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이파라파 냐무냐무>
평화로운 마시멜롱 마을에 어느 날 검은 털이 온몸을 뒤덮고 있는 커다란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은 엄청나게 큰 소리로 “이파라파 냐무냐무”라고 외친다. 마시멜롱들은 그런 괴물을 생전 처음 보았다. 그들은 이 커다란 괴물이 왜 갑자기 마을에 나타났는지, 그가 내지르는 소리, ‘이파라파 냐무냐무’가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시멜롱 마을은 순식간에 불안에 휩싸인다.
마시멜롱들이 불안에 떨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괴물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이었다. 정체모를 괴물은 ‘털숭숭이’라는 이름 때문에 모호성을 벗고 구체적인 대상이 된다. 다음으로 그들은 털숭숭이가 내지르는 소리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털숭숭이의 말(그만이 알고 있는 시니피앙, S1)을 마시멜롱 세계의 기표(시니피앙)들과 연결하여 그들이 파악 가능한 언어로 바꿀 수 있다면 털숭숭이가 마을에 나타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파라파 냐무냐무, 니아무, 냐아무, 냐아암, 니아암, 냐아암, 냐암, 니암 냐암, 냐아암, 냠냠냠냠냠냠! 치열한 추적, 여러 개의 시니피앙들이 쪼개지고 다시 조합된 끝에 만들어진 '냠냠냠냠냠'. 마시멜롱들은 마침내 털숭숭이가 마을에 침입한 이유를 알아내고 만다. 하지만 분석이 정확했던 건 아니다. 털숭숭이의 시니피앙은 그가 가진 괴물 이미지와 결합하여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고 말았던 것이다. 시니피앙의 연쇄를 통해 털숭숭이의 실체가 드러나자 마을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털숭숭이는 우리를 잡아먹으러 온 거야!!"
그들이 털숭숭이와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낀 건 불안이다. 무의식에 지식이 없는 상태로 마주친 실재에 대한 불안. 그들 중 누구도 이전에 털숭숭이 같은 괴물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도 털숭숭이에 대한 지식을 찾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털숭숭이의 괴성이 시니피앙화 되는 순간 그들에게 몰아친 것은 공포다. 털숭숭이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포획자로서 대상의 위상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먹힐 순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털숭숭이에게 급히 과일 총을 쏴 대지만 그는 오히려 몸에 부딪혀 터진 열매를 할짝거리며 좋아한다. 극도의 무력감과 공포 속에서 마시멜롱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이때 작은 마시멜롱 하나가 묻는다. “정말 털숭숭이가 우리를 냠냠 먹으려는 걸까요?” 하지만 그의 질문은 간단히 무시당한다. 자기들보다 몇 배는 더 크고 무섭게 생긴 털숭숭이는 그 외형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은 마시멜롱은 영 찜찜한 마음을 털어버릴 수 없어 혼자서 털숭숭이를 찾아간다.
마시멜롱들은 일사불란하게 전쟁 준비를 마치고 털숭숭이를 향해 불화살을 날린다. 그때 털숭숭이 괴물이 그들 앞에, 아주 가까운 거리에 불쑥! 나타난다. 마시멜롱들은 혼비백산한다. 그런데 털숭숭이는 몹시 괴로운 듯(불화살을 맞아서 괴로운 건 아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한다. “이파라파 냐무냐무!” 그러나 마시멜롱들에게 그 말은 여전히 의미가 모호한, 아니 자기들을 잡아먹겠다는 '냠냠냠'으로 들릴 뿐이다.
털숭숭이가 눈물을 흘리며 입을 크게 벌리자 커다란 입속에 썩은 이빨 하나가 드러난다. 혼자 털숭숭이를 찾아갔던 작은 마시멜롱도 모습을 드러낸다. 털숭숭이는 작은 마시멜롱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 한 마디씩 천천히 발음한다. 그제야 마시멜롱들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결국 무슨 뜻이었을까요?^^) 털숭숭이가 포획자로서 마을에 들어온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그들은 안도하며 털숭숭이의 이를 정성껏 치료해준다.
갑자기 실재와 마주쳤을 때 주체는 불안에 휩싸인다. 무의식에 지식이 없을 때 더욱 그렇다. 실체 없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주체는 시니피앙의 연쇄를 통해 대상을 상정한다. 대상이 뚜렷해지면 불안은 공포로 바뀐다. 마시멜롱들은 털숭숭이의 소리를 시니피앙 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실체 없는 그것을 대상으로 바꾸고자 했다. 그 과정에 그의 유일한 말인 ‘이파라파 냐무냐무’가 엉뚱하게 해석되는 바람에 마을이 온통 공포에 휩싸여버리긴 했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은 해소되기가 쉽지 않다. 불안은 대상을 특정할 수 없으니까. 반면 대상이 분명한 공포는 해결 가능성이 훨씬 높다.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을 제대로 규명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림책에는 실체를 알 수 없던 커다란 괴물이 침입자 털숭숭이로 구체화되면서 불안이 공포로 바뀌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그들은 털숭숭이가 왜 마을에 침입했는지만 파악하면 되었고 작은 마시멜롱의 노력으로 결국 모든 것은 오해였음이 밝혀진다. 이로써 마시멜롱 마을은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된다.
* 시니피앙(기표)은 문자 그대로의 표식을 말한다. 이에 대응하는 시니피에(기의)는 문자의 의미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