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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2. 2020

설마 술은 아니겠지

  나이트 병동 라운딩 중 어이없는 장면이 목격됐다. 사각팬티 한 장만을 걸친 살색 남자 환자였다. 남자 5인실의 끝자리였다. 내가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느낌마저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한다고 그의 머리맡에 있던 2L 물병먼저 열어보았다. 코를 찌르는 알콜냄새다. 2L 병의 중간정도 찰랑거리는 그의 소주를 보자마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일어나보세요! 정신들어요? 일어나보시라구요!”

“아 몰라 이 씨. 쫌 봐줘라 봐줘” 만취 중에 만취였다.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될 수 조차 없는 만취였다.

분명 나이트 첫 라운딩을 갔을 땐 이제 곧 잘거라면서 허허 웃고 있었다. 언제 술을 준비했는지, 언제 이 술을 마신건지 너무 배신감이 들었다. 술 때문에 생긴 간수치 상승으로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는 환자였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의 술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달 전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옆의 병동 환자가 스테이션으로 와 우리 병동 환자가 병원 건물 앞 주차장에 쓰러져있다고 했다. 급히 원내 안전보안팀을 호출해 주차장 앞으로 갔다. 그는 만취였었다. 도대체 어디서 술을 구했는지, 어떻게 그렇게 주차장 앞에 쓰러져 있을 정도로 술을 마셨는지 의문이었다.      


  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환자였는데 간호 처치시 늘 젠틀한 태도로 간호사를 대했고 항상 미소짓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에게 관심이 조금 덜했다는 죄책감이 몰려왔었다. 당직의에게 알리긴 하나 그게 무슨 소용일까? 이미 술에 취해 아주 잘 자고 있었다. 이동침대를 태워 그의 자리로 옮겼다. 다음날 그는 주치의에게 혼이 잔뜩 났다고 한다.


“병원 입원시에 이렇게 술 드시고 하면 퇴원하셔야 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 다음부터는 안그럴게요.” 라고 대답했다. 간호사들에게도 과자를 한묶음 사오며 사과를 했다. 

“어제 저 때문에 많이들 힘드셨죠. 죄송해요. 안그럴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다음부터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는 퇴원 후 E또 술을 마셨고 역시나 간이 안좋아져 재입원을 했는데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한 것이다.    

 

  그가 술에 취해 있을 때마다 "환자분 이름이 뭐에요? 여기 어딘지 아시겠어요?“ 환자 상태를 확인할 때 으레 하는 지남력 질문을 했다.

"나 이혼했다고.“ 그는 전혀 다른 답변을 했지만 어쨌든 외관상은 이상이 없어보였고 그래서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고 그를 재웠다.      


  정신의학과 병동도 아닌 소화기내과 병동에서 몰래 술을 마시다 발견되고 다음날 수선생님, 담당 과장님에게 보고되는 이 상황이 나로서는 진기한 광경이었다. 그제서야 EMR(전자의무기록)의 아주 예전 기록까지 샅샅이 열어봤다. 그는 예전에 알코올중독치료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었지만 그 곳에서도 술을 몰래 구해 마시다가 퇴소당했다고 한다. 또 수차례 약물자살시도를 했었다고 한다. 참 무거운 사람이었다.       


  알코올의존증. 알코올기벽ㆍ알코올중독에 대신하는 사고방식으로서 WHO가 제창한 용어이다. 알코올의 과잉섭취를 억제하지 못하고 음주를 끊지 못해 정신의존과 육체의존이 생기고 있으며 내성의 변화(상승)도 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음주에 의한 쾌감을 얻기 위해, 또는 알코올결여에 따른 불쾌감(이탈증상)을 피하기 위해 지속적 내지 주기적으로 음주하려는 강박적 욕구를 언제나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설명에 따르면, 음주를 통해 쾌감을 얻거나 불행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음주를 지속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겉으로는 충분히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그에게 ‘이혼’은 알코올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불행이었나보다. 겪어보지 않았지만 그의 슬픔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변 다른 환자들에게 술을 권한다거나 몰래 물병에 술을 숨기거나 하는 일이 용서되는 행동은 아니다. 계속되는 원내 음주 적발로 그는 우리 병동에 더 이상 입원할 수 없게 되었다. 또다시 입원이 필요해 병원에 왔을 때 다른 병동으로 배정받고서는 엄청나게 화를 냈었다고 한다. 힘들어서 술마셨다는데 한 번도 안봐주는 간호사가 뭐가 좋다고 말이다. 나는 다시 그를 만나도 또 화를 낼 것이다. 


“술 그만 마시세요. 술 마셔도 안됐잖아요. 술말고 다른 걸로 풀어보자니까요.” 이렇게 말이다. 몸이 망가질 때까지 술을 마셔봐도 상처는 오히려 커져가니 말이다. 매번 자신도 모르게 술을 마시고, 쓰러져 울고, 다음날 깨어나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할 것인지, 본인의 우울감이 제일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간호대학생 시절 지역사회간호학 실습에서 지역보건소 소속의 도박중독치료센터를 방문해A.A.자조집단의 모임을 참관했다. A.A.는 Alcoholics Anonymous의 약자로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을 의미한다. A.A.는 멤버들의 공동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코올중독으로부터 회복되도록 그들을 돕기 위해 서로 간의 경험과 힘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남녀들의 공동체다. 술을 끊겠다는 열망이 A.A.의 멤버가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이며 멤버에게는 가입비나 사례금이 필요치 않다. A.A.가 갖고 있는 "공동의 문제"는 알코올중독이다. 스스로 A.A.멤버라고 생각하는 남녀들은 지금이나 앞으로나 항상 알코올중독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술이던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된 사람들이며, 중요한 것은 그들이 혼자의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문제를 끌어내어 다른 알코올중독자들과 함께 의논한다. 그들이 술 없이도 살 수 있고, 대부분의 경우처럼, 술 마실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경험과 힘과 희망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허락 하에 조용히 AA모임의 처음부터 끝까지 숙연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익명의 누군가들이 15명 정도 모였고 서로에 대해 최소한의 소개만 했다. 익명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비공개였다. 그 중 누군가는 가정폭력의 가해자로 단주 후 남은 생을 반성하며 살고 있다는 이도 있었고 누군가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술 없이폭력의 기억을 잊어보려 한다는 이도 있었다. 다들 저마다의 슬픔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이겨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누군가 본인의 과거를 회상할 때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조금 힘들었지만 이제 술 생각이 전혀 안난다는 한 참가자의 발표에 다같이 박수를 쳐주는 모습도 있었다.      


  현진건의 ‘술권하는사회’라는 1921년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절망으로 인하여 술을 벗삼게 되고 주정꾼으로 전락하지만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는 소설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술 권하는 사회다.

이토록 한숨 가득한 사회에서 참 위험한 물질이다. 웃으며 넘기는 술이 울음이 되기 전, 어쩌면 그보다 한참 전 우리가, 이 사회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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