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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Apr 21. 2021

코모도 : 비올라 소나타 Op.120

비올리스트 원영석의 라이프러리

I'm_나라는 사람



81년생 원영석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장기자랑이 있으면 늘 나가서 노래했고, 동요 부르기 대회에도 나갔었고요. 사립초등학교에 다녀서 특별활동의 기회가 많았어요. 태권도, 스케이트, 수영 등 운동을 배우기도 했고, 취미로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어요. 평범한 아이들처럼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문과 체질인 제가 이과를 선택하는 바람에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부모님께서 네가 음악을 좋아하니 음악에 도전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하지만 어릴 때 취미로 배웠던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마침 제자 중에 한 분이 비올리스트였거든요. 그분의 추천으로 비올라라는 악기를 알게 됐어요. 저는 그때 비올라라는 악기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비올라 전공생이 많지는 않았고, 현실적으로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우선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늦게 시작한 만큼 하루 9시간씩은 연습했던 것 같아요. 재수 없이(?) 전 대학에 붙었어요. 다시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죠. 





처음 비올라를 시작했을 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바이올린 연주 경험은 있었지만, 시간이 꽤 흘렀고, 주법은 비슷해도 악보 보는 법이나 다른 점이 많았어요.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힘들었어요. 예술 중고등학교를 거쳐 오랜 시간 연주 실력을 쌓아온 친구들과 같은 선상에서 경쟁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죠. 학교 지휘자 선생님께 불려가 혼난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정보가 너무 부족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식한 방법을 쓴 적도 많아요. 예를 들면 오케스트라 연주 시간에 들어가 녹음을 한 후 그걸 반복해 들으면서 연습하기도 했어요. CD를 사서 들으면 되는 건데 말이죠. 이 얘기만 들으면 제가 굉장히 열심히 연습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많이 놀았어요. 대학교 1학년 때는 다들 그렇지 않나요? ㅎㅎㅎ



비올리스트 원영석 

이십 대 초반 병역의 의무를 경찰대학교 안에 있는 국립경찰교향악단에서 지냈어요. 흔히 남자는 군대에 다녀오면 생각이 많이 바뀐다는데 저도 그랬어요. 그 안에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후 학교에 복학한 저는 학교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실내악 콩쿠르도 나가고, 교내 오케스트라 활동도 열심히 했죠. 그리고 대학교 4학년 때 금난새 선생님께서 유라시안필하모닉에서 연주할 기회를 주셔서 1년 반 정도 객원 연주자로 있었어요. 첫 사회생활은 제게 많은 경험을 주었고, 구체적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인생을 연주자로 살아야겠다는 진지한 생각도 그때 했던 것 같아요. 유학과 취직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이미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느낀 터라 자꾸 취직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그래서 몇 군데 시험을 봤는데, 전부 떨어졌어요. 그리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시험을 보러 가기 전 마음을 먹었어요. 이게 마지막이라고. 여기서 떨어지면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었죠. 그런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저를 받아주셨어요. '운명'이라고 하면 조금 유난일 수도 있겠지만, 제 인생에는 큰 전환점이자 시작점이었어요.


늦은 나이에 악기를 시작하고 늘 뒤처진다는 생각에 활발했던 성격이 조금은 소심해졌어요. 남들보다 악보를 이해하고 외우고 연습하는 시간도 더 오래 걸렸고요. 그래서 좀 더 시간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항상 남들보다 더 오래 많이 연습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어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저를 꽉 옥죄던 마음의 근육이 조금은 이완된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은 약간의 긴장을 즐기는 편이에요. 너무 느슨해지면 마음의 근육도 지방처럼 변할 수 있거든요. 


평소에는 속내를 다 드러내 표현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내면에는 유머 욕심도 좀 있고, 장난기도 있고, 불끈불끈 솟구치는 마음도 있지만, 겉으로 많은 표현을 하진 않아요. 하지만 음악을 할 때는 감성이나 표현에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어요. 처음 레슨을 받을 때도 감성적인 부분에서는 꽤 칭찬을 들었거든요. 평소의 저와 음악가로서의 제가 가장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죠.





#Music_ 개인적 취향



81년생 원영석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워낙 음악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노래'를 좋아해요. 김동률, 신해철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으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두 사람의 곡은 전곡이 명곡입니다. 전주만 들어도 알 정도로 많이 들었어요. 결혼식 때 아내에게 노래를 불러줬는데, 그때도 김동률 씨의 '감사'를 불렀어요. 코리안심포니 단원 중에도 제가 축가를 불러드린 분들이 몇분 계세요. 팝은 자주 듣지는 않지만, 문득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거나 가끔 생각나는 곡이 있으면 찾아들어요. 저는 힙합이나 록보다는 발라드 감성이에요. 혼자 있을 때는 자주 노래를 흥얼거리고 특히 운전할 때는 노래를 불러요. 아마 저처럼 차 안에서 혼자 노래 부르는 분들, 꽤 많으실 거예요.


저는 운동도 좋아하는데, 특히 테니스를 좋아해요. 4대 메이저 대회나 좋아하는 선수들의 대회도 챙겨봅니다. 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하는 것도 좋아요. 운동은 악기 연주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가장 비슷한 건 리듬과 호흡, 그리고 반복적인 연습이 주는 분명한 결과일 거예요. 테니스에서도 공이 오는 리듬, 치는 리듬이 있어요. 박자를 잘 타야 정확한 타격을 할 수 있죠. 호흡도 중요해요. 관악기도 아닌 현악기가 무슨 호흡이 중요하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악보의 흐름, 함께 하는 연주자들과도 호흡을 맞춰야 하고, 혼자 연주할 때도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연습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비올리스트 원영석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비올리스트를 꼽으라면, 당연히 가장 먼저 조명희 선생님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국내에서 활동하는 비올리스트 중 선생님께 지도받은 학생들이 정말 많아요.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스승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기억 속에 선생님은 항상 좋은 분이셨어요. 선생님 덕분에 늦은 나이에 비올리스트가 되었고, 혼이 난 적도 있지만 언제나 꼭 필요한 메시지와 격려가 동반된 것이었어요. 또 베를린필하모닉의 수석 비올리스트인 '아미하이 그로츠(Amihai Grosz)'도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편안하면서도 강인한 소리를 가지고 있어요. 최근에 실내악 시리즈 <슈베르트&멘델스존>을 준비하면서 그의 영상을 보면서 참고했어요. 오는 7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예정되어 있어요. 아마 저뿐 아니라 국내의 많은 비올리스트들이 그의 내한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Amihai Grosz, solo viola, R. Strauss - Don Quixote, Runnicles



제가 좋아하는 곡은 브람스의 '비올라 소나타'입니다. 비올라 소나타 1번(Sonata for Viola and Piano No.1 in F minor, Op.120, No.1)은 브람스 특유의 우울한 아름다움, 부드러운 긴장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와 대조적으로 비올라 소나타 2번(Viola Sonata in Eb major, Op.120, No.2)은 예쁜 느낌으로 시작해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매우 서정적인 곡이에요. 비올라가 가진 음색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원래 이 곡은 브람스가 클라리넷을 위해 작곡한 곡이지만, 비올라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해 비올라 버전으로 만들어진 곡이에요. 비올라 협주곡 중에서는 영국 작곡가 본 윌리엄스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Vaughan Williams : Suite for Viola & Orchestra)을 가장 좋아해요. 그중 첫 번째 트랙인 'Prelude'는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곡이에요. 가본 적도 없지만, 영국 외곽에 있는 어느 목가적인 분위기의 마을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보는 느낌 같다고나 할까요. 음악의 힘은 그런 것 같아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조차 상상하고 바라보게 해주는 것이요.



Ralph Vaughan Williams: Suite for Viola & Orchestra



#Outlook_ 세계관



비올리스트 원영석 

저는 그저 오늘 내게 주어진 연습과 무대에 충실히 하는 정도의 사람이에요. 제 인생 이정표에 솔리스트로서의 길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서라기보다는 제게 주어진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어요. 물론 왜 한 번도 꿈꾸지 않았을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죠. 가끔 오케스트라를 선택하지 않고 유학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선택하지 않은 것들은 늘 잔여 감정을 남기니까요. 하지만 결론은 항상 잘 선택하는 것으로 끝을 맺어요. 제겐 여전히 결핍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제가 더 나아갈 길이지 뒤돌아서거나 멈춰야 하는 조건은 아니거든요. 


저는 인생이든, 악기든, 사람이든 안정적인 상태를 좋아해요. 비올라의 음역과 음색도 그런 점에서 좋아요. 저에게 너무 익숙한 소리라서 그런지 제겐 가장 편안한 소리가 비올라 소리예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 많이 들은 소리를 태어난 후에도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고 하잖아요. 저에겐 비올라의 소리가 그래요. 악기 연주자로서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도,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안정감을 느끼길 바라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저도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길 원해요. 특히 아이가 태어난 지 20개월 정도 되었는데, 아버지로서 역할을 잘하고 싶어요. 해보니까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게 육아더라고요. 그래도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행복감과 책임감이 동시에 커지는 느낌이에요. 인생에 안정감이 클 때, 좋은 연주자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를 이분화해서 생각할 수는 없어요. 이젠 저와 제 가족이 삶이고, 그 삶 속에 음악과 무대가 있거든요.





코리안심포니 단원 원영석 

오케스트라 플레이어로 살고 있지만, 저는 실내악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하는 실내악 시리즈에도 여러 번 참여했어요. 오케스트라 안에서 솔로 악기가 아닌 집단 악기들은 아무래도 주목도가 낮은 편이에요. 제가 욕심은 없어도 욕망까지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전 가수를 꿈꿨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를 갈망하는 사람이에요.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주길 바라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대에서 핀 조명을 받는 것은 모두에게 기분 좋은 일일 거예요. 저의 그런 작은 욕망은 실내악 무대가 채워주는 것 같아요. 물론 더 많이 준비해야 하고,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있죠. 그래서 매번 무대를 끝마치면 '이제 다시는 안 해야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음 기회가 오면 또 하고 싶어요. 실내악은 제 오케스트라 인생에서 욕망을 해소하는 탈출구이자, 윤활유 같은 존재입니다.



A. Piazzolla - Libertango (performed on Violas)



#STAGE_ 무대 위 순간들



코리안심포니 단원 원영석 

2006년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 합류해 정말 많은 무대를 해왔어요.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 필름처럼 공연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요. 그런데 왜 좋았던 무대보다 '사건·사고'가 먼저 떠오를까요? 힘들었던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처럼 그런 일들은 잘 잊혀지지 않는 것 같아요. 지난 3월 국립발레단의 <해적> 공연이었어요. 보통 오페라나 발레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는 관객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무대 바로 밑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에서 연주를 해요. 그런데 연주 도중에 극 중 소품이었던 칼이 날아오는 거예요. 제 악보를 세워둔 보면대에 맞고 떨어졌는데, 연주가 끝나고 칼을 주워보니 칼날이 진짜 쇠로 만들어진 재질이더라고요. ㅎㅎㅎ 


작년부터 해외 공연이 모두 취소된 후로는 해외 투어를 다녔던 기억이 그리워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카네기홀에서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슬로바키아의 한 예쁜 홀에서 연주했던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 대극장에서 연주했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두리안처럼 생긴 싱가포르의 에스플러네이드의 콘서트홀까지 모두 선명하게 기억나요. 자유롭게 무대를 넘나들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이리 (공공문화 칼럼니스트)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에 능한데 끈기가 부족하다. 일 처리를 해놔야 속 편한데 게으른 편이다. 결단이 빠르고 성미가 급한데 만든 회사 이름이 '슬로우모어'다. 완벽한 문과 체질인데 뼛속부터 이과 체질인 남자와 살고 있다. 잘하는 건 없는데 시키면 다 한다. 부캐는 순수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는데 본캐는 철저히 상업 예술로 벌어먹고 산다. 한 마디로 일관성 없는 것이 일관적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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