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클 Dec 01. 2020

한결의 두 번째 편지

작품은 슬퍼하지 않는다....


2020. 11. 19   
한국과 독일 8,378km


안녕하세요. 한결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예전에 저에게 독일과 한국에서의 삶이나 음악의 차이가 있느냐고 물어보셨죠? 오늘은 그 물음에 답을 해볼까 합니다. 먼저 전 세계에서 활동하시는 한국 음악가들을 보면 지구 반대편의 음악을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또 잘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중시하는 음악적 감성 DNA가 흐르는 것 같아요. 독일에 와서 본 예술가들은 훨씬 분석적이고 이성적이며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에요. 무대에서의 순간적인 표현력과 재치, 유연성은 한국 음악가들의 큰 장점이고, 정밀한 분석과 인문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해석과 표현을 하는 것이 유럽 음악 교육의 장점이라고 느껴져요. 한국어로 '음악'은 '소리를 즐기는 행위'를 뜻하는데, 서양에서의 'music/musik'은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를 결합해 만드는 '소리 예술'이거든요. 언어부터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다른 것 같아요.


음악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적 성향과 평소 성격이 일치하여 고스란히 투영되는 사람, 음악적 자아와 평소의 모습이나 역할이 극명하게 다른 사람. 저는 이 두 가지 방식을 스스로 조절이 가능하여 삶과 음악적 자세를 공유하기도 하고 분리할 수도 있는 사람이 숙련된 음악가가 아닐까 생각해요. 감성은 불안정함으로 이끌 수 있고, 이성은 객관성을 향해 나아가다 자신을 잃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대표적인 예로 브람스 4번 교향곡,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는 매우 감성적인 작품이지만, 두 작곡가 모두 철저한 분석과 완벽주의, 실험 정신을 가진 예술가로 유명하죠. 신실한 카톨릭 신자이자 소심한 성격임에도 방대하고 웅장한 심지어 세속적인 느낌의 교향곡을 만든 브루크너, 사생활 문제나 성격에 대해 비난받았지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역사에 길이 남을 대서사시를 완성한 리하르트 바그너 등 삶의 모습과 음악적 자세가 다른 예술가들이 꽤 많아요. 그들 모두 이성과 감성의 키를 잘 통제했기에 이런 작품들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자벨 문드리 at musica viva Ⓒ Astrid Ackermann 



뮌헨에서 작곡 공부를 할 때 들었던 말 중 기억에 박혀 떠나지 않는 말이 있는데, "작품은 슬퍼하지 않는다(Das Werk selbst ist nicht traurig)"는 말이에요. 작품 자체가 슬픈 것과 창작자 스스로 슬픈 것 혹은 청중이 슬픔을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당시 이 말씀을 하셨던 이자벨 문드리 교수님은 "감성적인 작품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잘 통제하고 이성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쓴 작품이 있어요. 바로 'Trio for Mond(몬드 트리오)'란 곡이죠. 당시 저는 반려견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겨있을 때 였거든요. 교수님의 말씀을 되뇌며 슬프고 허무한 감정들을 시간 위에 차곡차곡 쌓아 만들었죠. 첫 곡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여러 의미에서 제가 만든 곡 중에 가장 아끼는 '최애곡'이에요. 시간 되시면 한번 들어보세요.



몬드 트리오(Trio for Mond) (2013)





2020. 11. 27   
독일행, 다양한 삶을 찾아


저는 열여섯에 독일에 왔어요. 독일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종일 음악과 축구만 하고 싶어서 였죠. ^^ 좀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획일적인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을 찾고 창의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대구 외곽에서 태어난 저는 작곡을 배우고 싶어 혼자 무작정 서울에 올라갔어요. 예중을 거쳐 예고 자퇴를 하기까지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작곡과 학생으로 지내면서 단순한 이론 문제풀이만 했던 것 같아요. 그땐 어리고 잘 몰라서 시키는 대로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강요를 받았던 거죠. 대학 입시라는 명목하에 어린 작곡과 학생들은 창작활동은 꿈도 못 꾼 채로 객관식 문제만 풀고있었어요. 아마도 이론시험이 객관 평가 제도를 가진 국내 상황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져 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세기와 문명을 넘나들며 창작을 해야 하는 작곡 꿈나무들을 바로크, 전고전 형식에 가둬놓은 격이죠.


가장 큰 회의감을 느꼈던 건 학생 발표회 때였어요. 기악과 친구들의 연주를 보며 괴리를 느꼈어요. 2010년 가을, 학교 연주회에서 친구의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 연주를 들었어요. 제가 모르던 곡이었는데, '이게 100년 전 작곡가의 곡이라니...'라는 생각과 함께 제가 작곡가로서 뒤처져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연주회가 끝나고 강당 앞에서 작곡과 담당 선생님에게 "우린 왜 저런 거 안 배워요?"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들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내던지며 "너 계속 그런 식으로 하면 대학 못 가고 인생 이렇게(구겨진 종이처럼) 망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미련없이 자퇴서를 냈고,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선 독일어 수업에 등록하러 갔었죠.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이덴하임 오페라 페스티벌 후원회 음악회서 지휘자 마르쿠스 보쉬와 10년 지기 친구 세바스티안 슈밥과 함께한 연주 사진 



이쯤에서 유명한 일화가 떠오르는데, 드뷔시는 음악이론 낙제를 했었죠. 쇤베르크도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고 자신만의 음악이론을 새로 만들어버렸고요. 과거의 음악이론은 현재의 작곡가에게 참고할 수 있는 역사적 교본이지만 결코 절대적 평가 잣대가 될 순 없어요. 시대는 변하고 시간은 흐르며 그들과 나의 음악은 다른 시대, 다른 시간에 놓여 있으니까 '다름'은 당연한 거잖아요.


독일에서는 작곡과와 이론과가 나뉘어 있어요. 독일 작곡과 대학 입시는 100% 개인 창작 작품을 보고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다행히 한국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독일에도 음악적 편견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대요. 19세기 말 민족주의, 20세기의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음악도 영향을 받은 거죠. 독일 음악은 느리고 웅장해야 한다는 편견, 지휘자는 최고의 권력자로서 독재자적 면모를 가져야 한다는 관념이 생긴 거죠. 소수를 제외한 20세기 저명한 지휘자들이 모두 음악적 다채로움보다는 웅장하고 거대한 스케일을 중요하게 여겼고, 쇤베르크를 기점으로 수학적이고 이성적인 음악이 성행했던 시기죠.


하지만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다양한 해석과 새로운 시도들이 존중받고 있어요. 뮌헨 음악대학에 다닐 때 교수님들의 공통적인 의견이 "네가 원하는 것을 잘 표현할 수 있다면,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관없다"였어요. 그런 교수관은 제가 스스로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죠. 선생님들은 견해의 차이나 테크닉적인 실수에는 관대하셨지만, 원하는 것이나 아이디어가 없을 때는 크게 혼을 내셨어요. (물론 20세기에 공부를 하셨던 분 중 더러는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분들도 있기는 합니다) 개개인의 특성과 창의성을 파악하고 격려하는 이곳의 교육 방식은 제게 있어 자존감의 뿌리가 되었어요.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감각과 다수에게 사랑받는 테마는 존재하지만 모두 같을 순 없어요. 지금 이 시대에는 특히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현재 저의 목표 중 하나도 국적, 나이, 성별을 떠나 음악 그 자체로 인정받는 거예요. 오늘은 제가 고등학생 때 프로코피에프에 빠져서 작곡했던 피아노 즉흥곡 2번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자퇴 직전부터 쓰기 시작해 자퇴 후에 완성했던 곡인데, 이 곡으로 2010년 음연 작곡 콩쿠르 1위를 수상하기도 했어요. 무려 10년 전의 곡이고 지금은 작곡 스타일도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저에게 영향을 주는 곡입니다.



Impromptu Nr. 2 (2010)



글쓴이 윤한결 (지휘자이자 작곡가 그리고 피아니스트) 

지휘도하고 곡도 쓰고 피아노도 친다. 웃기게도 음악을 제외한 다른 취미엔 실력이 늘고 경쟁해서 이기는 걸 좋아하는 파이터 성향을 지녔다. 어린 나이에 독일 유학을 선택한 이유는 명료하다. "종일 축구와 음악만 하고 싶어서" 



월클 Say

막연히 음악가, 예술가라고 하면 왠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곤했어요. 적어도 저에게는요. '그들의 일상은 나와 다를까?'란 사소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이 코너는 음악가의 속사정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에 꾸려봤어요.


윤한결 is

월클이 첫 번째 주목한 음악가는 지휘자 윤한결입니다. 지휘자로서 윤한결은 2015년과 2017년 하이덴하임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음악 어시스턴트로 활동하였고, 2017/18 시즌 뉘른베르크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는 마르쿠스 보쉬 교수의 부지휘자, 2018/19 시즌 제네바 대극장의 오프닝 프로덕션에서는 게오르그 프릿치 교수의 부지휘자로 활동했어요. 그는 독일음악협회 지휘자 포럼의 장학생이자 2019/20 시즌부터는 노이쉬트렐리츠/노이브란덴부르크의 메클렌부르크 주립극장의 제2카펠마이스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9년 8월 250명이 참가한 그슈타드 메뉴힌 페스티벌 & 아카데미에서 11명의 결선 진출자 가운데 당당히 지휘 부문의 1등상인 네메 예르비 상을 거머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지휘자죠. 

또한, 작곡가로서 윤한결은 2019년 11월부터 부다페스트의 페테르 외트뵈시 재단의 위촉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그의 차기 작품은 향후 2년 내에 페테르 외트뵈시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초연될 예정이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결의 첫번째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