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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2. 2020

우리 아들 좀 살려줘

  그는 다른 병원에서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다가 온 50대 남자 환자였으며 신규간호사였던 나에게 처음으로 커다란 충격을 남겨주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상태에서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에 대한 희망을 품고 전원을 왔다. 전원 후 조직검사를 포함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진행했다. 일주일 후 검사결과는 종합되었고 그는 새로운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앞으로 한 달도 힘들 수 있습니다. 의학적 치료의 효과가 없을 것 같습니다.” 라는 담당 과장님, 주치의의 면담에도 그와 그의 부인, 그의 어머니는 “무엇이든 해줘. 다른 항암약이라도 써줘.” 며 적극적인 치료를 원했다. 며칠 후 결정된 그의 항암제는 1회 진행에도 거의 1000만원 가까이 되는 고가의 약이었다. 오랜 병원생활로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그의 어머니도 잘 부탁드린다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항암치료 날 그는 너무 긴장되어 잠도 한 숨 못잤다고 했다.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진행했지만 이번만큼 절실한 적도 없다고 했다.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항암치료 후에도 환자 상태의 차도는 보이지 않았고, 일주일 후 그는 컨디션의 악화로 임종을 준비해야 되는 시간을 맞았다. 항암치료를 해서 안좋아진 것 같다며 그의 가족들은 주치의에게 “다른 약을 써달라. 이 약이 안맞는 것이다.”며 애원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미 환자는 그 독한 항암제를 견뎌낼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너무나도 저하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주치의는 그의 가족들에게 연명의료중단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연명의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 및 전문의 1인에 의해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진단 또는 판단을 받은 환자에 대해 담당의사가 작성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서식이다. 주치의에게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설명을 듣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보통 두 가지의 반응으로 나뉜다.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 환자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본인이 죽을 것이고 죽어가면서 아무런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데 어느 누가 받아들일 것인가? 간호사실 안쪽 주치의 자리에서 설명을 들으며 “당신이 의사 맞아?”라는 등 여러 차례 소리를 쳤다. 이 상황에서 주치의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현재 아무것도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설명과,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였더라도 본인은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는 제도에 대한 형식적 설명이다. 결국 그는 본인 손으로 서명을 했다.        


  나이트 근무였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나에게 할당된 환자 12명을 책임져야하는 시간이다. 그의 마지막 항암치료가 진행된 후 10일째였다. 간호사실 바로 앞 병실에서 비명을 지르며 암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인수인계가 끝난 후 나이트 근무에서의 첫 병실 순회를 했다. 그를 이 생에서 겨우 지탱하고 있던 것은 산소 15L. 고농도의 산소 투여를 위해 사용되는, 연명의료중단 환자에게는 최후의 호흡 유지 수단이었다. 밤 11시 30분 혈압을 올리는 약물을 계속해서 주입하고 있음에도 그의 활력징후 모니터는 혈압 80/60mmHg, 산소포화도는 겨우 70%를 띄우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5분에 한 번씩 간호사실로 뛰어나왔다. “우리 아들이 너무 힘들어해. 우리 아들 좀 어떻게 해줘. 우리 아들 좀 살려줘.” 밤이 깊어질수록 어머니의 목소리도 절규에 가까워졌다. 산소포화도는 점점 떨어지고 환자는 숨이 차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눈 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에 환자는 아내를 끌어안고 “너무 무서워. 이렇게 아파도 살고 싶어.” 라고 했다. 그의 아내는 강한 척을 하다 견딜 수가 없어 복도로 나와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는 말릴 새도 없이 나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선 나의 간호복 바지를 붙잡고 “우리 아들 좀 살려줘. 내가 이렇게 부탁 좀 할게.”라며 늘어졌다. 찰나의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렇게 말도 안되는 슬픈 장면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 중한 치료를 위해서는 연명의료계획을 철회해야 함과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임을 알리며 어떤 선택이든 존중하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가 본인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더 이상의 치료는 거부한다고 했다. 아내와 어머니는 숨을 죽였고 그들을 진정시키는 것 또한 나의 임무였다. 우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의 환자의 어머니 또한 지켜야했다. 자식의 임종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큼 큰 고통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결정이었다. 당직의와 함께 몇 번의 설득 끝에 작은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러 왔고 그녀는 아들이 죽어가는 슬픔의 현장에서 떠나게 되었다. 병실을 나가면서도 끝까지 하던 말은 “부탁 좀 할게.” 였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나이트 근무는 다음날 업무를 준비하는 근무이다. 밤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족들의 애타는 부탁도 들어주지 못했다. 아침 해가 뜸과 동시에 환자는 생을 마감했다.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집에 도착해 채 눈도 붙이기 전에 다시 병원으로 왔다. 당직의의 사망선언 후 어머니는 옆에 서있던 나를 한 참을 바라보셨다. 그 동안에 아들을 살려내지 못한 점, 아들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한 점에 대한 원망의 단어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수고 많았어. 고마워”라고 했다. 아들을 병마에게 잃은 일흔이 넘은 할머니에게 들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나는 굉장한 회의감으로 그 날 당장 사직면담을 했을 지도 모른다. 간호사로서 ‘내환자’를 보내는 고충을 알아주는 한 마디였다.      


  환자가 영안실로 떠나고 아침 8시 나이트 근무의 퇴근길, 어김없이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부대낀 지옥철에 몸을 실었다.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밤을 뒤로 하고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꿈속에서 환자의 어머니 등장해 내 옷자락을 잡고 무릎 꿇으며 살려달라고 나타났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를 가끔 꿈속에서 만난다. 처음엔 끔찍한 악몽이라 여기며 나는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나니 꼭 악몽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날의 기억으로 임종 과정의 환자들을 대했다. 아무리 바쁜 날에도 임종실에서의 간호 시간은 줄이지 않았다. 보호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지나칠 수 없었다. 그들을 다시 꿈 속에서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내과 병동은 대체로 조용하고 침체되어있다. 간호사실에 앉아 전산 업무를 하면 달려오는 슬리퍼 소리들이 자주 들린다. 환자의 이상이 감지되어 무작정 뛰어나오는 보호자들의 간절한 소리이다. 그들은 환자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모습을 봤지만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뛰어나온다. 제세동기는 야속하게도 머리를 울리는 ‘삐-’ 라는 기계음과 심전도의 못난 일직선을 보여준다. 


  세상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준비된 이별은 없다. 그는 전원 오기 전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큰 병원에서 몇 년 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도 미처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다. 전원 후 새로운 의사를 만나 또 다시 시한부 선고를 들었다. 그래도 그는 준비하지 못했다. 그의 아내도 50의 나이에 남편을 잃게 될 것을 알지 못했고 그의 어머니 역시 70의 나이에 자식을 먼저 보낼 것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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