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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3. 2020

경찰입니다

  더 바쁘라고 해도 바쁠 수 없는 이브닝 근무였다. 입원환자도 어떻게 그렇게나 몰려서 오던지, 또 오후 항암 환자는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도 어찌저찌 일을 마무리했고 속으로 '굉장히 대단한데, 오늘 칼퇴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할 때였다. 이브닝 퇴근시간은 밤 11시. 10시 59분, 간호사실에 열심히 전화가 울렸다.      


하필 또 전화기 앞에 앉아있었다. "네, 동관 5층입니다." 

"선생님, 여기 현관 통제소인데요, 저기 김 00 환자 담당 선생님 계실까요?"

"네? 전데 무슨 일 있나요?"

"아, 환자가 신고를 했다고 경찰이 오긴 했는데 잠깐 내려와 보셔야 될 것 같아요."     

  

  전화를 끊으니 11시가 되었다. 다른 동료들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말했다. "저, 1층에 경찰이 와서 잠깐 내려와 보라고 하시는데 일단 내려갔다 올게요. 선생님들 먼저 가세요."     

나에게 근무 인계를 받은 나이트 번 동기도 함께 내려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예방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1층의 현관 통제소 앞에는 두 명의 경찰관과 불과 한 시간 전 나랑 살짝의 입씨름을 하던 환자가 한쪽 팔에 피를 뚝뚝 흘리며 서 있었다.      

  

  경찰이 물었다. "담당 선생님이세요? 환자가 지구대에 와서 담당 간호사가 줄로 자기를 병원에 묶어놓고 풀어주지도 않는다고 왔어요. 이 환자 병명이 어떻게 됩니까? 수액주사 맞아야 되는 겁니까?" 등의 질문을 했다. 황당한 이야기에 말문이 막혔다. "네 제 환자 맞고요, 술 마시다가 복부 통증 있어서 응급실로 오셨었고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해있고, 수액치료 중입니다." 답변을 하고 비로소 나의 담당 환자임이 확인되자마자 경찰은 자리를 떠났다.     


"저기, 그냥 가시는 거예요?" 

"네, 저희는 신고받고 출동했고, 담당 간호사 확인 끝났으니 갑니다."      

최소한 병실 인솔까지는 함께 해주지라 생각했던 지라 그 또한 매우 당황스러웠다. 경찰이 가자마자 환자에게 물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수액 맞던 주사는 어디 갔어요? 폴대는 어디다 두셨고요?" 말을 곱게 내뱉을 수 없었다.     

  한 시간 전, 밤 10시에 당뇨 환자들의 자기 전 혈당을 재는 시간이었다. 김 00님, 혈당 좀 잴게요. 손 좀 주세요." 그는 수액 맞고 있던 쪽 손을 내밀었다. 

"영양제 주사가 들어가고 있어서 이쪽으로 재면 혈당이 정확히 측정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저쪽 손 한번 주세요." 

"뭐? 그럼 됐어. 안 재!" 이브닝 근무의 거의 마지막 액팅이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재지 마세요."라고 대답하며 뒤를 돌았다. 그런 그는 이어서 "어이, 아가씨. 나 운동 좀 하게 이 주사 좀 빼주지?" 라며 말했다. "그 폴대 잘 잡으시고 조심하면서 복도 한 바퀴만 도세요. 다들 얼마나 잘하시는데요. 주사는 못 빼드려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병실을 떠났다.      

 

 그러던 그는 원하던 대로 폴대를 외부로 가지고 나가 주사 줄을 잡아 뽑았고 환자복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경찰은 떠났고 이제 이 알코올 중독 환자와 담당 간호사인 내가 함께 병실로 들어갈 수 있는지가 그 날의 퀘스트였다. 환자는 병원 건물 밖으로 나가 요지부동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는, 집으로 가겠다는 환자 옆에서 꼭 붙어 같이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모두 지켜본 안전보안팀 직원은 본인이 폴대를 찾아오겠다며 나섰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근처 지구대 근처에서 발견했다며 수액 폴대를 끌고 왔다. 환자는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다. 따라오지 말라며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하기도 했으며 얘기 좀 하자며 같이 목소리가 커지는 내 앞에서 본인 담배를 꺼내 물며 담뱃불을 붙이기도 했다. 안전보안팀 직원이 병원 내 모든 구역 금연이라도 수차례 말해도 듣지 않았다. 원내 택시 정류장에 서있는 택시 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 육감이 발동했다. 택시 기사님들에게 뛰어다니며 "저희 환자 탈원될 수 있으니 문 좀 잠가 주세요." 라며 부탁했다.      


  병동에서 기다리던 다른 선생님들도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전해 듣고 한 명씩 번갈아가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환자는 '자의 퇴원 각서'를 쓰겠다며 퇴원을 하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우리 다 같이 비 맞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쓰자며 설득했다. 그는 마치 망부석이라도 된 양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인턴들이 원내 문서용 태블릿 pc를 가지고 뛰어나왔다. 자의 퇴원에 대해 설명하고 퇴원 후 다시 통증이 생기거나 문제 발생 시 꼭 병원으로 돌아올 것을 강조하여 설명했다. 그리고 병원비 정산을 해야 할 차례라고 하니 그는 여러명의 의료진에게 다시 등을 보였다. 간호사 세명(이브닝 번 나, 나이트 번 동기, 이브닝 주임 선생님), 인턴 세명, 안전보안팀 직원 한 명, 이렇게 7명이나 그의 옆에서 비를 맞으며 시간은 어느새 12시가 다되어있었다. 그에게 병원비 내고 가셔야 한다고 여러 사람이 수차례 말했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이내 친구 그의 절친한 동네 친구라며 두 명이 도착했다. 그의 친구라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했다.     


 "친구분들, 지금 환자가 치료 거부하면서 경찰까지 부른 상황이고 계속해서 폭력적인 모습 보여서 이렇게 의료진 여러 명이서 지키고 있는 겁니다. 자의 퇴원 각서 쓰시겠다고 하는데 병원비 정산은 하셔야 해서요. 혹시 어떻게 하실 건지...?"     

"아휴, 아파서 왔는데 치료받아야죠. 쟤가 죽을라고 저러나. 쟤 집에 가면 또 술 마셔요. 아이고 대신 사과드릴게요. 잘 좀 봐주세요." 아?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다. 너무나도 반짝거리는 우정에 모두들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들은 잠시 환자와 이야기 좀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선 세 명이 우리 앞에 서서 다시 병실로 들어가겠다며, 미안하게 됐다며, 잘 부탁드린다며 사과를 했다.     


  그렇게 열 명의 사람이 젖은 몸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동에 도착했다. 그는 눕자마자 이내 잠이 들었다. 밖에서 있었던 일을 간호기록으로 정리하고 나이트 번을 걱정하고 퇴근을 위해 병동을 나서니 시간은 한 시를 훌쩍 넘어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물도 안나는 날이었다. 비도 맞았겠다, 나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고 다음날 좀비 같은 내 몸을 이끌고 다시 이브닝 근무 출근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동료들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다.      


"김 00님 밤에 어땠어? 지금은 어때?" 모두들 한 입으로 말하길 "괜찮던데?" 그 대답에 안심 반, 얄미움 반이었다. 그는 어제의 그런 난동은 생각도 안 난다는 듯이 오후 내내 본인 침상에서 얌전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았다. 저녁 6시, 저녁밥이 나오기 전 환자들의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저녁 약을 주는 아주 바쁜 시간이다. 병실 순서대로 돌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맨 마지막에 가게 되었다. 그는 저녁 6시에 전날 밤 11시와 같은 모습을 내게 보이고 있었다. 주사 바늘은 다 빠져있었으며 팔에는 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커튼도 치지 않은 채 바지를 갈아입고 있었다. 더 이상은 "뭐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볼 힘도 마음도 남아있지 않았다.      


"집에 가시게요? 어제 그 친구분 전화할게요. 병원비 계산하라고. 친구 올 때까지만 계세요." 여유로운 척 이야기하고 간호사실로 뛰어나와 주임 선생님, 주치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보호자라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자의 퇴원 원하시니 병원에 와달라고. 이 세 가지 일을 오 분도 안 되는 사이에 해내고 다시 병실로 뛰어갔다. 혹시 내가 없는 사이에 사라질 것 같았다. 다행히 그는 아직도 천천히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고 나는 다시 그의 옆을 지키는 경호원이라도 된 듯 옆에 꼭 붙어 아무 움직임도 못하게 했다. 이내 친구가 도착했고 나는 어제와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치료받으실 의지가 전혀 없으시다고 집에 간다고 하셔요. 안전사고 위험도 너무 크고 저희도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보호자로 연락을 받고 온 친구도 "얘가 정신을 못 차려서 그래. 집에 가라 가!"라며 환자의 몇 안 되는 짐을 챙겼고 민폐 끼쳐 죄송하다며 병실을 떠났다.      


  환자를 퇴원 보내고 현실 자각의 시간이 왔다. 그렇게 흥분의 최고조였던 어젯 밤동안도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고 했고, 오늘 아침, 낮에도 병동 생활을 무리 없이 잘했다고 했다. 그런 그는 어째서 내 앞에서만 저런 모습을 보였을까? 이쯤 되면 나의 잘못인가? 하는 생각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지만 알 수 없는 무력감은 눈덩이처럼 몰려와 나를 눌렀다. ‘왜 나에게만, 왜 나한테만’ 이라는 질문을 해도 원하는 답을 찾기에는 힘들 것이다. 수학문제도 조건이 성립되지 않을 때에는 문제의 오류이기 때문에 풀 수 없다. 그러니 자꾸만 나를 괴롭히는 질문들이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 때에는 그 물음표의 크기만큼 고생했다고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토닥여주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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