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살다보면 수많은 일을 겪게 되는데, 그 중에는 급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도 되지만 정말 급할 때나 상황이 어려울 때는 주위 친구나 친척에게 손을 빌릴 수 밖에 없다. 그때마다 우리네는 ‘돈 꿔달라’고 주변 사람에게 말하게 되는데, 이게 워낙 부끄럽고 무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직접 표현보다는 ‘박지원의 호리병을 아는가’라는 고사를 인용한 표현이 말하는 자도 돈이라는 단어를 직접 말하지 않음으로써 덜 무안스럽고, 돈을 꿔줄 사람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게 되지 않을까?
연암 박지원은 과거급제에 뜻을 두지 않아, 거의 평생을 궁벽하게 살았는데, 그러다보니 자주 벗들에게 돈을 꿔달라고 한 적이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박제가에게 보낸 편지이다.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당한 것보다 곤경이 심하나 도를 실천하느라 그런 것은 아닐세.
안회의 가난에 망령되이 비교하려들면 무엇을 즐기냐고 묻겠지.
무릎을 굽히지 않은 지 오래인 나처럼 청렴한 인간 없음을 어쩌겠나.
꾸벅꾸벅 절하노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네. 여기 호리병까지 보내니 가득 채워 보냄이 어떠한가? - 《정유각집》
돈을 꾸어달라고 보낸 편지이지만 돈이라는 글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가난하여 굶는 처지임을, 공자와 안회의 사연에 비유하였다. 공자가 중원을 주유하던 중 제자들과 함께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이레 동안이나 밥을 먹지 못하고 고생한 일과, 누추한 곳에 살면서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그 삶을 즐긴 안회의 고사를 인용하여 여러 날 굶은 자신의 처지를 말하였다. 하지만 박지원은 공자처럼 도를 실천하는 것도 아니고, 안회처럼 가난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벼슬을 살기 위해 남에게 아부하지 않았으니 나처럼 청렴한 인간이 어디있냐며 비굴해 하지 않고 오히려 자존감을 드러내고 있다. 돈 꾸어달라는 것에 더해 염치없이 빈 호리병까지 보내 술을 채워달라며 재치와 익살로 편지를 끝맺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