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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 날개를 달자 Dec 12. 2022

가족들이 각자의 밀실에서 자기 몫의 울음을 운다는 것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윤용인)


우리 시대의 아버지 이미지 하면 별게 없다. 무섭고 가부장적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때론 계시나 안 계시나 별로 달라지지 않는. 세상은 다 변하는 데 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당신 생각만 맞다고 생각하는, 한 고집하는 노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그런 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내가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나이를 드시면서 무관심보다는 애틋함으로 감정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생전 장난이라고는 치지 않으셨던 아빠가 농담을 하시고, 손자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시는 걸 보면 왜 우리 때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지 서운하면서도 감사하고, 아프다. 조금 일찍 다정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하는 서운함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감사함, 그리고 이젠 나이를 드셨기에 점점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셨을 거라는 아픔까지. 아빠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아빠 역시.. 아버지라는 역할이 처음이었으니까 그에 대한 혼란함이 함께 하셨겠지 하는 이해가 앞선다. 그런 아빠의 모습과 함께 나는 내 남편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 남편 역시..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내 남편. 내 아이의 아버지인 남편은.. 여느 집 아빠들과는 다르다. 뭐든 아이들과 함께 하고 아이들 편에서 아이들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처음엔 뭐든 아이들 위주인 그 사람이 신기했고 이상했다. 한 번도 그런 모습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으니까. 아이들은 그런 아빠를 좋아하면서도 때론 무서워한다. 아들 만 둘을 키우는 나는 그래서 늘 남편에게 고맙다. 아니 때론 미안하다. 살갑고 귀여운 딸이 없음에. ^^ 엄마가 되어가는 것과 아빠가 되어가는 것. 사실 나는 별반 다를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감정의 기울기가 나와 다름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나는 잔잔하고 섬세한 것에 신경 쓰고 아이들 감정에 민감한 반면 남편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엄마가 해야 하는 것과 아빠가 해야 하는 것이 다른 것 같다. 그 사랑의 감정이 적당히 균형을 이룰 때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아닐까? 


여기 한 아버지가 있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아 육아서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던 아버지가. 남들과는 다르다고 자부했던 아버지는 정작 아이의 감정 변화에 이성적이지 못했다. 자신의 아들과 삐걱거리면서 그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어떤 아버지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런 책을 보며 느끼는 건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 나름 전문가였을 작가가 자신의 아이와는 공감하지 못했고 그래서 고민을 했겠지? 육아서는 다양한 케이스를 설명하고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정작 내 아이는 그 육아서의 케이스가 아닐 때가 있다. 그래서 이론과 실제는 다르고 때문에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것 아닐까? 


서운하고 미웠던 감정들이 어느새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더 유능하지 못한 가장으로서의 자책감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뀌어 버린다아마 내가 저렇게 홀로의 공간에서 눈물을 흘리듯내 아내와 내 딸과 내 아들도 자신의 공간에서 각자의 사연으로 눈물을 흘릴 것이다함께 웃었던 가족들이 각자의 밀실에서 자기 몫의 울음을 운다는 것그것을 알면서도 함께 울어 주지 못한다는 것어쩌면 그것이 버리고 싶지만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버린다는 마음만으로도 한없이 미안해지고 애틋해지는 가족의 진짜 속살 인지도 모른다. (143) 


아이가 혼자 눈물 흘릴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이 또한 내 자만은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가끔. 아주 가끔 혼자만의 눈물을 흘리듯, 내 남편이나 내 아이들도 각자의 공간에서 눈물 흘리지 않을까? 함께 울어주지 않지만 그 또한 삶의 과정이라는 것. 아이들은 그 감정까지도 알게 될까? 나는 남자가 아니기에 아버지가 갖는 감정의 깊이와 폭은 모른다. 다만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믿음만 있을 뿐. 부모가 아이를 죽이는 세상이지만 그보다는 아이를 사랑하고 격려하는 부모가 더 많다고 믿고 싶다. 자신의 욕심을 아이들에게 투영하지 않는다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거니까. 부모는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듯, 아이들에게도 부모를 공부(?) 해야 하는 시간이 오면 좋겠다. 내 부모를 생각하는 시간. 훗날 부모님의 그 선택이나 결정이 자신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회상할 수 있는. 그렇게 나는, 우리는 엄마가 아빠가 되어간다. 그리고 내 아이들 또한 그렇게 엄마, 아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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