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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Nov 13. 2022

불안

볼프 에를브루흐,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살면서 불안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유 없이 불안해!"

우리가 참 많이 쓰는 말이다. 불안이라는 게 실체가 없어서 그렇다. 불안은 그것이 지목하는 대상이 없는 점이 특징이다. 이처럼 불안은 이유와 대상을 알 수 없어서 더 힘든 정동이다. 

그림책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의 마이어 부인의 일상을 잠시 들여다보면 불안이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느껴볼 수 있다.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의 첫 장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림질을 하고 있는 마이어 부인의 머리 위에 그려진 검은 얼룩이 대번에 눈에 띈다.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의도라고 하기엔 너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검은 얼룩! 그런데 그런 얼룩이 한두 개가 아니다. 마이어 부인의 근심 어린 표정 뒤로 떠다니는 까만 얼룩, 사다리를 쓰러뜨릴 듯 아래쪽을 점령한 그 얼룩들이 자꾸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다.


마이어 부인은 걱정이 많다. 겨울 외투에서 단추가 떨어질까 걱정이고, 케이크에 건포도를 너무 적게 넣은 건 아닌지 걱정이고, 심지어는 정원 위로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할 지경이다. 마이어 씨가 옆에서 그런 부인을 계속 다독이지만 부인의 불안은 멈추지 않는다. 더구나 그 걱정은 독자에게도 전염되는 듯하다. 마치 검은 얼룩이 전염의 매개체라도 되는 듯이.


볼프 에를브루흐,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마이어 부인이 걱정하는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마이어 부인은 눈에 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걱정한다. 그런데 걱정할 대상이 많다는 것은 사실 대상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닌가? 마이어 부인의 사소한 걱정들 뒤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불안에는 대상이 없다. 


한편 걱정 없는 마이어 씨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걱정’이 넘치는 마이어 부인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부인의 얼굴을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당신, 뭐가 걱정이요? 태양이 이렇게 빛나고 있는데. 곧 눈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거야 우리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잖소?’라는 말에서 마이어 씨의 불안이 느껴진다. 부인의 불안이 남편에게도 전염된 것처럼 보인다. 마이어 씨가 부인을 달래 보지만 까만 얼룩은 점점 더 크게 번져간다.


어느 날, 마이어 부인은 집 뒤의 작은 언덕에서 갑자기 내일 해가 다시 떠오를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마이어 부인의 세상은 거대한 까만 얼룩에 점령되어 존재 자체가 사라질 지경이었다. 마이어 부인의 불안이 그림책 한쪽을 가득 채웠다. 바로 그때 부인은 텃밭에서 털도 제대로 안 난 벌거숭이 새를 발견한다. 그 순간 마이어 부인의 걱정은 작은 새에게 집중되었고 방금 전까지도 자신을 숨 막히게 했던 어둠이나 호박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마이어 부인은 온 집안을 뒤져 새에게 맞춤한 둥지로 쓰일 물건 하나를 찾아내는데 그게 하필 마이어 씨의 모자였다. 


그날부터 마이어 부인은 작은 새를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먹이를 잡았다. 파리, 애벌레, 모기 등 닥치는 대로. 밤낮없이 보살피기 2주 만에 무럭무럭 자란 꼬마 새는 바로 지빠귀였다. 드디어 꼬맹이 지빠귀가 날아야 하는 때가 다가왔다. 어미를 보지 못한 꼬맹이는 나는 법을 배울 수가 없었다. 부인은 평소 올라가지 못하던 나무에도 올라가 열심히 날갯짓을 해봤지만 꼬맹이는 따라 하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으로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마이어 부인에게 어느 순간 기이한 느낌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그리곤 부인은 결국 날았다! 아주 서툴고 어설프긴 했지만 분명히 나무와 땅 사이 중간쯤을 날았던 것이다. 꼬맹이가 날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부인을 날게 했다. 덕분에 꼬마 지빠귀도 흥분하며 부인을 따라 날았다. 성공! 둘은 함께 목장까지 날았고 안전하게 집 앞에 착륙했다.


마이어 부인이 지빠귀에게 온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그림책 어디에도 검은 얼룩은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무엇(사실은 실재의 주이상스) 앞에서 불안을 느끼던 마이어 부인은 지빠귀라는 낯선 대상을 만남으로써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빠귀는 부인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였지만 한편으로 부인은 지빠귀를 구속하지 않았다. 지빠귀는 내게 없는 것(부인은 날지 못하지만 지빠귀에게 나는 것을 가르쳐야만 했다)을 주고자 하는 순전한 ‘사랑’의 대상으로 존재했다. 곧 마이어 부인은 사랑의 대상을 만남으로써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마이어 씨는 마이어 부인이 지빠귀에 몰입하게 되면서 해방된다. 어쩌면 마이어 씨는 마이어 부인에게 사랑받는 존재로서 불안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빠귀의 둥지로 부인이 마이어 씨의 모자를 선택한 것은 마이어 씨에게는 해방의 신호였을 수 있다. 마이어 부인의 사랑이, 마이어 씨를 옥죄던 그 사랑이 지빠귀에게로 옮겨가는 신호 말이다. 마이어 부인이 지빠귀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마이어 씨의 삶에도 여유가 찾아온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하모니카를 불고 종이접기를 한다. 그리고 마이어 부인이 지빠귀와 함께 비행으로 하루를 시작하자 그는 무슨 요리를 할지 생각하며 즐거워한다. 지빠귀의 출현은 마이어 부인에게 새롭게 추구할 목표가 생기게 해 주었다. 또한 스스로 삶의 고유성을 찾아가는 그녀의 변한 일상이 마이어 씨의 삶까지 긍정적으로 바꾸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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