닐까

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1남 3녀였던 우리 집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언니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예민하고 까다로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래서 언니의 물건을 만지거나 빌리면 한 바가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오빠는 혼자만 남자여서 인지 조용한 편이지만 엄마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서 나와 자주 싸우곤 했다. 나? 나는... 사실 조용한 편도 아니고 얌전한 편도 아니고, 목소리도 커서 시끄럽고 요란하기까지 했다. 조용하던 집은 내가 나타나면 시끄러워지고 사람 사는 집 같다고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이건 결혼하고 나서 하신 말씀이다. 그 전에는... 내가 늘 싸움의 중심에 있어서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금은 엄마가 날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과거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특히나 사춘기 때엔 견딜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면 참았을까? 아마도 참지 않았을 것이다. 내 성격상. ^^ 엄마와 무지하게 싸웠던 파이터. 지금은 농담처럼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 나는 언제나 시끄러운 우리 집이 너무 싫었다. 가능하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결혼할 때까지 나는 내 방이 없었다. 동생과 언니랑 늘 같이 썼으니까. 결혼한 지금도.. 나는 남편과 함께 방을 쓴다. 그래서 여전히 나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 그럼에도 나는 이젠 알겠다. 시끄럽고 요란하고 또 웃음소리가 넘치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이라는 걸. 


사실 나는 가족이라는 굴레를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결혼 전엔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엄마네 집 근처에는 절대 살지 않고 멀리서 살겠다고. 가족 간에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하고, 효도는 셀프여야 한다는 것. 일가친척이 모여 서로의 신상을 캐는 것도 싫고, 내가 사는 모습에 답하는 것도 싫었다. 가족이 가진 연대 책임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 가족이기에 힘이 되고 파이팅이 되는 것.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 무게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혼한 지금도 여전히 가족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 가족이란 대체 무엇일까? 


겉으로 보기에 품위 있는 가족. 국내 최고의 출판사를 운영하고 다양한 사업에 손을 뻗고 있는 아버지 서용훈. 교수 집안에 부모님의 뜻을 딱 한 번만 어겼던, 그래서 우아함을 잃지 않고 살아온 어머니 유미옥. 이런 부모의 철저한 계획에 따라 고품격 교육을 받아온 첫째 딸 서혜윤. 계획에 없던 탄생으로 외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성장했던 둘째 딸 서혜란. 이 가족들에게 대화는 정치적 이슈나 사회 현상 혹은 회사 경영이다. 이런 가족에게 어느 날 혜윤이 폭탄 고백을 한다. “저 XX 동영상 찍힌 것 같아요." 사건이 터졌지만 집안은 침착하다. 아니 고요함을 위장한 폭풍 전야다. 난감하고 황당한 이 사건은 잘 해결될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가족은 맞을까? 아니 가족은 맞을 것이다. 가족이란 의미는 다양할 테고 이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완벽한 모습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가족에게 소음이 없다는 것. 나는 이건 이해할 수 없었다. 소음이 없다는 건 그 어떤 의견이나 생각도 제시할 수 없는 것이고, 복종만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일 테니까. 그저 우리끼리 싸우고 부딪혀가면서 서로가 한 집에 있다는 사실을 좀 깨달았으면... 그러고 나면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고 말할 작정이었어욕을 먹거나 쫓겨날지언정 한 번이라도 우리 집에 가족들이 사는 집이라는 걸 내 눈으로 보고 싶었어. (178) 가족끼리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는 건 곤란하지만, 논쟁이나 의견 제시조차 없다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오로지 한 방향으로 흐르는 대화라니. 이게 과연 대화이기는 할까? 


우리 집은 늘 시끄러웠다. 큰 녀석, 작은 녀석 모두 노래를 좋아하고 집에 있을 땐 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쇼미 더 머니’라는 프로가 유행일 때는 모든 말을 랩으로 해 정신 사납다고 제발 조용히 하라고 잔소리할 지경이었다. 두 녀석 모두 남자아이지만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을 얘기해 줬고, 먼저 말하겠다고 해 순서를 정해줘야 했다. 가족 구성원 간에 침묵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그래서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소음이 없는 가족이 있는 것인지...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가족이 가진 사연들이 많아선지 모든 가족 이야기는 묘하게 생소하다. 아마 같은 모습을 한 가족이 없기 때문 아닐까? 세상도 변하고 가족의 형태도 변한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응하지 못하는 건,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건 우리네 부모들이 아닐까?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철학은 변하지 않더라도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함을 부모는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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