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듣는 시간 (정은)을 읽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곁에 다가가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건 역시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모두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말한다고 해서 상태를 속속들이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고요함과 편안함.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친밀함.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 또한 대단한 일 아닐까?
수지네 집은 하숙집을 운영한다. 할머니, 고모, 엄마 그리고 하숙생까지. 수지는 하숙생의 도움으로 특수학교에 들어가기 전 한글을 익히고, 입 모양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수화를 배우지 못하게 했고 그래서 특수학교 아이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던 중 중학교 때 한민이라는 친구를 알게 된다. 한민에게는 장애인 안내견이 있는데 이 안내견 덕분에 둘은 친해지게 된다.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전색맹인 한민과 청각 장애를 가진 수지가 친한 것을 사람들은 신기해하지만 둘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배려한다. 그러던 중 수지가 고 3이 되었을 때 정부에서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인공 와우 수술 보조금을 지원하게 되고 수지는 수술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소리를 들어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수지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괴로움이 생긴다. 소리에 적응하기에도 힘든 수지에게 또 다른 아픈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할머니의 죽음과 엄마의 가출인데... 수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 낼까?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엄마의 사랑이, 아니 부모의 사랑이 아이를 자라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말. 사실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잘 몰랐다. 내가 특별히 사랑받고 자란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사랑보다는 한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물론 부모님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실 거다. 하지만 자라는 동안 오빠와의 차별로 많이 울었고, 아팠으니까. 사랑도 결국엔 주관적인 감정인 것 같다.) 내 아이들에게는 가능하면 좋은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을 주면서 알게 되었다. 이 사랑이 훗날 힘든 일이 생길 때 그 아픔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수지 역시 그런 아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없으니 아빠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은 대단했다. 특히나 할머니의 사랑은. 완전하지 않아도 되고, 완전히 이해되지 않아도 되는 것들. 그 채로 남겨두어도 되는 것들. 그렇게 수지는 홀로 서기를 시작한다. 산책을 듣는 시간이라는 사업을 통해.
산책을 같이 하지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위로할 필요가 없다. 같이 걷고 공기를 마시고, 곁에 있어주는 것. 그러는 동안 마음이 동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무작정 해도 좋은 시간.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힘이 된다는 사실. 눈치 보지 않고 울어도 되는 시간. 어떤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아도 산책하는 동안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 수지는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살고 싶지 않을 때, 내가 남과 다를 때 우리는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새롭게 나를 단장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장애우 친구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읽는 동안 수지가 장애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지의 성장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뿐. 그렇게 수지는 어른이 되어 가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가는 모습이 따스하고 좋다. 만약 진짜 수지와 산책을 듣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기꺼이 동참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