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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2. 2020

칠성사이다

  칠성사이다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 참,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도. 그녀는 처음 입원시부터 까칠하기로 유명한 할머니였다. 반말은 기본이었으며 주사를 놓기도 전부터 고래고래 소리부터 질러 하루에도 몇 번씩 담당 간호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다반수였다. 그렇게 그녀는 동료들 사이에서 점점 악명 높아진 환자였다. 그런 그녀라도 재원 일수가 한 달, 두 달, 세 달, 네 달이 지나면서 정이 깊어졌다. 


  간암, 간경화를 앓고 있던 그녀는 복수천자도 잦았다. 한 번 천자 할 때 3000cc정도는 배액했고 그녀의 옆을 지키는 남편은 늘 복수 양상을 보면서 그녀만의 전문 간호사를 자처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도 할머니는 늘 짜증 섞인 목소리로 온갖 투정이었지만 할아버지는 항상 할머니에게 고집불통 마녀라고 부르면서도 귀엽다고 허허 웃는 모습이었다. 동료들끼리는 지극정성인 할아버지를 보며 저런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언제나 겪는 일이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르게 나약해지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할머니지만 오목조목 예쁘장한 그녀의 얼굴이 수척해져가고, 다리는 너무 부어 혼자서는 침대에도 올라갈 수 없어졌다. 조그만 그녀의 무거워진 몸을 침대 위로 올려주면서 대화를 나눴다. 

“다리가 너무 무겁죠? 어떡하지 제가 맨날 올려드릴 수도 없고. 아저씨는 어디갔대요? 넘어지면 큰일나는데. 혼자 내려오면 넘어진다니까요!”

“소변이 마려운데 어떡하라고. 이불에다가 싸버리라고?” 부어버린 몸에 이뇨제는 늘어가고 있었다. 이뇨제가 쏟아지듯 들어가던 터라 당연히 소변이 마렵고 당연히 화장실을 자주 갈 그녀에게 침대에서 내려오지 말라는 내 말은 코웃음칠만한 지시였다.

“맞다. 그러면은 화장실갈 때 아저씨 안계시면 벨이라도 누르세요. 같이가게.”

“언니야, 나는 근데 언니야가 제일 귀여워.”

“뭐가 귀여워요. 이렇게 맨날 잔소리만 하는데.” 뜬금없는 그녀의 살가운 말에 괜히 머쓱해 아니라며 도망치곤 했다. 


  정맥혈관이 너무 약해 주사하기가 어려워 PICC(말초삽입형중심정맥카테터, 말초정맥을 천자하여 카테터를 삽입하고 상대정맥까지 진행시켜 유치하는 방법으로, 항암제나 수액을 정맥에 투여할 때 이용) 시술을 했다. 덕분에 주사를 새로 맞지 않고 한참을 편하게 치료를 했지만 어김없이 밤에 찾아온 불청객 ‘섬망’으로 PICC를 손으로 잡아 뺐다고 한다. 오랜 병원생활 동안 면역력도 많이 약해졌던 터, 그녀에게서 VRE(vancomycin-resistant enterococci; 반코마이신을 포함한 Glycopeptide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장알균으로 인한 감염증) 균도 검출되어 균이 검출되지 않을때까지 시술실에서 시술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VRE는 삼일에 한 번 씩 검사를 했지만 몇 주가 지나고 계절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고 나중엔 CRE(carbapenem-resistant enterobacteriaceae;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자내세균속균종) 까지 검출되었다. 감염으로부터 지키려고 그렇게나 노력을 했는데도 말이다.     


  격리실로 옮겨진 그녀를 간호하기는 한층 더 힘들어졌었다. 비닐 가운,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혈관도 찾기 힘든 그녀에게 주사를 하는 것(땀으로 젖어가며 족히 20분은 걸리던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것 도 매일, 소변줄을 극히 거부하는 그녀에게서 단순 도뇨관를 통해 허리가 끊어질 듯 지끈해지는 불편한 자세로 오분이상 소변을 빼내는 작업도 익숙했다. 그런 그녀는 매일 심해지던 섬망에 주사를 놔달라며 소리를 쳤고 1분에 한 번씩 울리는 그녀 병실의 콜벨과의 싸움으로 지쳐갔다. 울리는 콜벨에 달려가면 항상 같은 말이었다.

“보고 싶어서 불렀어.”

“아저씨 담배피러갔어. 전화해줘.”

“심심해. 테레비좀 틀어줘.”

“잠이안와. 수면제 주사 빨리 가져와!!!”(라고 해놓고 수면제를 가져가면 항상 자고 있었다.)     

  밤 낮 없는 섬망 증세에 곁을 지키던 할아버지도 힘이 들었다.

“할망구야 그냥 죽어! 죽어! 나도 좀 살자!”하며 화를 내고 할머니도 그에 지지 않을 세라

“그래! 죽여라 죽여! 나 죽여봐라!” 하며 온 병동 사람들에게 다 들릴만큼 시끄럽게 싸우곤 했다. 지친 우리에게 미안하다며 할아버지는 매일 칠성사이다를 하나씩 건넸다. 본인이 먹은 음료수 중에 제일 속이 시원해진다고 했다. 


“우리 마귀할망구 때문에 힘들지?” 이거 먹고 일해.

“감사합니다.”하고 받아와 정작 마실 시간은 없어 퇴근 시간까지 카트에 싣고 다니다 매일 집에 가져가기가 일쑤였다.  정말 힘에 부치는 날에는 비상구 계단으로 가 그 칠성사이다를 원샷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복도의 자판기가 망가졌다며 병원 앞 슈퍼에서 칠성사이다를 한 박스를 사오기도 했다.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고 했다.     


   간성혼수까지 더해지는 날에는 하루 두 번, 세 번의 치료적 약물 관장이 있었다. 우리가 관장을 진행하면 그 뒷처리는 모조리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할머니를 침상에서 씻기는 것부터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시트를 가는 일까지. 할아버지는 한 번의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다. 그는 웃는 얼굴로 그마저도 치료가 된다면 괜찮다며 보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한 번만 도와달라고 했다. 그의 몸에 파스를 붙여달라는 것이다. 어깨와 허리에 파스를 붙이려는데 이미 다른 쪽 온 몸은 파스 투성이었다. 

“내가 이 사람 보다가 병이 많이 난 것 같애. 침이라도 맞으러 가야될 것 같애.”

“제가 잠깐 할머니 볼테니까요, 한의원이라도 다녀오세요. 병나시겠어요.”

그럼 잠깐 침맞고 오겠다며 그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오는 길에는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었다. 나주려고 사왔다고 한다. 고맙다고. 카트에 실린 붕어싸만코를 잊고 일을 하다 보니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렸다. 그가 보고 상처라도 받을세라 녹은 아이스크림을 얼른 간호사실 냉동실에 넣어 숨겼다. 그리고 퇴근할 때 꼭 챙겨갔다. 너무 잘 먹었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접촉격리가 해지되면 다인실로 옮겨가야 할 텐데 섬망으로 인한 고성, 계속되는 간성혼수로 인한 관장 때문에 모두가 그녀가 앞으로 다인실 생활을 어떻게 할 지 걱정이 계속 되었다. 그 무렵 그녀의 전해질 수치가 매우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고 수액과 약물로 교정을 해도 차도는 없었다. 잠시 격리실로 쓰고 있던 그녀만의 병실이 그녀의 임종실이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간호사들에게 화가 늘기 시작했다. 

“진통제 좀 빨리 가져오라고!”, “관장 하지마 힘들게 뭐하러해. 안해.”, “주사도 놓지마 피도 뽑지 말고. 아프잖아.” 


  그도 알고 있었다. 그의 사랑하는 심술마녀를 보낼 준비를 해야할 때가 온 것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의 병실은 조용했고 심술마녀는 그렇게 영영 떠났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한참을 잡고서는 이름을 부르며 “고생했다, 고생했어.” 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마지막 자리를 정리하는데 병실 구석에는 아직 우리에게 전하지 못한 칠성사이다가 몇 캔 남아있었다. 아마도 청소여사님이 치우셨을 것이다. 그 사이다들은 아직도 내 눈에 선하고 그만큼 노부부가 아른거린다. 퇴원할 때 고맙다며 현금까지 건네는 환자들도 있다. 고급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와 선물하는 환자들도 있다. 화장품이나 반찬거리를 선물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그 흔하고 차가운 사이다가 가장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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