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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15. 2020

게이트키퍼

나의, 당신의 문지기

  대학 시절 정신간호학에 흥미를 느끼던 나는 게이트키퍼 교육을 받았다. 게이트키퍼란 자살 위험성이 높은 고위험군 대상자를 조기에 발견하여 전문기관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중간에서 연결해 주거나, 자살 위기 상황의 발생 시 신속한 대응으로 자살 시도를 방지하는 등,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지속적인 관리·지원을 담당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게이트키퍼(gate keeper)’ 의 사전적 의미는 문지기라는 뜻으로, 자살 위험 대상자와 자살예방센터 사이에 중간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며 ‘생명사랑지킴이’라고도 한다.      

  게이트키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생명존중의 중요성, 자살 현상의 이해와 예방, 자살 위기 시 상담 방법 및 응급처치 방법 등의 자살예방교육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상담 과정에서는 일방적인 충고나 설득하는 어투를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자살 위험 대상자의 말을 경청하며 공감하는 접근방식이 중요시된다. 한국형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으로 ‘보고듣고말하기’를 개발해 한국의 사회·경제·문화를 고려하여 연령별·계층별로 특성화된 체계적인 자살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보고듣고말하기’ 프로그램은 자살을 암시하는 언어·행동·상황적 신호를 감지하는 ‘보기’단계, 실제 자살 의도를 파악하고 삶과 죽음의 이유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듣기’단계, 자살 시도 여부나 정신과 질환 유무 등 자살 관련 안전점검 목록을 확인하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의뢰하는 ‘말하기’단계로 이루어진다.      


  자살을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SOS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언어적 신호로는 죽고 싶다는 직접적 표현을 하거나 신체적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절망감과 죄책감을 이야기하고 집중력이 저하된 모습이나 감정의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 행동적 신호라는 전에 없던 행동들을 하고 외모의 변화나 감정의 변화를 보이고 일상생활 능력이 평소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상황적 신호로는 극심한 스트레스, 만성질환, 신체적 장애, 예후가 좋지 않은 질환을 가지고 있거나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을 경험할 때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에게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불행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와 가 까웠든 멀었든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뉴스를 봐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끊이지 않은 악플에 잡아먹혀버린 연예인들도 있으며 나쁜 사람들 때문에 어디 하나 탓하지 않고 본인을 희생시켜 버린 이들도 있다.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아무도 그들의 신호를 눈치 채지 못했을까? 감히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괜찮아?” “요즘 어때?” “잘 지내?” 의 세상에서 가장 흔한 말들이었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감정기복은 심해 항상 외줄타기를 하는 듯했고 공허함은 깊어 스스로가 종이인형이 되어 살았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종이인형에 거짓을 불어넣어 완벽하게 연기했다. 나는 게이트키퍼이기 때문이다. 배운 것은 실천하는 타입이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귀부터 열고 달려갔다. 그리고 어떤 책임감으로 그들을 지켜냈다. 누군가 묻지 않아도 나는 늘 괜찮다고 말했다. 머리가 아파와 쓰러져도 통증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해도 복잡한 상황들이 나를 쫓아다녀도 나를 설명하는 것보다 아무 일 없다는 표정 한 번 짓는 편이 나았다. 아무도 나의 신호를 알아차릴 수 없게 더 꽁꽁 숨겨버렸다. 들키지 않도록 외적으로 아무 변화도 주지 않고 늘 한결같도록 노력했으며 ‘난 행복해’, ‘다 잘될거야’ 라는 희망찬 말을 달고 살았다. 모든 일이든 실수 없이 해내려고 했다. 눈에 불을 켜고 남을 봤고 그 불을 끄고 나를 봤다. 그렇게 남에게는 행복 바이러스를 뿌리고 내 자신은 소라게가 되어 혼자 있을 때면 소라게의 집 안으로 더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던 내가 위태로운 삶에서 빠져나온 것은 딱 하나였다. “나 안 괜찮아.” 모두가 당황했다. 대본상 힘들다는 말은 나의 대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괜히 그들을 당황시킨 것이 미안해졌지만 참 중독성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서툰 위로를 계속했고 그 서툰 위로가 나를 웃게 했다. 그게 뭐 어렵다고?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매소드 연기를 하며 숨어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정말 힘든 일이다. 안아줄 준비 하시고 그들을 기다려 주시라. 당신들 모두는 게이트키퍼다.


  전승환 작가의 ‘책읽어주는 남자‘ 콘텐츠에서 참 좋아하는 사연이 있다.      

‘골목마다 사람마다 바람만 가득한 차가운 이 세상에 금쪽같은 시간을 뚫고 네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너는 충분히 행복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 제 걱정으로 매일이 벅찬 사람들이 가슴속의 혼란과 역경을 뚫고 너를 생각한다는 게 얼마나 따뜻한 일이니‘      

세상은 선인장 가시로 뒤덮였고 사람들은 저마다 따가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딱 동네 한 바퀴 만큼만 주위를 향한 관심을 펼쳐 보면 된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당연해진 이 시기에 심리적 거리라도 곁에 있기를 바라본다.     


  조금 더 고난이도를 알려 드리자면, 당신들은 시도 때도 없이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집중해야 한다. 그들은 남들에게는 ‘게이트키퍼’로 살면서 본인들은 그 문 밖으로 나가는 중일 것이다. 그들은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어서 센 척밖에는 할 줄 모른다.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기에 괜찮아 보이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중일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도 있다. 순도 100퍼센트의 관심이 아니라면 그들은 반쯤 들켰다는 생각에 땅굴을 파고 반대편으로 숨어버릴 지도 모른다. 자 이제 당신의 기지를 발휘해 그 착한 이들을 살려주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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