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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2. 2020

선생님,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꽤 오랫동안 비워져있던 1인실에 40살의 젊은 남자 환자가 입원했다. 그의 어두운 얼굴빛이 간암 말기인 그의 현재 상태가 많이 심각함을 알 수 있게 해줬다. 그는 담당간호사인 나의 통증 사정 등 간단한 질문에 겨우 고갯짓으로 끄덕이거나 가로저으며 의사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옆에는 한없이 선해보이는 그의 아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통증은 너무도 심해 24시간 지속해서 주입되는 진통제가 아주 고용량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며 신장의 기능도 악화되어 소변도 거의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작은 움직임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복도에서 카트에 한아름 쌓인 경구약들을 정리하며 바쁜  데이 근무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돌아보니 그의 아내였다. 조금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실까요?” 

“아.. 아니에요..” 라고 하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서있었다.

“뭐 도와드릴까요?” 약간은 짜증섞인 목소리로 다시 물어봤다.

“아니 선생님 많이 바쁘시죠? 저기 죄송한데.. 저희가 병원생활을 되게 오래했는데요 병원에서 찍은 사진이 몇 년동안 한 장도 없더라구요..”

티가 났을지 안났을지 모를 만큼의 작은 짜증을 섞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죄송스러움이 밀려왔다. 


“저 하나도 안바빠요! 사진 지금 찍어드릴게요. 병실에서 찍을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그의 병실로 들어갔다. 놀라운 장면이었다. 그가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그의 아내는 사진 찍을 준비를 하기 위해 그 가녀린 몸으로 자신의 두 배보다 더 큰 남편을 휠체어에 앉혔던 것이다. 휠체어에 앉은 환자와 그 뒤에 웃고 있는 그의 아내를 보며 “자, 찍을게요.” 라고 말했다.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힘들어하던 그도 간신히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보는 듯했다. 친구들의 인생샷을 찍어주는 것보다도 더 열심히 찍었다. 그의 아내는 “선생님 혹시 복도에서도 한 번만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라며 물었다.

“아이 당연하죠. 안그래도 지금 복도로 나가자고 하려 했어요.”

복도로 나와서도 사진을 여러장 찍어드렸다. 그렇게 화면 속 부부의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맺힐 때까지 나의 마음을 다했다. 사진 속 그는 간신히 눈을 뜨고 있었으며,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의 아내는 온 힘을 다해 미소짓고 있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제가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도 처음 드려봐서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사진 한 장을 못 남길뻔했네요.” 

조금만 방심했으면 울먹이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버릴 뻔했다. 그렇게 다시 병실로 들어가 환자를 침대에 눕히는 일을 돕고 복도로 나와 서둘러 잠시 동안 밀린 일을 다시 했다. 


  다음에도 사진 찍어드릴 수 있는 날이 남아 있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24시간이 지난 그 다음날 근무에서 그는 부모님, 남동생, 아내, 장모님 앞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기나긴 투병 생활의 끝에서 마지막 힘을 내 그의 모습을 남겨주고 떠났다. 사망 선언 후 그의 아내는 나에게 다시 찾아와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기억하게 해줘서 고맙다면서. 그리고선 한 뭉치의 진통제를 건네며 혹시 버려주실 수 있냐며 물었다. 그 고통을 견디던 환자와 글를 지켜봤어야 했던 그녀가 다시 한 번 안쓰러웠다. 그들은 그렇게 짧았지만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내 마음 한 구석에도 아직도 사진부부로 기억이 선명히 남는다. 내가 찍어드린 마지막 사진 몇 장으로 그 시간을 기억하실 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남을 찍어 준 사진 중 가장 뭉클한 사진이 아닐까 한다.     


  또 다른 젊은 환자는 하루를 사진으로 시작해 사진으로 끝내던 환자가 있었다. 부부는 항상 웃는 표정으로 매 순간을 기록했다. 재원일수는 불어나는 것과는 반비례로, 사진 속 병상 위의 그의 모습은 점점 야위어갔지만 그들은 사진들로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를 그들의 날들 남기는데 열심이었다. 꼭 사진 뿐 만이 아니다. 요즈음 유투브 컨텐츠들을 보면 병마와 열심히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영상 기록으로 남겨 다른 환우들에게 힘을 주거나 댓글을 통해 힘을 받거나 하는 환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있었음을 남긴다.      


  임형주 가수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가 있다. ‘A Thousand Wins'라는 제목의 영시에 일본의 유명 작곡가 아라이 만이 멜로디를 붙여 탄생시킨 곡이라고 한다. 그 시의 탄생 비화를 소개하자면, 1989년 스물 네 살의 영국군 병사 스테판 커밍스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폭탄테러에 목숨을 잃었다. 스테판은 “무슨 일이 생기면 열어보세요”라며 한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장례식이있던 날 편지와 시 한편을 낭독하였고, 이 사실을 영국 BBC에서 다시 방영하여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방송에서 가장 많은 리퀘스트를 받은 영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추모곡으로써 유명해진 곡이기도 하다. 사진하면 떠오르는 환자들을 보면 가끔 그 노래를 떠올렸고 그 가사 하나하나 그들의 마음인 것 같아 잠시 가사를 소개하려 한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께요. 

겨울엔 다이아몬드 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께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 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한 여름 땡볕에도 아무리 뜨겁더라도 미세한 바람이라도 존재한다. 떠나간 사람도 그렇게 항상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사진을 함께 찍을 때 애써 미소 짓던 그 날처럼 애써서라도 그 주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언젠간 뜻하지 않게 마주할 이별에 대해, 추모에 대해 만 개의 슬픔이 있다면 그 중 천 개 정도는 웃으며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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