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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May 18. 2021

영혼의 날개를 가진 환상교향곡 Op.32

바이올리니스트 김령의 라이프러리

#I'm_ 나라는 사람


67년생 김령 

어릴 때부터 밝은 아이였어요. '해피 바이러스'라고 불릴 만큼 활동적인 편이었죠.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기에 음악은 저에게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바이올린을 처음 접한 건 7살 때였어요. 아버지께서 처음에는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으셨다고 해요. 그런데 아버지 친구분 중에 KBS교향악단의 전신인 국립교향악단에 몸담았던 분이 계셨어요. 어느 날, 그분이 제 손을 보더니 피아노 말고 바이올린을 시키면 좋겠다고 하셨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예요. 그렇게 바이올린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처음부터 엄청난 열정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콩쿠르에 떨어진 적도 있지만, 선화예중-예고를 진학하고,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을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코리안심포니 단원 김령 

대학교 3~4학년 때, 진로를 결정해야 했어요. 사실 저는 유학을 가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께서 반대하셨고 고민이 많았죠. 그때 마침 제가 다니던 학교 교수님이자 코리안심포니 1기 감독님이셨던 홍연택 선생님께서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제안해주셨어요. 제가 특차생이기도 했고,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이고 해서 관심있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코리안심포니) 오디션을 봤고, 코리안심포니에 함께할 수 있었죠. 사실 입단하기 전인 1985년에 친구들과 코리안심포니 창단 공연으로 보러 갔던 기억이 있어요. 처음 오케스트라에 입단해서 연주도, 오케스트라 생활도 재미있어서 만족도가 컸어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 어느 정도 키우고 보니 유학에 대한 미련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진지하게 말했어요. 유학을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제 말에 남편은 한치 망설임 없이 다녀오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쿨한 반응에 가족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커졌고 악단과도 정이 많이 들어서 떠나고 싶지 않더라고요. 1990년 1월에 입단했으니,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네요. 2년 전에 30주년 근속 단원상을 받기도 했어요. ^^





#Music_ 개인적 취향


67년생 김령 

저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요. 어릴 때 동요대회를 나가기도 했을 정도였죠. 고등학교 때 한 번은 복도에서 친구들과 떠들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벌을 받았는데, 고3 언니들 반에 가서 노래를 부르라는 거예요. 고생하는 고3 선배를 위한 위문? 공연인 셈이었죠. 그때 정말 신나게 노래 부른 기억이 나요. 가요를 불렀는데, 선배들이 좋아해 주었죠. 노래 부르는 걸 워낙 좋아해서 노래방에 가는 것도 좋아했어요. 음악을 들을 때 가리는 편은 아닌데, 대체로 발라드를 듣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신나는 음악이 필요하면 트로트도 불러요. 요즘에는 방탄소년단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노래가 좋더라고요. 음악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에는 개인적인 시간이 있으면 주로 수영이나 가끔 동료들과 등산을 해요. 저의 근속의 비결이 '수영'에서부터 나왔다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현악기를 다루는 사람에겐 직업병이 있어요. 어깨와 팔 통증을 달고 살죠. 무대에 오르려면 체력보충과 컨디션회복이 중요한데 수영만한게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단원들에게 적극 권장하고 싶은 운동이 수영이에요.  



(좌) 20년 간 이어온 '수영' (우) 한라산 등반



바이올리니스트 김령 

코리안심포니에 입단하기 전에는 낭만적인 음악을 좋아했어요. 대표적으로 브람스나 차이콥스키, 멘델스존 등이었죠. 하지만 코리안심포니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고전의 매력에 더 빠져든 것 같아요. 이전에는 매력을 잘 못 느꼈던 모차르트나 베토벤에도 관심이 생기게 되었고, 그렇게 점차 영역이 넓어지다 보니 지금은 모든 음악이 그냥 좋더라고요.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는데, 정말 그냥 좋아요. 음악적 취향도 중요하지만, 취향을 뛰어넘어 음악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음악인으로서 조금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아직도 제 성장이 끝났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코리안심포니와 함께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시야가 넓어지고 있음을 느끼거든요. 그래도 좋아하는 곡을 고르자면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와 차이콥스키 첼로협주곡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꼽겠어요. 무엇보다 오케스트라 곡은 다 좋아해요. 설사 싫어했더라도 연주를 해본 후에는 다 좋아진다는... 어쩌죠. 뭐 하나를 못 고르겠네요. ㅎㅎ



#Outlook_ 세계관


바이올리니스트 김령 

저희 어머니는 보수적이고 엄하신 분이셨어요. 바이올린을 시작한 후로 어머니께 많이 들었던 말이 "연습하라"는 말이었거든요. 그런 채찍질이 처음에는 싫었는데, 어쩌면 제가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성실하게 연습하는 습관을 길러주신 거니까요. 제 인생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가장 큰 전환점은 아무래도 코리안심포니 입단일 거예요. 대학에서도 오케스트라를 하긴 했지만, 코리안심포니 입단 이후 솔로 연주와 오케스트라 연주의 차이를 더 극명하게 느꼈달까요. 솔로 연주할 때는 나만 혼자 잘하면 돼요. 피아노 반주가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맞춰주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되죠.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절제가 필요해요. 동료들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눈을 마주치며, 시간과 취향과 감성과 생각을 모두 융합해서 앙상블을 만들어야 하죠. 단원들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솔로만 잘한다고 해서 오케스트라를 잘하는 건 아니거든요. 오케스트라 플레이는 연주자에게 정말 중요한 음악적 교감과 다방면의 역량을 강화해주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코리안심포니 단원 김령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긴 세월 몸담으면서 느낀 건 ‘경험’의 위대함이에요. 여러 장르의 음악과 다양한 스타일의 지휘자 그리고 각양각색의 무대로 체화된 다채로운 경험은 어떤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 같아요. 그건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거라 누가 가르쳐서 되는 건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는 많이 헤맸던 거 같아요. 하지만 계속 배워가야 한다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처음 코리안심포니에 입단했을 때 고 백운창 초대 악장님이 선배들을 ‘능구렁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나쁜 의미가 아니라,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지휘자가 원하는 걸 빠르게 캐치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그렇게 부르셨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선배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단원들이 와도 오케스트라가 흔들리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것 같아요. 코리안심포니의 화합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신기한 건 코리안심포니 단원들은 모두 가족 같아요. 그래서 항상 얼굴 보면 기분 좋고, 따뜻하고 즐거운 분위기예요. 무엇보다 모두 성품이 좋아요. (너무 좋은 점만 말했나요? ㅎㅎ)



(좌) 제2바이올린 단체사진 (우) 30년 근속 감사패



#STAGE_ 무대 위 순간들


코리안심포니 단원 김령 

코리안심포니 단원으로 정말 많은 무대에 섰어요. 하나를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무대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 더운 여름, 야외 연주를 한 적이 있어요. 가무대여서 햇빛을 가릴 수 있는 게 없었고, 직사광선을 맞으며 연주했던 기억이 나요. 비 맞으면서 연주한 적도 있고요. 지금은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지만요. 가장 의미 있는 무대는 베이스 수석이셨던 고 이수호 선생님(지휘자 이병욱 부친)의 추모 연주회예요. 코리안심포니가 처음 생길 때부터 함께했던 분이었고, 저희에겐 정신적 지주이자, 감사한 선배님이셨죠. 연주회는 국립극장에서 진행됐는데, 추모연주회인 만큼 박수가 없는 엄숙한 무대였죠. 당시 이화여대 교수님께서 첼로로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를 연주하셨는데, 클라이막스에서 눈물이 쏟아져서 정신을 못 차렸던 거 같아요. 악보를 볼 수조차 없어서 악기를 내려놓고 엉엉 울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단원이 그랬던 거 같아요. 돌이켜보니 코리안심포니에서 희로애락을 다 겪은 것 같네요.


  

190회 정기연주회 '말러 교향곡 1번' 4악장 (지휘 최희준, 연주 코리안심포니)



바이올리니스트 김령 

오케스트라는 합이 굉장히 중요해요. 연습 중엔 우려스러운 부분이 꼭 한두 군데씩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본 공연에서 우려했던 부분이 ‘짠!’하고 맞았을 때 소름이 돋아요. 정수리부터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랄까요? ^^ 그렇게 합이 맞았다는 건 같은 시간에 단원들 모두 똑같이 집중했다는 뜻이거든요. 최근에 그런 경험을 했어요. 지난 5월에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을 연주했을 때였죠. 어려운 곡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불안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본 공연에서 시너지가 터지는 순간을 만났고, 다시 한 번 깨달았죠. ‘역시 우리 코리안심포니는 무대 체질이야.’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화합하면서 연주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베를리오즈는 <회고록>에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랑을 하면 음악이 떠오르고, 음악을 들으면 사랑이 생각날 수 있다. 사랑과 음악을 왜 분리하는가? 사랑과 음악은 영혼의 두 날개이다." 정말 멋지지 않나요? 그의 말처럼 이 둘은 제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두 날개입니다. 이 날개를 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훨훨 날고 싶네요.




글쓴이  이리 (공공문화 칼럼니스트)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에 능한데 끈기가 부족하다. 일 처리를 해놔야 속 편한데 게으른 편이다. 결단이 빠르고 성미가 급한데 만든 회사 이름이 '슬로우모어'다. 완벽한 문과 체질인데 뼛속부터 이과 체질인 남자와 살고 있다. 잘하는 건 없는데 시키면 다 한다. 부캐는 순수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는데 본캐는 철저히 상업 예술로 벌어먹고 산다. 한 마디로 일관성 없는 것이 일관적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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