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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Dec 30. 2020

잔혹한 크리스마스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2021년, 서거 100주년으로 돌아올 훔퍼딩크

<헨젤과 그레텔>은 그림형제의 동화로 이미 널리 알려졌다. 엥겔베르트 훔퍼딩크가 만든 헨젤과 그레텔은 원작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헨젤과 그레텔의 어머니가 계모가 아닌 친모인 점, 일부러 버린 게 아니라 숲에 갔다가 길을 잃게 된 점, 그 외에 추가된 몇 가지 설정과 장면을 제외하고는 동화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가져간다. 홈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은 1893년 12월 23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바이마르에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사랑받는 오페라 작품으로 꼽힌다.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중 'Dream Pantomeime(꿈의 무언극)'



헨젤과 그레텔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악'을 가진 캐릭터다. 우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표면적인 악인은 당연히 마녀다. 괴상한 분장에 잔인무도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마녀는 미수에 그치긴 하지만, 어린아이들을 과자집으로 현혹해 유인한 후 살찌워 잡아먹으려고 한다.(what!?) 형법 제 250조에 따라 명백한 살인미수다. 펄펄 끓는 물에 아이들을 넣어 삶아 먹으려 했으니 그 수법이 매우 잔인하며 고의적이다. 헨젤과 그레텔은 순진하게도 천사들이 자신들을 과자집으로 초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페라는 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감정을 이입시킨다. <멕베스>나 <루살카>  등 마녀가 등장하는 오페라는 여럿 있지만,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다. 반면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노래나 대사뿐만 아니라 분위기 등 오페라의 모든 기능이 마녀를 철저하게 악인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마녀를 만나 목숨을 잃을 뻔한 이 사건의 원흉은 헨젤과 그레텔을 쫓아낸 엄마다. 어린아이들이 우유병을 깼다는 이유로 숲 속에 있는 산딸기를 따오라며 쫓아낸다. 숲 속에 마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을 그 늦은 시간에 숲으로 보낸 행동은 형법 유기와 학대의 죄 중 제271~273조에 의거하여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 오페라 속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는 히스테릭한 성격으로, 평소에도 아이들을 학대한다. 아이들에게 과도한 집안일을 시키고, 이를 수행하지 못하면 체벌을 가한다. 빗자루를 만들어 놓지 않은 아이들을 향해 ‘납작하게 때려줘야겠다'는 대사도 등장한다. 아이들이 엄마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장면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동시에 자아낸다. 아이들은 그렇게 산딸기를 따러 마녀가 사는 숲으로 향한다.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역, Wolfgang Ablinger-Sperrhacke(테너)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상상할 수 없다. 이 오페라의 진짜 악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헨젤과 그레텔은 과자집에 갇혀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여기서 대단한 반전은 이들이 도망칠 궁리를 하는 게 아니라 마녀를 불태워 죽이기로 한다는 점이다.(what the!?) 실제로 아이들이 마녀를 화로에 밀어 넣어 잔인하게 살인을 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단순 우발적 사고가 아닌 화로 작동 법까지 미리 익히며 치밀하게 준비한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더 황당한 건 이들은 마녀를 죽이고 신나서 춤을 춘다.(사.패다!!) 동화 속 헨젤과 그레텔은 마녀를 불에 태워 죽인 뒤 금품까지 훔치는 대범함까지 보여준다. 





인물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악인이다. 아이들을 학대하고 집 밖으로 내몬 엄마, 모든 사실을 방관한 아빠, 아이들을 잡아먹으려는 마녀, 그런 마녀를 불태워 죽인 아이들까지. 사실 크리스마스에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잔혹한 내용이다. 이 의견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뼛속까지 어른이다. 아이들은 이 동화에서 달콤한 향기로 가득한 과자집을 상상하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단순하고도 순수한 교훈을 얻는다. 헨젤과 그레텔을 오페라로 만나는 묘미는 스토리 전개나 화려한 무대도 있지만, 무엇보다 성인들이 연기하는 헨젤과 그레텔이다. 잔인한 스토리에 비해 이들의 아리아나 합창은 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내년 2021년은 훔퍼딩크 서거 100주년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공연이 얼마나 열릴지는 알 수 없으나, 전 세계에서 각양각색으로 연출한 악인들을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쓴이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들리는 소리에 귀기울이는걸 좋아한다. 주말엔 보통 나이든 고양이와 함께 음악을 듣는다. 전세계 작곡가 묘지 찾아다니는걸 좋아한다. 음악 편식이 심하다. 모차르트를 가장 좋아한다. 장례식에는 꼭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틀어달라고 말하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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