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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Apr 08. 2021

하나의 노래가 가진 힘

<와일드 마운틴 타임>에서 백조를 만나다

듣고 보고 즐기는 사람에게 장르는 취향을 의미한다. 나는 대체로 영화의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전쟁영화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고전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고전음악을 좋아할 수는 없는 법. 특정 작곡가의 음악에서도 취향은 반영된다. 한 예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특별히 좋아하지만, 교향곡 6번 '비창'은 거의 듣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위대한 예술가를 그리며’라는 부제가 붙은 '피아노 삼중주 가단조 Op.50'인 반면, 차이콥스키의 음악 중 가장 유명한 발레 모음곡 '백조의 호수(The Swan Lake Op.20)'는 별로 관심이 없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유를 일일이 대기란 힘든데, '백조의 호수'의 경우에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다.


나는 클래식 발레보다 모던 발레 공연을 먼저 접했다. 난해한 형식을 이해하기는 힘들었으나, 무용수의 몸에 불거진 핏줄에서 자유로운 열정을 느껴 반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클래식 발레를 보게 되었는데, 그 감상이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모던 발레와 달리 클래식 발레에선 공중을 돌다 착지하는 자세가 필연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들리는 ‘쿵’ 소리에 신경이 쓰였다. 무대 탓을 할 수도 없는 것이 예술의 전당의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보아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특히 여자 무용수의 몸이 착지할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개인적으로 고통에 가까운 것이었다. 누군가 나를 유별나다고 흉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내 머릿속에선 깃털처럼 가벼운 몸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상상을 하는데 쿵쿵 소리가 들리니 어쩌란 말인가.


얼마 전 <와일드 마운틴 타임(Wild Mountain Thyme)>이란 영화를 보았다. 로즈메리와 안토니의 오랜 사랑 이야기다. 아주 옛날에 본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1952) 때문인지, 나는 <와일드 마운틴 타임>의 배경이 아일랜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화에 빠져들었다. 연전에 <다우트>(2008)로 나를 믿음과 의심의 세계로 안내했던 존 패트릭 샌리는 신작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넌지시 알려준다. 로즈메리는 어릴 적부터 안토니를 사랑하는데, 안토니는 엉뚱하게 피오나에게 눈길을 준다. 로즈메리의 아버지는 슬퍼하는 딸을 보며 '백조의 호수'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며 “너는 수많은 소녀 가운데 여왕이란다. 백조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라고 위로한다. '백조의 호수'의 그 유명한 부분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며 로즈메리는 숙녀로 성장한다.



<와일드 마운틴 타임>



영화에 삽입된 '백조의 호수'는 미하엘 헐라스가 슬로바키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낙소스 레이블 음반과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온딘 레이블 음반을 사용했다. 두 음반 중 전자는 1999년 녹음이고 후자는 2009년 녹음이다. 극 중 플레이어에 올려놓은 옛날 레코드로 상상하기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음악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민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사소한 장치를 눈치챈 사람이라면 눈살을 찌푸리기 마련이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간다. 로즈메리의 짝사랑은 계속되고, 소심한 성격의 안토니는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어느 날, 로즈메리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백조의 호수'에 맞춰 춤을 춘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을 떠나 뉴욕으로 향한다. 단 하루 머문 뉴욕에서 그는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러 간다. 발레리나에게 어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그는 굵은 눈물을 흘린다. 클라이맥스라 할 두 개의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백조의 호수'는 영화의 주제를 대신하는 역할을 맡는다. 웅장하디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세상의 한구석에 살던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인물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백조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눈물이 안 흐르겠나. 거기에 더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잘 알려진 에밀리 블런트가 로즈메리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 덕분에 내 마음도 스르르 녹기 시작했다.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Swan Lake)' 지휘 임헌정 연주 코리안심포니



이 영화에는 '백조의 호수'와 더불어 보석 같은 순간을 빚는 또 하나의 노래가 있다. 안토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죽음을 기리는 자리에서 로즈메리가 귀에 익숙한 멜로디를 부른다. 원래는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졌으나 아일랜드의 포크 가수가 편곡하면서 유명해진 곡 '아가씨, 같이 갈래요?(Will you go, Lassie, go)'다. 이 곡에는 다른 제목이 또 하나 더 있는데 영화의 제목에 쓰인 '와일드 마운틴 타임'이다. 여름이 다가오고 백리향(타임)이 필 때, 연인에게 사랑을 청한다는 게 노래의 내용인데, 영화의 내용과 어울려서인지 노래가 나오는 내내 눈시울을 적셨다. 노래는 영화의 말미에 반복돼 나온다. 사랑을 이룬 안토니는 로즈메리를 불러내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청한다. 영화의 배경은 현대이지만, 아일랜드의 소박한 풍광과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노래가 있어 나는 고전적인 사랑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노래가 가지는 힘은 그만큼 크다.



'아가씨, 같이 갈래요? (Will you go, lassie, go)'


영화를 보고 며칠 후, 나는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다. <와일드 마운틴 타임>을 수입한 회사의 대표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다. 영화의 제작과 수입을 병행하는 회사를 이끌던 그에게 영화의 운은 그리 좋지 않았다. 성공하는 작품의 수는 드물었고, 많은 영화가 관객과 만나지 못하고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사태가 겹치고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누군가에게는 넘쳐나는 돈이 누군가의 목숨을 죄는 현실이 참으로 슬프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급변하고 있으며, 영화뿐 아니라 예술 환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함부로 그 미래를 논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모든 고통이 끝날 즈음, 나는 '김동영'이란 이름을 한 번쯤 기억하고 싶다. 그가 아일랜드의 전원 같은 아름다운 곳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백조의 호수'와 '아가씨, 같이 갈래요?(Will you go, Lassie, go)'를 들을 때면 그의 생전에 마지막으로 개봉될 예정이던 <와일드 마운틴 타임>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글: 이용철(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직장을 나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고된 현실을 겪으며 내 결정을 후회한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내게 힘을 준 것은 인간과 영화와 음악이었다. 팝과 록을 지나 몇 년 전부터 바흐에 도달해 기쁨을 맛보는 중이다. 예측 불가능한 삶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을 진리는 바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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