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 역모 사건”은 조선 최대의 역모 사건으로 조선 선조 때인 1589년에 발생하였다. 사건은 황해 관찰사 한준 등이 정여립이 한강이 얼 때를 기다렸다가 쳐들어가는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상소를 올림으로써 시작된다.
정여립은 동인이었는데, 그와 친하게 지냈던 이들이 줄줄이 붙잡혀 왔다. 그런데 이들이 고신을 받고는 한 목소리로 지목한 사람이 있었다.
다 함께 말하기를 “길삼봉(吉三峯)을 상장(上將)으로 삼아 한 일입니다.” - 《당의통략》
길삼봉이란 자를 최고 장수로 삼아 역모를 꾀했다는 자백이었다. 조정에서는 길삼봉을 찾아 샅샅히 뒤졌으나 누구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잡혀 온 이들은 길삼봉의 신원에 대해 얘기했으나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삼봉은 진주에 사는 어느 집 종이다.”
“삼봉은 나주에 있는 선비이다.”
“삼봉은 최씨 성이요, 길씨 성이 아니다.”
나이도 모두 달랐다.
“길삼봉의 나이는 30세다.”
“60세다.”
심지어 용모도 달랐다.
“얼굴이 비쩍 말랐다.”
“살이 찌고 또 수염이 났다.”
조정에서 떠들썩하게 수배를 때린 길삼봉에 대한 소문이 이리저리 퍼지자 급기야는 한 인물이 길삼봉으로 지목되었다.
“삼봉은 반드시 진주 선비 최영경으로 나이 60세에 깡마르고 수염이 난 자이다.” - 《당의통략》
최영경은 진주에 살던 선비로,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출사를 거부하고 학문에 전념하던 사람이었다.
졸지에 길삼봉으로 지목된 최영경은 추포되어 국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항복이 그의 평소 품행을 알고 있던지라 힘을 써서 풀려나게 되었다.
길삼봉은 기실 정여립 역모 사건을 기획했던 송익필이 만들어낸 유령인물이었다. ‘길’자는 당시 사람들이 도적떼의 수령으로 여기던 홍길동에서 따온 것이고, ‘삼봉’은 대역죄인의 우두머리로 간주되던 정도전의 호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니 길삼봉이란 사람이 애시당초 존재할 리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라에서 열심히 찾으니 누군가는 반드시 길삼봉이 되어야만 하였다. 거기에 걸려 든 것이 평소 서인 정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최영경이었다.
“길삼봉 찾고 있네”란 진실은 외면한 채 여러 사람들의 말만을 믿고 거짓을 찾아 헤매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