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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Jul 15. 2022

불안 - 말의 무게

앤서니 브라운, <달라질 거야>

앞면지에는 예쁜 도자기 컵이 하나 있고 그 안에 알이 들어있다. 알은 금이 가고 있는데 오른쪽 얼굴은 웃고, 왼쪽 얼굴은 찡그린 상태다.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알에서는 뭔가 새로운 생명이 나올 것이다. 그걸 기다리는 바깥의 감정, 기대하면서도 걱정스러운 양가적 마음이 알의 표면에 표현되어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달라질 거야>의 속표지에는 예쁜 시계가 10시 15분을 가리키고 있다. 시계 역시 도자기로 되어있다. 예쁘지만 깨지기 쉬운 도자기 재질은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실재(라깡이 말하는)의 불안을 느끼게 한다.


목요일 아침 주인공 조셉 케이는 이제 막 태어난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와 아기를 데리고 오겠다면서 외출한 것이다. 아빠는 출발하기 전에 '이제 달라질 거'라고 말했다. 달라지는 게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달라질 것'이라는 말은 조셉에게 의미가 불분명한 기표(시니피앙)로 작용한다. 그리고 모두가 떠난 집에서 아빠가 남긴 기표가 위력을 발휘한다.


<달라질 거야>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 아이세움

혼자 남은 조셉은 뭔가 주변이 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맨 처음 눈에 띈 것은 주전자였다. 모든 것이 말끔히 정리되어있는 주방에서 주전자만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꼬리가 생기더니 귀가 솟아오르면서 조금씩 고양이로 변해가는 것이다. 고양이가 된 주전자는 조셉의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심상치 않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던 자기 방에서 조셉은 또다시 새로 변하고 있는 슬리퍼를 본다. 그뿐인가? 화장실의 세면대도 인간의 얼굴처럼 변하고 있다.


 조셉이, 슬리퍼가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세면대의 다리에 구두가 신기고 고양이가 된 주전자가 세면대 뒤에 숨는 상황을 목격하는 것은 조셉이 기대보다는 불안을 더 크게 느낀다는 걸 보여준다. 아빠가 말한 ‘변화’에 대한 조셉의 상상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악어로 변하기는 했지만 조셉에게 얌전히 등을 내어주고 있는 긴 소파에 앉아 조셉은 조금은 긴장한 표정이다. 고릴라의 팔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안락하게 받쳐줄 준비가 되어있는 1인용 소파 앞을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악어는 악어대로 새는 새대로 약간의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는 모습으로 거실을 오간다. 아빠가 말한 변화는 이런 걸까? 하고 조셉은 생각한다. 


다음 장을 넘기면 조셉의 상상이 좀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 악어는 그 큰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뱀을 잡아먹으려 하고 뱀 역시 녹록지 않은 표정으로 악어를 노려본다. 고릴라의 상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1인용 소파는 마치 심판하듯 악어와 뱀을 지켜보고 있다. 험악한 강자와 만만치 않은 약자 사이에 긴장감이 솟는다. 악어를 피해 도망가지 않는 뱀, 더구나 악어를 노려보는 뱀은 악어뿐 아니라 조셉의 마음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아빠가 말한 변화가 이 정도라면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셉은 아빠가 말한 변화를 가늠할 수가 없다. TV 화면에서는 큰 새에게 먹이를 주는 작은 새가 보이고 그 앞에 바나나로 변한 악어의 꼬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고릴라가 앉아있다. 조셉의 세상이, 그가 지금 까지 알고 있던 세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조셉은 알 수 없는 변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그게 두려우면서도 기다림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조셉은 불안감을 떨치려고 밖으로 나가보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공을 새가 되어 날아가 버려 다시 찰 수가 없고 자전거는 앞바퀴가 사과로 변해 제대로 탈 수가 없다. 담을 넘으려 하자 건너편의 커다란 창살로 가로막힌 창문에서는 엄청나게 커다란 고릴라가 조셉을 노려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조셉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끈다. 불안에 얽매어 조셉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그때 문 밖 어둠 속에서 아빠와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나타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으로 힘들어하던 조셉은 눈앞에 존재하는 아기를 보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의식적인 편안함일 뿐, 조셉의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달라질 것이라는 아빠의 말은 지금부터 유효하다. 조셉은 엄마와의 분리를 통해 엄마로부터 받던 모든 대상을 금지당했지만 여전히 약간의 미련은 남아있었을 텐데 동생이 출현함으로써 그 기대는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따라서 조셉이 동생을 바라보는 감정은 대단히 복잡할 것이다. 


새로운 대상의 출현에 대한 기대, 모성적 타자를 빼앗긴 데 대한 분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제 진짜 낯선 세상에서 스스로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불안 등... 조셉에게 동생의 출현은 복잡한 정동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엄마의 손을 놓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이 순간에, 더구나 동생 때문에 작은 미련도 둘 수없게 된 이 시점에 아빠는 조셉에게 가장 중요한 타자가 된다. 조셉은 이제 아빠를 따라 언어와 법의 세상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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