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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Dec 16. 2020

오페라 속 탈 우주급 광녀
'I am so mad'

복수 전공 루치아 VS 집착 전문 살로메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를 위해 떠날 거야"

루치아_ 도니체티 오페라 <람메르무어>



주인공 루치아는 에드가르도와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다. 하지만 행복 뒤에는 언제나 어둠의 그림자가 뒤따르는 법. 루치아의 오빠는 본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루치아를 권력과 재력이 있는 가문의 아르투로와 결혼시키려 한다. 심지어 동생을 협박하면서. 하지만 루치아에게는 오직 에드가르도 뿐이다. 결국 루치아의 오빠는 에드가르도가 잠시 떠난 틈을 타 계략을 꾸민다. 마치 그가 변심한 것처럼 편지를 위조한다. 사랑을 잃고 절망에 빠진 루치아는 결국 아르투로와 혼인서약을 맺게 된다.


시간은 흘러 결혼식 당일. (꼭 주인공은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한발 늦음) 루치아의 결혼식을 보고 충격받은 에드가르도는 루치아에게 자신을 배신했다고 비난하며 떠나버린다. 하늘이 무너져 버린 듯한 루치아의 '흑화'가 시작된다. (매드신의 서막) 루치아는 완전히 정신줄을 놓는다. 자신과 혼인한 아르투로를 찔러 죽인 후, 하얀 드레스 위 선혈이 낭자한 채로 에드가르도에게 자신의 사랑을 맹세하는 노래를 부른다. (엄마, 이 언니 무서워)



광란의 한판을 벌인 루치아는 모든 힘을 소진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에드가르도도 자신을 자책하며 목숨을 끊는다. 역시 오페라 국룰, 죽어야 끝난다.




'Il dolce suono(저 부드러운 음성이)'




"언젠간 꼭 갖고 말 거야. 널 죽여서라도"

살로메_ R.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살로메가 요한에게 첫눈에 반한 건 그가 '얼굴천재'였기 때문이다. 눈처럼 하얀 피부, 칠흑같이 검은 머리칼, 피처럼 새빨간 입술. 살로메는 그런 요한을 향해 "언젠가 당신에게 키스를 할 것"이라 말한다. (초면에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살로메는 요한을 광적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요한은 살로메를 거부한다. 그럴수록 살로메는 요한을 더욱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요한은 비난의 말로 살로메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feat.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한편, 살로메를 연모하는 헤롯 왕은 살로메에게 춤을 춰달라고 요청한다. 사랑에 눈이 먼 헤롯은 자신에게 춤을 춰준다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살로메는 '일곱 베일의 춤'을 추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금은보화도 아닌, 왕국의 절반도 아닌 요한의 목을. 그것도 은쟁반에 담아달라고 말한다. 결국 헤롯은 그녀의 소원대로 요한의 목을 베어 살로메에게 가져다준다.


이어 기쁨의 매드신이 시작된다. (지금부터 청소년 관람 불가) 피도 안 마른 요한의 머리를 건네받은 살로메는 "당신은 키스하지 못하게 했지만 난 결국 이렇게 이루어냈지. 이제 당신에게 키스할거야. 내가 말했지... 내가 말했지..."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요한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한 후, 요한의 머리를 향해 왜 자신을 쳐다보지 않느냐고 묻는다. (궁극의 매드니스) 이어 "넌 날 사랑했어야 해"라는 대사 위로 얹혀지는 아름다운 선율은 그야말로 기괴하다.



이 매드신의 결말도 역시나 죽음이다. 헤롯은 광기 어린 살로메의 모습을 참지 못하고, 병사들에게 살로메를 죽일 것을 명한다. 살로메는 병사들에게 방패로 맞아 죽는다.


'Ah! Du wolltest mich nicht deinen Mund küssen lassen(너는 나를 허락지 않았어)'



루치아와 살로메. '이 구역에 미친 x은 나다'의 표본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두 배역 모두 극단을 오가는 감정과 음악적 테크닉으로 가장 소화하기 어려운 배역으로 꼽힌다. 특히 루치아가 부르는 마지막 아리아와 살로메의 '아, 나는 당신 입술에 키스했어'는 소프라노의 끝판왕 같은 곡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핏빛 사랑을 했던 두 여인, 이들의 마음을 과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글쓴이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들리는 소리에 귀기울이는걸 좋아한다. 주말엔 보통 나이든 고양이와 함께 음악을 듣는다. 전세계 작곡가 묘지 찾아다니는걸 좋아한다. 음악 편식이 심하다. 모차르트를 가장 좋아한다. 장례식에는 꼭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틀어달라고 말하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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