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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3. 2020

돈은 문제다

  그녀는 40대의 젊고 예쁜 환자였다. 나를 만나기 이전엔 유방암 투병도 이겨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번 건강검진에서 간수치가 좋지 않다고 들어 검사를 위해 입원했다고 했다. 그녀의 검사 결과는 자가면역성 간염이었다. 자가면역성 간염이란 1950년 Waldenstrom에 의해 처음 기술된 질병이다. 뚜렷한 이유 엇이 지속적인 간세포 손상을 보이는 질환으로 임상적으로는 여성편중, 자가항체출현, 고감마글로불린혈증, 면역억제 치료에 반응을 한다고 한다. 대개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며 말기 간부전으로 진행되면서 간이식이 수술이 필요해 질 수도 있고 치료를 하지 않으면 6개월 이내 사망률이 40%에 이를 만큼 높은 무서운 병이다.   

   

  그녀는 첫 진단을 받고 간수치를 조절하기 위한 기본적인 수액치료, 경구약 투약을 한 후 컨디션이 다소 양호해져 퇴원했다. 자가면역성 간염이라는 질환은 희귀질환이다. 병에 대해 이해가 부족해 모자란 간호사는 그저 그녀가 다 나아 퇴원한 줄만 알았다. 그리고 집에서 자가 간호를 잘 하고 있겠지 하며 생각할 때쯤이었다. 그녀의 안색이 이전보다 훨씬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병원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간수치는 더이상 악화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고 그에 당연한 결과로 전신에 나타난 황달, 복수가 가득차서 터질 듯한 복부도 그녀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에게는 막 중학생이 된어린 아들이 있다고 했다.      


  “오늘은 어떠세요?” 라는 물음에 그녀는 항상 “괜찮아요.” 라고 답했다.      

  하루하루가 지나며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약해지는 몸이었다. 산소요법이 시작되었다. 코를 통해 주입되는 작은 농도의 산소부터 코와 입에 함께 작용하는 산소마스크까지 적용되었다. 의사들은 너무 빨리 악화되는 그녀의 컨디션을 보며 보호자들에게 예후가 좋지 않을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겠다고 설명했다. 한 밤 중이었다. 그녀의 옆을 지키던 남편은 당장이라도 당직의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온 병동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무조건 살려내라고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겠다며 중환자실로 옮겨달라고 했다. 이어서 의사는 설명했다. “중환자실 치료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비용에 대해 설명하자면...”이라며 중환자실 치료비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게 차분히 설명하는 것까지 의사의 도리였고 그는 도리를 다했다. 그녀의 남편은 무조건 한다며 뭐가 문제냐며 다시 아내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다음날 오전, 의료진 여럿은 그녀를 중환자실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분을 가라앉힌 그녀의 남편이 조용히 간호사실을 찾아왔다. 

“중환자실 안가겠습니다.”

“네?” 일동이 당황했다. 어제 그의 뭐든 해달라던 고성은 이미 인수인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돈이...”

숙연해졌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의 구구절절한 침묵의 변명이 모두에게 들렸다. 곧 병원 건물이라도 부술 것 같이 소리치던 그였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서 사랑하는 아내를 치료받게 하고 싶었으나 뭐든 다해봤지만 현실이란게 매정하게도 그에게 더 이상은 없다며 내일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병동에서 할 수 있는 최후의 산소치료, 수액 주입을 하면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는 모습으로 그렇게 힘겹게 생을 마감했다.     


  의학적으로 정확한 예후를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녀가 만약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다면 상태가 호전되었을지, 그래서 다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을 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도조차 해볼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 큰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들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어느 시점에서는 돈만이 전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 해주고 싶지만 다 할 수 없는 그의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반면에 돈이 아주 많은 환자들에게서도 불행한 모습은 적지 않아 보였다. 오랜 혈액암 투병 생활을 하던 한 할아버지 환자가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조카딸이며 친딸과 아들과는 소식이 오래 전 끊겼다고 한다. 그의 면역 수치는 생명이 연장되고 있다는 것이 기적적일 만큼 떨어져있었다. 그를 꽤 오래 담당하면서도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했었다. 항상 반응이 없어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환자인 줄 알았다.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인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아들이었다. 간병중인 조카에게 마지막으로 자식들을 보고 싶다고 소원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병실 밖에서 보기에도 분위기는 오랜만에 상봉한 가족 같지는 않아 보였다. 조금 후 아들은 화를 내며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며 병실 문을 쾅 하고 닫고는 떠났다.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들이 떠난 후 간병 중인 조카에게 물었다.

“아, 돌아가셔도 연락하지 말라고 하고 가버렸네요 글쎄...” 조카는 조용히 나에게 상황을 전달해주었다. 심지어 딸은 전화 연락도 닿지 않는다고 했다.     


  투병 중인,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아버지와의 만남이 아닌 연락하지 말라며 화를 내러 온 것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더 깊은 이야기를 들었을 땐,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곁에서 간병을 한 조카에게 많은 재산을 남겼고, 이를 알게 된 자식들이 할아버지와 연을 끊었다고 한다. 왜 자식도 아닌 조카가 그리도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하게 되었는지 그들의 사정을 알 수는 없다. 그들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 모르겠다.      


  무거운 사연을 듣고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와 같이 그에게 주사약 처치를 하고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환자분~” 하고 불러도 간신히 눈만 떠주거나 아주 미약한 고갯짓만 해주던 그였다. 그 날은 “환자분~”하고 할아버지의 얼굴을 봐도 눈을 떠주지 않았다. 더 가까이 가 자세히 그의 얼굴을 보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슬픔의 표현이었다. 알 수 없는 사정들 속에서 할아버지도,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와 연락하지 말라고 화를 내고 간 아들도, 전화도 받지 않는 딸도, 그 진심을 알 수 없다. 아마 그들은 제 각자 과거에, 매 순간마다, 혹은 먼 미래에라도 보이지 않는 후회의 피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르겠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간호학생 시절, 특히 임상실습을 시작하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실시한다. 간호사로서 필요한 기초간호학 수업을 마치고 임상 현장에 실습을 나가기 전, 간호학도들은 선서식을 통하여 전문직업인으로서의 간호사의 정체성을 가지는 계기를 갖는다. 선서식에서 학생들은 ‘나이팅게일 선서문’을 웅장하게 외친다. 그 중 세 번 째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의 환자들의 얽히고 설킨 사연들에 대해 비밀로 하기 위해 하고 많은 까닭들은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예를 들어, 과연 치료비가 한푼이라도 없는지, 치료중단에 의식이 있는 환자의 의견이 들어가있는지, 누가 나쁜 사람인지, 재산을 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인지, 그런 아버지를 보지 않겠다는 자식들인지, 그런 사촌들을 더 설득하지 않는 간병하는 조카인지 말이다. 모르는 비밀을 지켜나가는 중에 드는 생각은 하나다. 어쨌든 돈이 가장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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