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영 Aug 11. 2022

꿈에서 맛본 똥파리

백희나  그림책

다른 올챙이보다 조금 먼저 알에서 깨어난 큰오빠 개구리는 늠름하다. 똥파리도 날렵하게 잘 잡는다. 어른들이 모두 일을 나가면 큰오빠 개구리는 올챙이 동생들을 살뜰히 챙긴다. 날렵한 솜씨로 잽싸게 파리를 낚아채어 동생 입에 넣어주곤 흐뭇해한다. 동생들은 속속 깨어나 저마다 큰오빠 개구리를 찾는다. “형아, 배고파.” “형아, 나도!” “오빠, 나도!” 나도! 나도! 나도!…. 휘익 척! 휘익 척! 온종일 파리를 잡아도 동생들 챙기느라 큰오빠 개구리는 자기 입에 똥파리 한 마리도 넣을 수가 없다. 


지친 큰오빠는 혀를 길게 빼물고 쓰러지는데…. 꿈속에서 큰오빠 개구리는 커다란 똥파리를 통째로 삼켰다. 오색찬란 똥파리에서는 치킨 맛, 떡볶이 맛, 요구르트 맛 같은 온갖 신기한 맛이 다 느껴졌다. 오빠 개구리가 정신없이 똥파리를 맛보고 있을 때 수많은 개구리와 올챙이들이 그를 에워싸고 “고마워요!”라고 외친다. 크고 맛있는 똥파리는 그동안 자기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 큰오빠에게 동생들이 보내는 감사의 선물이었다. 다음날 큰오빠는 기운이 펄펄 나서 씩씩하게 동생들을 챙긴다.


꿈에서 맛본 똥파리 (백희나 글 그림)

큰오빠 개구리는 타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착한 형, 착한 오빠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파리를 잡을 수 있지만 계속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동생들 배를 채워주느라 정작 자기는 굶주린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들자 꿈에서 동생들이 준비한 맛있는 똥파리가 나타나고 큰오빠 개구리는 그제야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수많은 동생이 큰오빠 개구리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큰오빠 개구리의 기대가 반영된 꿈. 현실의 고달픔이 그로 하여금 소원 충족의 꿈을 꾸게 한 것일 뿐이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는 또다시 동생들을 위해 쉬지 않고 똥파리를 잡아야 한다. 


큰오빠 개구리의 헌신적인 삶은 그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동생을 잘 보살펴서 부모에게 칭찬받는 것? 수많은 동생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것? 그런 것들이 그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일까? 그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타인의 욕망일 뿐 그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주체적인 욕망이 없다. 그는 부모가 기대하는 것, 동생들이 바라는 것에 맞춰 살아갈 뿐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느라 바쁜 것이다. 만족은 꿈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그는 금세 또 지칠 것이다. 꿈에서 받은 인정이 자기 최면이었다면 더더욱 빨리.


큰오빠 개구리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또 어떤가? 때가 되면 깨어나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하는 올챙이들이 큰오빠 개구리가 주는 먹이에만 의존한 채 배를 채우는 모습은 불길한 예감을 준다. 큰오빠 개구리의 과잉보호로 먹이 잡는 연습을 게을리하게 되었을 때 올챙이들의 앞날은 암담해진다. 큰오빠 개구리가 수많은 동생의 먹이를 평생 책임질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런 장면, 참 낯익지 않은가? 뼈 빠지게 키워놓으니 제 갈 길로 가 버린 자식들 쳐다보며 결국 자기는 빈껍데기일 뿐이라고 한숨짓는 엄마들, 엄마의 과잉보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른으로 자라난 욕망 없는 주체들. 자기만의 고유한 욕망이 없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꿈에서 똥파리를 먹고 기운 낸 큰오빠가 동생들에게 “이제 알아서들 살아!”하고 선언하는 장면으로 그림책에 반전을 꾀했으면 어땠을까? 동생들이 먹이를 잡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노련하게 똥파리를 잡아 자기 입에 넣으면서 씩 웃는 큰오빠 개구리의 모습이 마지막을 장식했더라면? 그림책의 말미에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시멜롱 마을의 침입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