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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15. 2020

1.22

하늘이 무너지면 솟아날 구멍을 만들자

  1.22. 수학시험 문제의 정답이라거나 1월 22일을 의미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안타깝게도 이 숫자는 대학교 1학년 1학기 나의 학점이다. 복학 후 성적증명서를 한 번 뽑아봤다. 저 숫자가 앞으로 나에게 어떤 날들을 가져올 지 알 수 없었다. 술자리에서는 영웅담처럼 이야기 하고 다니기도 했다. “나보다 학점 낮은 사람~!”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봤을 ‘대학가면 남자친구 생겨’ ‘대학가면 살빠지고 예뻐져’ ‘대학교 1학년때는 다 놀아. 공부안해도 돼’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었던 사람의 최후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직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거나 혹여나 캠퍼스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면 저런 유니콘 같은 말들은 한 귀로 흘릴 것도 없이 귀로 들어오지도 못해야 한다.     


  뭐 그렇지만 희망은 아직 있었다. 아직 내게 남은 학기는 7개나 되었다. 7학기 모두 4.5점을 받으면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이 얼마나 귀여운 생각이었는지는 남은 7학기 중 겨우 1학기 지나고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선 첫째, 나는 4.5점 만점에 4.5점을 당연히 받지 못했다. 둘째, 절대로 공부에 흥미가 가질 수가 없었다. 강의 시간에 졸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셋째, 공부만 하는 친구들을 보면 ‘저들은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갈까?’ 라는 궁금증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보다 즐거울 수 없는 학교생활이었다. 모든 시험기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서 밤을 샜다. 시험 공부하는 척 하면서 밤새 편의점 음식으로 파티를 하고 수다를 떨며 지식보다는 추억을 쌓아갔다. 심지어 그런 농담도 했다. “우리는 지금 3교대 나이트 근무 연습하는거야.” 그렇게 심각한 성적을 계속해서 쌓아가며 4학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담당교수님과의 면담시간엔 엄마랑 어제 드라마 내용을 얘기하듯 하하호호 거리고 다녔다. 여쭤보지는 않았으나 아마 ‘얘는 취업은 안할건가 보다’ 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보통 간호학과 학생들은 4학년 재학 중 취업을 하며 다음해 1월 간호사 국가고시를 치르고 합격 후에 의료인으로서의 면허를 취득한다. 면허 취득을 한 후에 진짜 취업이 확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로지 취업을 목표로 간호학과에 다닌다는 학생들은 열 명 중 일곱 명은 거뜬히 넘을 것이다. 사람들은 취업률만 보고 간호학과의 취업에 왕도가 있는 줄 안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런데 그 간호학과에서도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취업의 길이다. Big 5, Big 10이라고도 하는 쉽게 말해 다른 학과에서는 대기업 입사와 같은 취업 경쟁이다. 그런데 웬 놈의 1.22 라는 숫자가 발목을 잡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했다. 나에게는 BLS provider라는 간호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격증과 토익 820점이라는 애매한 점수 뿐이었다.      


  애초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자며 상반기 대형병원 취업 시즌에 남들을 우러러보면서 속으로는 정말 가슴이 타들어갔다.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나에게는 그 시간이 더 고통스러웠다. 내가 저 친구보다 자기소개서 더 잘쓸수 있는데, 내가 면접 더 잘 볼 수 있는데, 내가 토익 점수 더 높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더 예쁜데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극한의 상황이 불러온 질투로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기 싫었고 표정관리도 한참을 못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블라인드 취업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간호사 취업에 있어 블라인드는 것은 나의 출신 지역, 학교, 성적, 사진 등을 지원서에 넣지 않고 오로지 자기소개서로 나를 어필하고 병원 자체의 필기시험, 면접을 통해 선별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게 찾게 된 병원들은 나에게 있어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블라인드 병원들의 자체 필기시험은 미리보는 국가고시였다. 전체 전공과목에 대해 시험이 치뤄진다고 했다. 학과공부도 하지 않던 내가 밤을 새가며 공부를 했다. 조금 우쭐해보자면 손쉽게 세 병원의 필기시험을 통과 했다. 학교에서 진행한 면접캠프에서 과 1등을 했더 이력이 있던 터였다. 숨겨놨던 자만 모드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봐, 나 잘 할 수 있다니까.” 이를 어쩐담. 면접장에 들어가는데 같은 손, 같은 발이 나갔다. 수천 번도 연습했던 1분 자기소개도 기억나지 않았다. 긴장한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일정이었던 면접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광탈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렇다. 아직 남은 병원도 있었고 시간도 있었고 끝이 아님을 알지만 한없이 가라앉았다. 내가 만든 1.22, 그리고 내가 치가 떨리게 싫었다.      


  이곳 저곳에서 친구들의 합격 소식이 들려오고 그 때마다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내 표정이라도 읽으신 듯 한 교수님께서 수업 중 그런 말씀을 하셨다. “세상은 넓고 여러분 한 명 한 명은 모두 필요한 사람이에요.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우리 각자의 자리가 다 있어요. 여러분 자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 말아요.”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나도 최종합격을 했다. 전체 지원자중 12등이라는 굉장히 높은 성적이었다. 내 자리가 분명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국가고시 모의고사는 블라인드 취업을 준비했던 터라 항상 높은 성적을 받았고, 교수님께서는 성적이 조금 부족한 친구들을 도와 스터디 모임을 이끌어달라는 임무를 맡았다. 1.22가 진심을 다해 다른 친구들을 도왔다. 결과는 좋았다. 긴장을 한 탓에 한 시간을 자고 국가고시 시험장에 들어갔다. 손을 떨며 시험을 봤고 도시락은 한 젓가락 겨우 입에 넣었다. 그 날 저녁, 인터넷에 정답이 떴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유성매직을 들고 모니터에 점을 찍어가며 가채점을 했다. 됐다. 나 합격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SF영화 속 세상이 아니라면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벌어진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일은 나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선택에는 합당한 책임이 따른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라는 말이 만연한 요즘이다. 하지만 당신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사고만 치자.     


  A라는 길과 B라는 길이 있는 두 갈래길을 마주쳤다. 나는 A길을 선택했다. 들짐승들이 나타날 때마다 숨어야 했다. 당신은 B길을 선택했다. 가시덩굴이 계속해서 몸을 스쳤다. 우리는 갈래길의 끝에서 꾀죄죄한 몰골로 다시 만났다. ‘A로 갈걸, B로 갈걸’ 하는 후회의 마음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선택을 하든 들짐승과 가시덩굴 같은 일들이 갑자기 나타날 것이다. 그것도 수도 없이. 그럴 때마다 선택에 대한 후회도 당연히 따를 것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돌아갈 수 없다는 전제조건이 주어졌고 오랜 후회는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 어쨌든 당신과 나는 들짐승을 물리치고 가시덩굴을 지나쳐 목적지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에게는 그 상상 속 일들을 헤쳐나갈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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