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홍서현의 라이프러리
I'm_나라는 사람
87년생 홍서현
저는 잘 듣고 잘 웃는 사람입니다. 때때로 엉뚱하고 대체로 긍정적이죠. 어린 시절의 저는 자전거와 롤러블레이드를 즐기는 발랄한 소녀였어요. 첼로를 배우기 전까지는요. 어릴 적 영향인지 운동과 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예요. 첼로를 시작한 후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홀로 모드'가 늘어났죠. 하지만 저는 긍정적이고 쉽게 적응하는 성격이라 혼자 있는 것도 즐기게 되었어요. 1년 전쯤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했는데, INTP가 나오더라고요. 검사에 따르면 저는 내향적이고 직관적인 성격, 감정보다는 사고가 앞서고 상황에 따라 잘 맞춰 움직이는 사람인 거죠.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경험이 제 내부의 많은 것을 전복시켰나 봐요. 외향적이고 감각적인 활동을 좋아하던 소녀는 첼로 앞에서 진지하고 신중해지는 태도를 배웠고, 오케스트라 속에서 자신의 판단보다는 함께 맞춰나가고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습득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제 안에는 여전히 8살의 꼬마가 살아있습니다. 언제든 부르면 튀어나올 거예요.
첼리스트 홍서현
유년기에 성악, 피아노, 발레를 배우며 예술적 감각을 키워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8살에 처음 첼로를 접했죠. '멋있게 생긴' 첫인상에 마음이 뺏겼어요. 8살 아이의 손으로 활을 잡는 자세나 왼손을 다루는 일은 낯설고 어려웠어요. 하지만 이내 첼로가 내는 소리를 좋아하게 되었죠. 첼리스트 장한나를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멋진 것'에 약한 편이거든요. 그렇게 아주 조금씩 마음속 열망이 커져 첼리스트의 길을 걷게 됐네요.
Music_음악적 취향
87년생 홍서현
제게 음악은 즐기는 음악과 배우는 음악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뉘어요. 완전히 이분화시킬 수 없지만, 평소에 쉴 때나 운동할 때는 즐기는 음악 쪽을 선택해요. 클래식은 배우는 음악에 가깝죠. 가끔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는 추억이 담긴 곡을 꺼내 들어요. 시절이 지난 노래는 제게 그때의 공기나 질감, 감각을 다시 재현해주거든요. 예를 들면 조지 벤슨의 '식스 플레이'를 들으면 막 스무 살을 맞이했던 2007년으로 타임슬립하게 되죠. 지금은 못 가지만 노래방도 좋아해요. 노래방에 가면 완전히 즐겁거나 완전히 우울한 노래를 고르는 편이에요. 만약 지금 노래 한 곡을 꼭 불러야 한다면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를 부를 거예요. 말해놓고 보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제목이긴 한데, 그냥 제가 좋아하는 노래예요. ㅋㅋㅋ
첼리스트 홍서현
국내 아티스트 중에는 첼리스트 양성원 선생님을, 해외 아티스트 중에서는 노르웨이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의 연주 스타일을 좋아해요. 이들의 연주는 과장 없이 말끔하고 정직한 느낌이에요. 첼로곡 중 원픽은 드보르작의 '보헤미아의 숲에서(From the Bohemian Forest Op. 68)' 중 5번 고요한 숲인데, 낮은 음악의 선율이 길게 이어지며 릴렉싱 음악으로 듣기 좋아요. 감정의 근육을 완전히 이완시켜주죠. 만약 콘서트를 연다면 스트라빈스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이탈리안 모음곡'으로 경쾌하게 시작해 피날레는 슈트라우스의 첼로 소나타 바장조 Op. 6으로 화려하게 마치고 싶어요. 물론 프로그램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Outlook_세계관
첼리스트 홍서현
저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아니에요. 그저 오늘은 어제보다 조근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매일 연주하는 사람이죠. '음악성'은 제게 언제나 콤플렉스였어요. 악기 연주자로서 짙은 호소력이나 명확한 전달력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거든요. 물론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요. 매일 연습을 해요. 연습을 안 하면 손의 느낌이 다르다는 걸 가장 먼저 제가 느껴요. 제 특기이자 무기인 노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아무리 바빠도 연습은 거르지 않으려고 해요. 예전에는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화내고 슬퍼하며 감정을 소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아요.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나를 더 이해해주려고 하고 있어요. 내일의 나는 분명 오늘의 나보다 잘할 테니까요.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저는 그렇게 믿어주려고요.
코리안심포니 단원 홍서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Der Titan)'을 들은 적 있어요. 4악장으로 이루어진 긴 곡이 연주되는 동안 완벽히 몰입해서 들었어요. 제겐 너무도 멋진 거인이었죠. "저 무대에서 저 곡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멋있었어요. 역시 멋있는 것에 대해 전 이길 수 없나 봐요. 그러던 어느 날 코리안심포니 오디션 공고를 봤어요. 운 좋게 제가 그리던 무대에 서게 되었죠. 2016년 입단해 첼로 파트 막내 시절을 거쳐 벌써 6년이나 되었네요.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소통이에요. 함께 하모니를 이루는 단원들과 소리의 크기와 톤과 속도를 맞추고 곡에 대한 해석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의미도 있고, 오래전 이곡을 작곡한 사람과의 소통을 의미하기도 해요. 곡이 쓰인 당시의 배경, 당사자의 심리나 메시지 등을 끌어와 지금의 순간에 코드를 꽂아 관객들에게 전도시켜야 하죠. 저는 전달하는 사람이니까 감정에 너무 빠져드는 건 경계하려고 해요. 제가 취해버리면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소리를 들려줄 수 없는 것 같아요. '절제'라는 단어 위에 왜 '미'라는 낱자를 붙이는 것인지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좋은 테크닉뿐만 아니라 잘 소통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누군가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뒤흔들기도 하는 첼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STAGE_무대 위 순간들
코리안심포니 단원 홍서현
동료들과 함께 오르는 무대는 내 편이 든든하게 나를 지탱해주는 느낌이에요. 물론 적군은 없지만요. 특별히 하나의 무대를 꼽을 수는 없어요. 저에겐 모든 무대가 소중하거든요. 매번 연주를 마치고 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올 때면 '음악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습할 때 힘들었던 기억 같은 건 그 박수 소리에 떠밀려 순삭 돼요. ㅎㅎ 오롯이 나만을 위한 박수는 아니지만, 그 많은 소리들이 감사와 기쁨으로 치환되어 제 마음속에 저장되는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소리에 훨씬 예민해졌어요. 내 소리가 큰지 작은지 날카로운지 부드러운지 잘 알아야 합을 맞출 수 있거든요.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가장 좋은 점은 주변에 선생님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모든 단원이 제겐 좋은 선생님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가 가장 좋은 선생님이에요.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지만, 앞으로 열심히 배워야죠.
첼리스트 홍서현
지난 3월 5일 실내악 시리즈 '멘델스존 & 슈베르트' 무대에 섰어요. 웅장하고 힘 있는 오케스트라 무대와 달리 실내악은 4명, 8명 이하의 인원으로 하는 거라 그만큼 부담감이 있어요. 하지만 실내악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 소극장 연극 같은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구성원이 적으니 좀 더 친밀하게 소통하며 의견을 제시하고 조율하며 소리를 만들 수 있어요. 관객과도 가까이 만날 수 있어 또 다른 기대감이 크죠. 이번에 연주한 곡은 멘델스존의 '현악 8중주 내림마장조 Op. 20'이에요. 그가 16세가 된 해에 작곡한 곡이죠. 부유한 집에서 금수저로 자라서인지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와 달리 그만의 밝고 행복한 분위기가 있어요. 이 곡을 들으며 아무런 걱정의 잔상 없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길 바라요.
글쓴이 이리 (공공문화 칼럼니스트)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에 능한데 끈기가 부족하다. 일 처리를 해놔야 속 편한데 게으른 편이다. 결단이 빠르고 성미가 급한데 만든 회사 이름이 '슬로우모어'다. 완벽한 문과 체질인데 뼛속부터 이과 체질인 남자와 살고 있다. 잘하는 건 없는데 시키면 다 한다. 부캐는 순수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는데 본캐는 철저히 상업 예술로 벌어먹고산다. 한 마디로 일관성 없는 것이 일관적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