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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Feb 16. 2016

활용 한국사 5 - “정도전의 언참”

1392년 7월 16일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명나라로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아 나라 이름을 고치고, 이년 뒤 한양으로 천도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천도를 하면서 새로 지은 궁궐, 성문, 동네 이름을 모두 정도전이 지었다. 

정도전은 한성부를 크게 5부로 나누고, 다시 각 부를 동부 12방, 서부 11방, 남부 11방, 북부 10방, 중부 8방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방의 이름은 인창, 인지 등 유교 덕목, 숭교, 건덕 등 교화를 권하고, 낙선, 정선 등 선행을 권하며, 태평, 건평 등 나라의 평안함을 빌고, 정심, 명철 등 수양을 권하는 단어로 지었다. 

그런데 이 중 정도전 자신의 집이 있는 방은 오래오래 살기를 빌면서 수진방(壽進坊)이라 하였다. 수진방은 지금의 수정동 146번지 일대로, 종로구청 자리이다. 그런데 정작 정도전은 3년 뒤인 1398년 이방원에 의해 살해되었다. 더구나 그 두 아들 또한 한날한시에 이방원에 의해 처참하게 도륙되었으니, 오래오래살기를 바라고 수진이라 이름 지은 것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이를 비꼬아 말하였다. 


우리나라 초년에, 제사지내는 악장과 서울 안팎의 마을 이름은 모두 정도전이 지었다. 그런데 정도전은 수진방(壽進坊)에서 칼에 베임을 당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언참(言讖)이라고 했다. 대개 수진의 진(進)과 진(盡)은 음이 같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중방(壽重坊)이라고 고쳤다. -《지봉유설》     


언참(言讖)은 ‘말로 한 예언’이라는 뜻으로, 수진(壽進)이라 이름 지었으니 결국 일찍 죽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진(進)은 ‘나아가다, 차차 좋아지다’라는 뜻이지만, 진(盡)은 그와는 완전 반대로 ‘그치다, 다 없어지다’라는 뜻이다. 정도전이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진(進)이라 이름지었지만 결국 진(盡)이 되어 버렸다고 조롱한 것이다.

정도전은 조선의 정치이념과 정치제도를 기초한 위대한 인물로 뛰어난 책략가이기도 했다. 이성계가 새로 지은 궁궐의 이름을 지어 올리라고 하자, 즉석에서 《시경》을 인용하여 ‘경복’이라 지은 데서 그의 명민함을 알 수 있다. “정도전의 언참”은 스스로의 재능만 믿고 겸양하지 못한 자들의 말과 행실을 경고하는 고사로 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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