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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Feb 19. 2016

활용 한국사 18 - “어쩔 수 없이 서인이 된 이이”

조선 선조 8년부터 영조 31년까지 180년 동안 조선조의 당쟁은 지속되어 왔다. 당쟁의 애초 시작은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인사권을 지닌 전랑의 자리에 김효원이 추천되자 인순왕후의 동생인 심의겸이 이에 반대하였고, 훗날 김효원의 후임으로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추천되자 김효원이 “전랑 자리가 외척들의 집안 물건이냐”며 반발하여 무산되면서부터 동인과 서인의 분당이 시작되었다. 심의겸을 지지한 박순, 정철, 윤두수 등은 서인, 김효원을 지지한 유성룡, 허엽, 이산해, 이발 등은 동인으로 나뉘었다. 

이이는 당파로 나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썼는데, 분당의 주역인 심의겸과 김효원을 외직으로 내보내어 대립을 완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영수를 외직으로 내보냈다 하여 동인과 서인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기 시작하였다. 또 동인 이발과 서인 정철에게 자주 편지를 보내 ‘두 사람이 마음을 합쳐 나라의 일에 힘을 쓰시오’라고 권유하였는데 두 사람은 오히려 이이가 일을 모호하게 만든다면서 불쾌하게 여겼다. 

그러자 어떤 이가 이이에게 “천하에 어찌 두 가지 일이 다 옳고 두 가지 일이 다 그른 법이 있느냐”며 희롱할 정도였다. 

특히 젊은 신료들로 이루어진 동인들의 반발과 비난이 심하였는데, 그들은 수시로 이이를 탄핵하여 내쫓고자 하였다. 동인들의 이이에 대한 비난은 선조 16년인 1583년에 극에 달했는데, 동인이 장악한 삼사(언론기관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서 “이이가 아랫사람들을 누르고 윗사람의 눈을 가린다”며 이이를 탄핵하였다. 이 때 주역이 박근원, 송응개, 허봉이었는데, 특히 송응개는 이이가 본래 스님이 되었다가 환속하였다며 “처음에는 둘 다 그르다는 양비론을 펴다가 끝에서는 그 이론을 세 번이나 바꾸어 안으로 팔고 함정에 빠지며 자신의 머리를 써서 조정을 어지럽게 하였으니 이는 나라를 파는 간사한 자입니다.”라며 헐뜯었다. 그러자 성균관 유생 470명과 유생 4백여 명 등이 상소를 올려 이이를 옹호하였다. 그러자 선조는 박근원, 송응개, 허봉을 귀양 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이이를 모함하려던 동인들이 오히려 귀양을 당하게 되자, 이이는 동인들에게 크게 인심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서인들과 가까이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것이 후대에 이이가 서인이라고 여겨지게 된 이유이다. 물론 자기를 계속 비난하는 젊고 혈기왕성한 동인보다는 연령대도 비슷한 서인에게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어떠한 관계 내에서든 이러저러한 무리들과 어울리게 마련이다. 나와 코드가 맞는 이들이 있는 법이다. 그러다보면 내가 어울리는 무리들을 배척하는 다른 무리로부터 질시와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나름 모두와 두루 어울린다고 처신하였으나 오해는 생기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서인이 된 이이”란 이런 경우에 쓸 수 있는 말이다. 이이와 같은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면 “어쩔 수 없이 서인이 된 이이”의 고사를 들려주어 자신이 어느 한 일방만을 편들지 않는 사람임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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