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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2. 2020

외로움에 관한 고찰

  보통의 경우 임종실은 발디딜 틈이 없다. 가족들은 24시간 환자의 곁을 지키고 먼 지방의 친척들도 한달음에 달려오게 하는 곳이며 외국에 거주하는 아들, 딸, 손자, 손녀들, 조카들이 도착할 때라도 어떻게 해서든 연명치료를 해달라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마지막 공간이다.      


  그래서 ‘북적거린다’ 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임종실에 공기마저도 외로운 어느 날이었다. 아마도 환자의 안위를 위해서였겠지만 임종실의 불마저도 꺼져있었다. 그의 나이는 50살, 꽤 오랜 생활 일용직을 했으며 고시원에서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홀로 이 공간에 있어야 하는 이유들이 궁금해졌지만 처음 만나 나와 그가 그 모진 날들의 대화를 나누기엔 우리에게는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아프시면 바로 말씀하세요. 제가 자주 올게요.” 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아파요... 배가 많이 아파요”라고 했다. “원래 드시던 진통제 있으세요? 병원에 와서는 주사약으로만 맞으셨어요?” 나의 물음에 “없어요.. 약국에서 약 사먹었어요.” 암성 통증이 그를 오랜 시간 괴롭혔을터다. 그런데 그는 병원에 오기 전에는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먹었다고 했다. 말기 암 환자가 될 동안, 죽음을 코앞에 둔 순간까지 그 통증보다 더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함이 몰려왔다. 처방된 마약성 진통제를 투약하고 그는 조금은 편안한 모습으로 잠시 잠이 들었다.     


  연고자를 찾으려 그의 동의를 구한 후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찾다가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지인을 통해 환자의 남동생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잠시 후 겨우 연락이 닿은 그의 동생이 병원에 도착했다. 순박한 인상의 동생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형님께서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셔서요, 환자 옆에 계속 계셔야 될 것 같으세요.”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만, 저도 밤새 일을 하고 있는데 약도 먹어야 되고 약을 못가져와서 계속 있을 수가 없는데 어쩌죠? 집에 좀 다녀와도 될까요?” 

“혹시 다른 형제분이나 친척분이라도 안계세요?” 

“누님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오실 수가 없어서요...” 

“그럼... 혹시 형님 임종을 못지키실 수 있으실텐데 괜찮으세요?” 

“네.. 지금이라도 얼굴 봐서요. 운명하시면 연락주세요.” 라며 본인의 연락처를 남기고 병원을 나섰다. 어쩌다가 지인을 통해서야 가족의 연락처를 알아야 되는 상황이 되었는지, 배웅해주는 눈 하나 없이 떠나야 하는 현실도 어쩔 수 없음에 안타까움은 배가 되었다.      


  담당 간호사로서 임종실의 그를 위해 해줄 일은 더 자주 라운딩을 가 그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만일 그렇게 그의 죽음을 발견하면 서둘러 동생에게 전화를 거는 것 밖에 없었다. 그를 만나러 들어갔다. 혈압, 산소포화도 모두 정상수치보다 훨씬 떨어진지는 오래다. 미동 없이 자는 줄 알았던 그는 창문 밖만 보고 있었다. “많이 힘드시죠?” 라는 물음에 “괜찮아요. 고마워요.” 라고 답했다. 괜찮을 수 없을 텐데 그는 이미 극락세계라도 온 듯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통증에 단어 하나를 내뱉을 때마다 온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데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온전한 그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서둘러 문을 닫고 나왔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감히 겪어보지 않고서 그의 일생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하지만 불꺼진 임종실에서 홀로 맞이하는 외로운 죽음은  닫힌 문을 바라보자면 그 닫혀있는 공간은 인생은 멀리서 보아도 희극으로 보이지 않았다.     


  추석 연휴 내내 밤낮을 모르고 칠칠치 못하게 아팠던 딸의 기분을 풀어준다며 엄마 아빠가 한 밤 중 동네 피크닉을 준비했다. 왜 나만 아프냐고 훌쩍이며 며칠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가 아님에 이렇게나 감사함을 느끼게 될 줄 몰랐다.     


  추석 연휴의 첫 날 견딜 수 없는 두통으로 응급실에 갔다. 혼이 나갈 것만 같은 내 두통에도 응급실 당직의의 문진은 또렷하게 들렸다. 

“왜 목을 맸어요? 할아버지! 제 말 들려요? 기억은 나세요?” 

할아버지는 “괴로워서”라고 대답했다. 옆에서 귀 동냥을 해 들은 내용으로는 할아버지가 서울숲에서 목을 맨 나무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부러졌고 바닥에 쓰러진 모습으로 행인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연약한 나무 덕분에 천만 다행히도 그는 병원에서 자신의 괴로움을 온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서울숲이란다. 데이트코스의 1인자, 가족 소풍의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서울숲이었다. 서로가 당신이 제일 아프다며 고성이 오가는 그 공간에도 잠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마음 한 켠이 아렸다. 어림잡아 나이가 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인생의 황혼기의 그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렸다. 선택의 끝에 다시 눈을 떴을 때 몽롱한 와중에도 따갑게 느껴졌을 동정의 눈빛 또한 괴로웠을 것이다. 연휴가 5일이나 되는 명절이란다. 그 연휴의 첫 날, 남들은 추캉스다 뭐다 하는 하하호호 하는 행복한날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지는 가히 상상조차 어렵다.     


  밤 12시 아무도 없는 도서관 앞 테이블, 갓 사온 모듬회 도시락을 펼쳤다. 눈 앞에는 평화로이 흘러가는 한강과 걷기좋은 다리로 인정받은 광진교 빛이 참 아름답다. 건너편 아파트 조명도 참 화려하다. 이 야경이 모자라기라도 하다는 듯 빨간색의 119 구급차량들이 광진교 다리 위로 몰려왔다. 어두운 물 위에도 119 수난구조대들의 불빛, 자기가 마치 별이라도 된 양 하는 여러 척의 수색선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낭만 있는 야식을 먹어보자며 준비한 우리의 피크닉은 걱정 가득한 먹먹한 야식시간이 되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한 시간이 지나 자리를 정리할 때에도 수색선은 여전히 제 색깔을 뽐내며 바쁘게 움직인다. 아마 누군가의 외로운 한가위가 아니었나 조심스런 예측을 했다. 걷기 좋은 광진교 위에는 가족, 연인, 친구 할 것 없이 산책하는 사람이 참 많다. 다리 위 조명, 산책로, 시설물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 그 예쁜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산책로 옆 난간에는 적지 않은 국화꽃들이 보인다. 걷기 좋은 다리라면서 말이다. 

아빠에게 물었다. “내일 뉴스에 나오려나?” 아빠는 답했다. “안나와. 너무 많아서.” 너무 많아서 뉴스 조차 나오지 못할 국화로 남겨진 소중하고도 존재들에게 애도를 띄우는 바이다.     


  세상에는 차마 단어로, 말로써 설명할 수도 없는 많은 감정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중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몇몇의 감정 괴물들이 있지만 오늘 딱 하나를 꼽자면 외로움으로 하겠다. 그 괴물 하나가 자꾸만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가려 한다. 진절머리 나는 세상에서 외로움 괴물들을 물리쳐줄 특수부대라도 만들어야 할까보다. 외로움의 빈부격차 속에서 뼈저리게 슬퍼지는 누군가들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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