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정 Nov 02. 2020

지금 저한테 욕하신 거예요?

  8주간의 프리셉터-프리셉티 교육을 마치고 갓 독립을 한 열정 넘치는 신규간호사 때의 일이다. 근무 동안 14명의 남자 환자들을 담당해 보고 있었고 이어서 180cm가 훌쩍 넘는 매우 건장한 40대 남자 환자가 입원했다. 그의 진단명은 폐암이었다. 가끔 그가 왜 입원해있나 싶을 정도로 외관상 너무나도 건강해보였으며 병동 환자들과의 친목이라는 이유로 매시간 담배를 피우로 나가는 것이 그의 병동생활의 전부였고 병원 안에서 그를 찾아다니는 것이 나의 일과 중 하나였다. 휴게실은 항상 그의 목소리로 장악되었으며 목소리 조금만 낮춰 달라고 말하는 것도 나의 또 하나의 일이었다.      

  

 그렇게 건강해보이던 그가 진통제를 한 번씩 찾기 시작했다. 폐의 종양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고 있던 것이었다. 숨이 차는 증상과 함께 쥐어짜는 듯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그에게는 필요시마다 마약성 진통제가 투여되기 시작했다. 그의 통증이 잦아지고 고용량의 마약성 진통제가 투여될 무렵이었다. 그는 조금 전에 맞은 진통제가 전혀 효과가 없다며 다시 투약을 원했으나 진통제가 바로 준비되어 있을 리 없었다. 주치의 처방이 필요한 관계로 바로 주치의에게 환자 상태를 알리는 전화를 걸었다. 애석하게도 주치의는 회진 중이었고 회진이 끝난 후에도 위급한 환자가 생겨 그 다음 전화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병동 문 뒤에 숨어 환자의 눈치를 보는 것뿐이었다. 눈이 마주친 환자에게 미안함의 표시로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조금만 참아줄 수 있냐는 양해를 구했고 약속과는 다르게 한참 후에야 진통제 처방이 났다. 부리나케 약국으로 뛰어가 마약을 수령 했고, 곧바로 병실로 가 투약 준비를 했다. 꽤나 깐깐한 아저씨 환자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사과가 우선이었다. 적어도 내가 대학시절 교양시간에 배운 의사소통 방법에서는 그랬다. “환자분, 제가 너무 늦게왔죠. 죄송해요. 지금 약 들어갈게요.” 담당간호사로서 진심어린 사과였지만 돌아온 그의 답변은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야! 이 XX. XX 늦게오네. 너 진짜 내 손에 XXXXX?" (빈 칸에 들어갈 말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지만 대략 순화시켜 해석하자면, 어떻게 이렇게 늦게 오실 수 있나요? 정말 힘들었답니다. 또 이렇게 늦게 오면 당신의 삶의 막이 내릴 줄 아세요 라는 뜻이다.)      

 

  아마도, 생전 처음,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거친 욕을 들은 것이다. 놀란 나머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였고 그 짧은 순간 내가 이런 욕을 들을 만큼 어떤 잘못을 했나 돌이켜봤다. 내가 너무 늦게 온 것은 맞았다. 그렇지만 세상에 어느 간호사가 진통제를 늦게 주고 싶어 늦게 가겠는가. 나는 그를 위해 바쁜 와중에 몇 번이나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고, 병동 조무사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 직접 약국으로 뛰어내려갔다. 하물며 잔뜩 뿔이났을 그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했다. 그런 나에게 욕을 하다니. 괜한 자존심에 한마디 던졌다. ”지금 저한테 욕하신 거에요?“ ”그래! 뭘 잘 했다고 말대답이야!“ 가슴을 움켜잡으며 그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의 말대로 뭘 잘 한 건 없다. 그렇지만 최선은 다했는데 그걸 알아주지 않아 억울했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으로 눈물이 쏟아지기 직전 도망치듯 병실을 나왔고 간호사실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그를 철저하게 미워하기로 했다. 넉살 좋기로 소문난 나였지만 그와 불필요한 대화는 일절 하지 않았으며 필요한 대화조차 내맘대로 불필요로 여기고 지나쳤다.     


  그렇게 그를 미워한지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암세포는 속절없이 빠른 속도로 다른 장기들로 전이되었고 그는 24시간 지속적으로 투여되는 진통제와 산소요법 없이는 한 발도 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보호자 없이는 병동 생활이 불가능해 질 정도로 악화되어 그의 옆에는 여자친구가 상주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의식이 불분명한 때에도 정맥주사 시에는 아프다며 항상 욕을 하며 소리쳤고, 낮에는 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고 밤에는 병상 옆에서 자신을 지키는 여자친구에게 폭언을 하고 함부로 대하는 모습이었다. 항상 빨리빨리 하라며 퇴원하면 얼마나 달리기가 빠른지 보여줄테니 보고 배우라는 그는 참 얄미웠다. 간호사실 콜벨을 시도때도 없이 눌러가며 에어컨을 켜라, 불 좀 끄라며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미운정이 들어가던 그의 병세는 잡을 수 없을 만큼 진행되었고 통증과의 힘겨운 싸움 끝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잠시 집에 다녀온다던 그의 여자친구는 끝내 그의 마지막 숨이 나가고 나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먼 복도에서부터 큰 울음소리가 들렸고 여자친구 앞에서 주치의의 사망선언이 있었다. 담당 간호사의 할 일로서 산소마스크로 주입되던 산소를 잠그고, 수액 주사를 정리하고 조용히 임종실 문을 닫고 나갔다. 문 닫힌 임종실 밖에서도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그녀는 차가워진 그를 붙잡고 병원이 떠나가라 울었다. 내가 그 때문에 몰래 울었던 간호사실 화장실에서도 그녀의 울음소리는 너무나도 크게 들렸다. 그 울음소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미안했고 부끄러워졌다.     


  그에게 나는 간호사였지만 나에게 그는 환자가 아니었다. 나는 내 미운 감정에 충실해지기 위해 그를 내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 순간의 감정이 상해 환자를 환자로 대하지 않았다. 그를 간호하지 않으면서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 다시 그에게 욕을 들은 적은 없었지만 출근을 하면 덩치 큰 남자에게 또다시 거친 욕설 듣기가 무서워 그를 피하기 바빴고,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하며 전투태세로 임했다. 내가 얼마나 나쁜 간호사였는지 더 고백하자면 그의 통증을 엄살이라 생각한 적도 있으며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인 여자친구에게 모든 활동 하나하나 의지하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저런 사람을 뭐가 좋아 남자친구라고 지극정성인가’ 하며 경솔하게도 그녀를 안쓰럽게 여기기도 했다. 나는 그저 욕 한마디에 그의 간호사이기를 거부했고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한 달이라는 길고 긴, 소중한 시간 동안 나의 간호를 받지 못하고 떠났다. 지나고 나면 후회뿐인지라 그 미안함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미래에도 마음 한 구석에 점처럼 그의 마지막 얼굴이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 하늘에서 자신이 얼마나 빠른지 달리고 있을 그에게 조심스럽게 부탁의 한마디 하고 싶다. 이렇게 그를 회상하는 글로써 그 빚을 조금 갚을 수 있다면 부디, 화 많던 왕초보 간호사를 용서해주시라. 진심에 진심을 곱하여 띄우는 편지이다.     


  간호사는 욕 먹을 일이 정말 많다. 이유를 나열하자면 밤을 새야겠지만, 몇 가지 나열하자면 앞선 이야기처럼 약이 빨리 오지 않는 경우, 밥이 맛이 없는 경우, 의사가 자주 오지 않는 경우, 치료 목적으로 금식을 해야 하는 경우, 주사 바늘이 아픈 경우 등등이다. 이들 중 무엇 하나 간호사 탓은 찾을 수 없다. 이렇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갈등의 ‘순간’ 들에 필요한 것은 기분과 태도의 분리이다. ‘순간’이다. 사전적으로 아주 짧은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난 바로 그때 라는 뜻이다. 잠시 기분이 나빴고 자존심 상했고, 억울했던 것을 그 잠시에 머무르게 한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내 환자를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완벽하게도 기분을 태도로 만들고 있었다. 상식적이지 않은 수많은 상황들에서 얼마든지 기분은 상할 수 있지만 그 순간에 국한하기를 연습해보자. 정말 많이 힘들고 택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관용해보기로 하자.      


  나보다 20년은 병원 생활을 더 한 베테랑 선배와의 식사시간이었다. 동료를 대하건, 환자를 대하건 항상 웃는 얼굴을 보여주시던 선배다. 이 힘든 병원 생활을 즐겁게만 하고 계신 듯하여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대답하셨다. “저는 이렇게 매일이 무서운데, 선생님은 어떻게 항상 즐거우세요?” 선생님은 그렇게 대답하셨다. “환자잖아. 오죽하면 그러겠니.” 맞다. 나는 간호사고 그들은 환자다. 나는 그들만큼 아파보지 않았고 그들만큼 생의 끝자락에 서보지 않았다. 간호사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들에서 ‘오죽하면’이라는 단어를 한번 새겨보는 건 어떨까? 오죽하면 그렇게 많이도 울면서 병원 생활을 한 내가 죄책감에 이런 글 하나를 남기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아들 좀 살려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