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으로 부터...
2020. 12. 1
셧다운
안녕하세요. 한결입니다. 한국도 감염자 수가 늘고 있다는 소식 들었어요. 독일도 최근까지 극장이 열려있었으나 9월 이후 갑작스럽게 감염자 수가 급증하면서 결국 11월 말부터는 극장을 닫게 되었어요. 12월 1일인 오늘부터 제가 음악감독을 맡은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Die Fledermaus) 프로덕션의 본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리허설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공연 여부마져 불투명해졌습니다. 극장 내 분위기도 많이 침체된 상태네요.
덕분에 한 주를 편하게 쉬었어요. 지금 상황에서 '덕분'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진 않지만, 사실 정말 오랜만에 휴식이라 3주는 쉰 것 같은 기분이에요. 이런 상황 속에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죠. 열심히 준비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크지만, 급여도 국가와 극장이 6:4 비율로 부담하고 있고 생계 보조나 필수품 구입에 관한 명목으로 내년에는 예산이 좀 더 편성된다는 얘기도 들리니, 많은 예술가를 비롯해 전 세계인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큰 문제 없이 지내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학교에 재학 중인 친구들도 월 500유료(약 70만 원) 이상의 생활비 지원을 받는데요. 이런 위기 상황이 되니 50% 가까이 세금을 부담하는 독일 국민들의 정신을 통해 복지의 힘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코로나 이후에 긍정적으로 개선되는 점들도 있어요. 먼저 희소식 하나. 드디어 독일에도 배달문화가 확실히 정착되었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이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르실 거예요.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없으니 많은 식당이 배달을 시작했어요. 물론 자영업 현장에 계시는 분들께는 이 변화가 힘겨운 일이겠지만요. 치킨을 먹기 위해 왕복 1시간을 이동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체화하는 요즘이에요.
또 하나는 유럽의 매니악하고 전통적,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가 미디어 무브먼트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베를린 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을 제외하고는 클래식 콘텐츠를 접하기 어려웠는데, 비엔나 국립 오페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노이브란덴부르크 필하모닉에 이르기까지 무관중 라이브 방송이나 녹화 중계를 시도하고 있어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유의미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하루빨리 이 상황이 해결되어 한국에서도 저와 제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기를 바라요. 아쉬운 대로 제 작품 하나를 덧붙입니다. 'Idly Idyll'은 '전원곡'이라는 뜻도 이지만 속어로는 '빈둥빈둥 놀다'라는 뜻도 있어요. 팬데믹으로 인해 '할 것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을 표현했죠. 처음에는 규칙적이던 일상의 삶이 갑자기 정지된 부작용으로 어떨 줄 몰랐지만, 작곡, 축구, 게임, 공부 등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찾아 더 바쁘게 봄, 여름, 가을을 보낸 저를 나타낸 곡이지요. 곡 제목과는 달리 쉴 새 없이 시끄러운 곡입니다. 변화무쌍한 이 곡을 들으며 생기를 느끼셨으면 좋겠네요.
2020. 12. 12
아틀란티스의 황제
올해 한국에서의 첫 활동들이 계획되어 있었기에 기대가 컸었어요. 4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제 작품이 피터 외트뵈시 선생님의 지휘로 초연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취소되었고, 두어개 연주 리허설의 부지휘자로 설 기회도 사라졌죠. 2년 만에 가는 한국이라 정말 기뻤는데, 결국 3년을 넘기게 되었네요. 그 외에도 스위스 그슈타트 페스티벌 이후 한국 매니지먼트사와 인연이 닿아 같이 이런저런 일들을 해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마저도 힘들어졌어요. (내년을 기약하며 힘을 내봅니다!)
여름부터 심각해진 유럽 상황에서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었지만 빅토 울만(Viktor Ullmann)의 소규모 오페라인 '아틀란티스의 황제(Der Kaiser von Atlantis)'는 9월부터 10월까지 총 3번의 공연을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었어요.
'아틀란티스의 황제'는 제가 감독한 첫 오페라여서 의미가 크기도 했지만, 작곡 배경과 작품의 내용이 현재 상황과 맞물려 있기에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2차 세계대전 당시 테레진 강제 수용소(Theresienstadt)에서 생을 마감한 빅토 울만의 유작인 이 오페라는 실제로 감금 당시에 쓴 작품이에요. 몰락한 아틀란티스와 황제는 당시 독일의 나치 체제와 히틀러를 겨냥하는 표현이죠. 당시 울만과 함께 지냈던 수용소 동료들을 위해 쓴 작은 편성(15개의 악기와 7명의 성악가, 모두 빈필하모닉 단원 등 매우 유명한 예술가였다고 합니다)의 오페라는 연습 도중 들통이 나 공연은 이뤄지지 못한 채 모두 아우슈비츠로 연행되어 가스실에서 살해되었다고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Der Tod)' 역할을 했던 베이스 성악가만이 생존했다고 합니다.
작곡가 빅토 울만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군으로 참전해 대령으로 전역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귀족 칭호까지 받으셨던 분이래요. 빅토 울만이 귀족 집안의 자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우슈비츠에서 죽임을 당했으니 당시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자비함을 넘어 광기 넘치는 전쟁 범죄가 무차별적으로 벌어졌던 거지요. 거스를 수 없는 체제와 수용소라는 끔직한 환경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려 했던 그들의 용기가 느껴집니다. 이 작품을 쓰지 않았더라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후대에도 길이 남을 역사적인 명작을 남겨준 그들에게 애도와 감사를 표하고 싶어요.
이 작품이 이번 시즌 오프닝 무대에 오르게 된 것도 현재 코로나19의 상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극의 줄거리는 전쟁을 일으킨 정복자 아틀란티스의 황제가 몰락하는 내용입니다. 죽음의 신이 전쟁터에서 너무 많은 영혼이 죽자 더는 아무도 저승에 받아줄 수 없다며 파업을 선고합니다. 오페라 중반에 전쟁 포로들을 고문하고 학살하라는 지시에도 아무도 죽지 않는 것에 놀란 황제가 의사와 나누는 대사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죽지 못하는 것을 전염병이라 생각한 황제가 "전염병이 발생한 이후 몇 명이 죽었는가"라고 묻자 의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전쟁으로 승승장구하던 황제는 힘을 잃게 되지요. 그는 인간의 죽음을 다시 받아달라며 그 첫 번째 영혼으로 자신을 바칩니다. 독재자의 죽음에 기뻐하는 사람들 앞에 죽음의 신이 나타나 모두 깜짝 놀라며 극이 끝납니다. 하나의 두려움이 사라져도 또 다른 두려움이 생겨난다는 걸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시대와 문화적 공감, 역사적 지식, 연출적인 부분까지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디 이 힘든 시기를 모두 잘 이겨낼 수 있기를...
월클 Say
막연히 음악가, 예술가라고 하면 왠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곤했어요. 적어도 저에게는요. '그들의 일상은 나와 다를까?'란 사소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이 코너는 음악가의 속사정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에 꾸려봤어요.
윤한결 is
월클이 첫 번째 주목한 음악가는 지휘자 윤한결입니다. 지휘자로서 윤한결은 2015년과 2017년 하이덴하임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음악 어시스턴트로 활동하였고, 2017/18 시즌 뉘른베르크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는 마르쿠스 보쉬 교수의 부지휘자, 2018/19 시즌 제네바 대극장의 오프닝 프로덕션에서는 게오르그 프릿치 교수의 부지휘자로 활동했어요. 그는 독일음악협회 지휘자 포럼의 장학생이자 2019/20 시즌부터는 노이쉬트렐리츠/노이브란덴부르크의 메클렌부르크 주립극장의 제2카펠마이스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9년 8월 250명이 참가한 그슈타드 메뉴힌 페스티벌 & 아카데미에서 11명의 결선 진출자 가운데 당당히 지휘 부문의 1등상인 네메 예르비 상을 거머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지휘자죠.
또한, 작곡가로서 윤한결은 2019년 11월부터 부다페스트의 페테르 외트뵈시 재단의 위촉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그의 차기 작품은 향후 2년 내에 페테르 외트뵈시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초연될 예정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