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다시 쓴 음악 '두 편의 발레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색, 어떤 모양인가? 감정은 그 색도 형태도 한없이 다양하다. 같은 <부부의 세계>를 봐도 누군가는 사랑에 울고, 누군가는 불륜에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춤과 음악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서로 다른 작품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곡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탓에 누구든 그 멜로디를 조금만 들으면 적어도 "들어본 것 같은데?"하고 반응할 것이다. 이미 영화나 광고의 음악으로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피셜1: 영화 <천사의 시>나 <러브 오브 시베리아>에서 이 곡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그저 그가 유명하고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여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간결한 멜로디와 꾸밈을 더하는 반주 구성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멜로디가 귀에 꽂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만큼 간결하기 때문에 악보에 감정이 담길 때면 더욱 진솔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춤 또한 마찬가지다. 또렷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안무를 짜고 동작을 구현하기에 좋은 영감이 된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 그중에서도 느릿하고 우수에 넘치는 아름다운 선율의 2악장 '아다지오'. 10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악장은 맑고 화려한 1악장 '알레그로'와 대비를 이루며 더욱 그 분위기를 짙게 드러낸다. 건반에 의해 덤덤하게 연주되는 음표들과 주제를 약간씩 변형하며 주고받는 바이올린과 목관악기의 대화가 반복된다. 어떻게 보면 빈틈이 많아 보이는 2악장은 그렇기에 감상자가 상상하고 채워나갈 여지를 남긴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이토록 애절하고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일까.
모차르트 다큐멘터리 1부 | BBC (*모차르트의 사랑 이야기는 27:55부터)
선율은 간결하지만 그 안에 내포한 감정이 너무나 무한하기에 현대발레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은 더욱 빛이 난다. 이르지 킬리안의 1991년 작 '프티트 모르(Petite Mort)'에는 그의 너무나도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두 편, 21번 2악장 '안단테'와 23번 2악장 '아다지오'가 등장한다. 여섯 커플의 남녀와 여섯 개의 치마 모형, 또 여섯 개의 검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남성 무용수와 검, 여섯 무용수와 치마 모형은 또한 파트너를 이루며 춤을 만들어 낸다.
음악 없이 검이 바람을 가르며 내는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남성 무용수들의 무대에 피아노 선율이 등장하자 분위기가 전환된다. 또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관현악으로 바뀌자 여성 무용수들이 등장해 이들과 파트너십을 이룬다. 여섯 커플이 각각의 리듬에 맞춰 동작을 만드는 구성은 관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상징성을 지닌 소품, 누드에 가까운 무용수들의 신체가 어우러져 만드는 선, 조명이 만들어 내는 어둠과 빛은 미니멀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피셜 2: '프티트 모르'는 직역하자면 '작은 죽음', 또 '오르가슴'을 의미하기도 한다.)
같은 음악이 사용된 또 다른 작품이 있다. 앞서 '백설공주'를 통해 한 차례 소개한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1994년 작 '르 파르크(Le Parc)'다. 두 편의 소설, 라파예트의 <클레브 공작부인>과 피에르 쇼들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토대로 '공원'에서 스쳐 간 남녀의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1장과 2장은 소설의 내용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바로크 로코코 스타일의 화려한 의상을 갖춘 반면, 3장에서는 침실 속 남녀를 연상케 하는 백색 파자마 차림에 살결을 드러낸다. 이 작품의 1장에서는 피아노 협주곡 14번, 2장에서는 15번이 사용된다. 특히 2장 파드되에서는 악보를 충실히 따라 남성 무용수에게 피아노, 여성 무용수에게 관현악 선율을 배정해 춤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르 파르크(Le Parc)'
하이라이트이자 23번의 2악장 선율이 사용된 3장 파드되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에어프랑스 광고로 더욱 유명해진 장면이다. 남녀가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주변의 상황에 개의치 않고 오직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감정에 충실한 원초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프티트 모르'의 아다지오가 음악의 선율을 따라 그린 모던한 아름다움이라면, '르 파르크'의 아다지오는 음악이 남겨 놓은 여지를 남녀의 감정으로 가득 메우는 에로티시즘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음악적 해석이 중요한 현대발레에서는 그 역할을 소화하는 무용수마다 표현하는 색깔도 무척 다르게 나타난다. 그 춤에서, 몸으로 다시 쓴 음악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랑의 모양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글쓴이 김태희 (공연칼럼니스트)
공연예술을 글로 엮어내는 일을 한다. 회사의 파티션에서 벗어난 뒤 정한 직함은 ‘에디터’지만, ‘태희 씨’부터 ‘평론가’ ‘편집장’까지 당신이 원하는 무엇으로든 불린다. 발레에서 출발해 춤 전반과 클래식 음악을 거쳐 전통예술, 연극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웹이 익숙하고 편하지만 손에 쥐어지는 책만큼 아름다운 기록은 없다고 생각한다. 마감의 동반자는 매콤 달달한 떡볶이와 커피, 그리고 악보까지 외워버린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