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을 해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다 보면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할 경우가 있다. 특히 아내가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면 눈치의 강도가 세질 수 밖에 없다. “여보, 나 술 한잔 마셔도 될까?”라며 허락을 구할라치면 체면도 체면이거니와 멋쩍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럴 때 “연암의 술낚시가 그립구나”라고 은근하게 비유를 들어 허락을 구한다면 그것이 풍류있는 모양일 것이다. 연암의 술낚시 일화는 다음과 같다.
조선 정조 대 일이었다. 어느 봄날 저녁, 이 승지는 당직 근무가 있어 바삐 대궐로 가고 있었다. 이 승지는 북다른재(지금의 명동성당 주변)를 지나다가 쓰러져가는 초가집 앞에서 누추한 차림의 중노인을 만난다. 그 중노인은 이 승지의 앞길을 막더니 다짜고짜 인사를 올리고 자신의 집으로 이 승지를 이끌려고 한다. 이 승지는 공무를 이유로 사양했지만 막무가내로 나오는 중노인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간다. 중노인은 이 승지를 앉혀 두고 아무 말 없이 술상을 들이더니 “귀한 손님이 이런 막걸리를 드실 수야 있나. 내나 마시지.”하며 이 승지에게 권하지도 않고 연거푸 두 잔을 마셔버린다. 그러더니 노인은 이 승지에게 “미안하오. 오늘 영감이 내 술 낚시에 걸렸소. 바쁘실 텐데 어서 가십시오.”라고 한다. 이 승지가 ‘술 낚시’에 대해 묻자 그 노인은, 생활이 어려워 술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는 상황인데 손님이 오면 두 잔을 내어준다고 하며, 오늘은 술을 무척이나 마시고 싶었는데 마침 이 승지가 자신의 ‘술 낚시’에 걸린 것이었다고 대답한다.
이 승지는 노인의 집을 나서자 그 노인에게 당했던 일이 분하게 느껴져 궁궐로 돌아와 승지 남공철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때 승지의 입시(入侍)를 명하는 정조의 하교가 내려와 이 승지는 정조를 알현한다. 마침 정조는 무료한 참이어서 이 승지와 한담을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정조의 명에, 이 승지는 입궐 전 노인과 있었던 일을 아뢴다. 그런데 이야기를 모두 마치기도 전에 정조는 미소를 지으며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짐작하겠다.”고 하며 노인의 실례가 아니라 이 승지의 몰지식함을 꾸지는 것이 아닌가? 정조는 그 노인이야말로 벼슬은 없으나 역사책을 빛낼 인물이라고 칭찬하며 그 노인이 바로 박지원일 것이라고 하자, 이 승지는 연암 선생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물러 나온다.
이 일화는 술이 마시고 싶으나 돈이 없을 때 친구에게 “술 한잔 사달라”는 말보다 “연암의 술낚시를 알아?”라는 표현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