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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Feb 17. 2016

활용 한국사 10 - “강진의 밥 파는 노파”

다산 정약용이 기독교 박해로 연루되어 강진에 귀양살이 한 지 몇 년이 되었다. 귀양은 출발부터 시작해서 귀양지에 도착해서 자고 먹고 하는 것을 모두 귀양간 자의 돈으로 해결해야 했다. 1801년 강진에 도착한 정약용은 읍내에 있는 한 주막집의 방을 빌려 세들어 살면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어느날 저녁, 저녁밥을 물리고 난 뒤 주인 노파와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파가 갑자기 물었다. 

“영감님께서는 글을 읽으셨으니, 이 일이 이치에 맞는 건지요? 부모의 은혜는 같지만 어머니의 노고가 더욱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옛 성인이 교화를 펴면서 아버지는 중요하게 여기고 어머니는 가볍게 여겼습니다.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하였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입는 상복도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격을 낮추었습니다. 아버지의 친족은 일가가 되게 하였고, 어머니의 친족은 도외시하였습니다. 이건 너무 일방에 치우친 게 아닌가요?”

노파의 갑작스런 질문에 정약용이 천천히 대답했다.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기 때문에 옛날 책에도 ‘아버지는 처음 나를 생겨나게 한 사람’이라고 하였소. 어머니의 은혜가 비록 크지만, 아버지의 은혜는 하늘이 만물을 처음 있게 한 것과 같으니 그 은혜가 더욱 큰 게지요.”

노파가 반박했다.

“영감님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보니 풀과 나무에 비유하자면 아버지는 씨앗이요, 어머니는 땅입니다. 씨앗을 땅에 뿌리는 일은 지극히 미미한 일이지만, 땅이 씨앗을 길러 내는 공덕은 매우 큰 것입니다. 밤톨은 밤나무가 되고, 볍씨는 벼가 되니 온전한 모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땅의 기운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류(類)가 나누어지는 것은 모두 씨앗에 따라 나누어지는 것이니, 성인이 교화를 펴고 예를 제정한 것은 생각건대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노파는 다른 손님이 와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정약용은 노파의 말을 꼽씹어보다 무릎을 탁 치고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파의 말이 천지간의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미묘한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정약용은 밥 파는 노파라 홀대하지 않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노파를 대했다.      


배우지 않아 아는 것이 없다고 하여 삶의 이치, 자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배웠다는 이들은 배우지 못한 이들을 무시하기 일쑤이다. 배웠다 하더라도 세상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며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남 모르게 깨달은 것이 하나라도 있을 것이다. “강진의 밥 파는 노파”의 일화는 인생 도처에 나에게 깨달음과 지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어찌 타인을 공경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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