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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Feb 17. 2016

활용 한국사 8 - “왕륜맹약王輪盟約”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합종연횡을 둘러싸고 수많은 약속들이 이루어진다. 거물 정치인들이수록 더욱 큰 약속과 거래들이 오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선가가 끝나고 승패가 정해지고 난 뒤에 약속들이 이루어지는 사례는 거의 드물다.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약속들을 일컬어 “왕륜맹약王輪盟約”이라 할 수 있다. 


1392년 7월 17일 드디어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이 성공하게 된 데에는 정도전, 배극렴, 조준 등의 역성혁명파 신진사대부와 이방원 등 자제들의 도움과 활약이 매우 컸다. 이성계의 즉위 후 이들 개국공신과 왕자들 사이에서는 본격적인 논공행상이 벌어졌다. 순탄하게만 보여던 논공행상의 이면에 분열의 조짐이 있었던 것일까. 1392년 9월 28일 개국공신들과 왕자들은 개경의 왕륜동에서 회동하고 맹약문을 발표하였다.      

문하좌시중 배극렴 등은 감히 황천·후토·송악·성황 등 모든 신령에게 고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하늘의 뜻에 응하고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대명(大命)을 받았으므로, 신 등이 힘을 합하고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왕업을 이루었습니다. 이미 일을 같이 했으므로 함께 한 몸이 되었으니,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은 함께 할 수 있지만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은 드물다’고 옛사람이 경계한 바 있습니다. 무릇 우리들 일을 같이한 사람들은 각기 마땅히 성심으로 임금을 섬기고, 친구를 신의로 사귀고, 부귀를 다투어 서로 해치지 말며, 이익을 다투어 서로 꺼리지 말며, 이간하는 말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움직이지 말며, 말과 얼굴빛의 조그만 실수로 마음에 의심을 품지 말며, 등을 돌려서는 미워하면서도 얼굴을 맞대해서는 기뻐하지 말며, 겉으로는 서로 화합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멀리하지 말며, 과실이 있으면 바로 잡아주고, 의심이 있으면 물어 보고, 질병이 있으면 서로 돕고, 환란이 있으면 서로 구원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 자손에게 이르기까지 대대로 이 맹약을 지킬 것이니 혹시 변함이 있으면 신(神)이 반드시 죄를 줄 것입니다. - 《태조실록》1년 9월 28일     

이 뿐 아니었다. 뒤이어 개국공신의 자손과 동생과 사위들도 왕륜동에서 회맹하여 충효계를 맺으며 새 왕조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해 희생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 회맹은 고작 6년도 가지 못하고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누구나 처음에는 함께 할 수 있지만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처럼 정치인들의 약속이란 대부분 “왕륜맹약王輪盟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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