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니스트 윤승호의 라이프러리
#I'm_ 나라는 사람
호르니스트 윤승호
어릴 때부터 음악과 친숙한 환경에 있었어요. 교회에서 성가대도 하고, 막내 누나가 성악을 해서 클래식에 물 흐르듯이 입문했죠. 호른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당시 교회 지휘자님이 호른을 전공하신 분이었는데, 제가 음악을 좋아하니까 호른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하시더라고요. 그때 조금 고민했죠. 아버지께서 한의학 분야에 종사하셔서 저도 그쪽 길을 걷길 내심 바라셨거든요. 하지만 2주 정도 고민과 상의 끝에 호른을 해보기로 했어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제가 뒤늦게 악기 전공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그래도 워낙 어릴 때부터 음악을 많이 접해서인지 생각보다는 빨리 적응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한국예술종합학교 3회 입학생이 되었죠. 당시 학교 커리큘럼은 꽤 빡빡했어요. 일주일에 전공 레슨 두 번, 오케스트라 두 번, 관악합주 두 번, 거기다 실내악 레슨까지… 한 주, 한 달, 한 학기가 훅 지나갔어요. 그래도 음악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가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지만 뭔가 확신이 서면 물불 안 가리고 추진하는 면도 있거든요.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는 연습에만 매진했어요. 그런 집중력이나 성격이 도움되었던 것 같아요.
76년생 윤승호
대학원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했어요. 결혼하고 약 한 달 만에 플루트를 전공한 아내와 함께 독일 유학을 가게 되었죠. 제가 먼저 학교를 들어갔는데 아기가 생겼어요. 그 바람에 아내는 학업을 조금 미루게 되었고, 둘째까지 낳으면서 타지에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유학생활을 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기에 제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재정적인 돌파구가 필요했기에 일자리를 찾던 중, 한 후배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그렇게 뮤지컬 <아이다>에 참여했는데 9개월 동안 300회의 공연을 했어요. 이후 교향악단에 들어가게 되면서 기러기 아빠 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졌어요. 제 은사님이신 이희철 선생님께서 당시 충남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김종덕 선생님께 저를 추천해주셔서 오디션을 봤고, 수석으로 입단하게 되었어요.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교향악단과 학교 측의 배려로 졸업은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가족들과 6년이나 떨어져 지내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었어요. 혼자 두 아이를 돌보면서 유학 공부까지 마친 아내와 어린 시절에 매일 함께 있어 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해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어요.
#Music_ 개인적 취향
76년생 윤승호
예전에는 운동을 좋아했는데, 대학교 때 무릎을 심하게 다친 후로 격한 운동은 못 해요. 영화, 드라마 보는 것도 좋아해요. 반전이 있거나 머리를 계속 써야 하는 추리물을 좋아해요. <유주얼 서스펙트>, <식스센스>, <셔터 아일랜드> 같은 영화들이요. 어릴 때는 만화책도 많이 봤어요. 판타지, 공상 과학을 좋아하는 취향은 지금도 남아 있어요. 요즘은 바빠서 취미생활 할 틈은 없는 것 같아요. 보통 출근하고, 연습하고, 학생들 가르치면서 지내는 게 일과예요. 최근에는 악보 사보 프로그램인 ‘피날레’를 공부하고 있어요. 그전에도 작곡 프로그램을 다뤄보긴 했는데, 오케스트라 버전의 악보를 소규모 앙상블 곡으로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직접 악보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꽤 재미있더라고요.
호르니스트 윤승호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하지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곡가를 묻는다면 '모차르트'예요. 호르니스트들에게는 모차르트는 특별한 작곡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어느 작곡가보다도 호른을 사랑한 작곡가거든요. 네 곡의 호른 협주곡을 비롯해 퀸텟, 실내악 등 다른 악기에 비해 호른 곡을 많이 썼어요. 이미 지난 시대를 살다간 인물이지만, 시간을 뛰어넘은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듯해요. 모차르트의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작곡가인지를 느끼게 해요. 저는 그의 음악이 정갈하고 깔끔하면서도 빈틈이 없다고 생각해요.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는 열 번도 넘게 본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부터 꽂히는 곡이 있었는데, 그 곡 때문에 LP도 샀어요. ‘레퀴엠 D단조, K.626’, 우습게도 이 작품이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이라는 것은 저는 나중에야 알았어요. 하지만 이 곡의 장대한 합창, 관악기들이 만드는 드라마에서는 강한 생명력이 느껴져요. 약 40분간 이어지는 8곡을 이어서 감상해보세요. 어떤 드라마보다 스펙터클하고 뭉클한 경험이 될 겁니다.
#Outlook_ 세계관
호르니스트 윤승호
사람 중에도 여러 타입의 사람이 있잖아요. 나서서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 남의 얘기를 듣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간의 장단점을 잘 섞어주고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호른이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을 일컬어 목관악기와 현악기,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를 잘 융화시켜주는 악기라고 하거든요. 악기 소리가 섞일 때 주로 호른이 중간에서 화성을 내는데, 저는 그 역할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솔로보다는 앙상블을 더 좋아해요. 실내악이나, 관악 합주도 좋아하고요. 호른으로 브라스 연주도 많이 하지만, 목관 악기나 현악기와도 잘 어우러져요. 다른 악기들과 함께 연주할 때 진짜 호른의 매력이 발산되는 것 같아요. 호른이 정말 가치 있게 느껴질 때는 오케스트라 안에서 연주할 때에요.
코리안심포니 단원 윤승호
입단 전부터 제가 코리안심포니와는 인연이 좀 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객원 연주를 한 곳이 바로 코리안심포니였거든요. 내로라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내가 악기를 불어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진짜 열심히 해서 나중에 이런 교향악단에 꼭 들어오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죠.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그 꿈은 현실이 되었고, 10년째 코리안심포니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프로 연주자로서 연주력을 유지하려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해요. 음악적으로 소홀해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는 편이에요. 특히 체력적인 고민이 커요. 보통 금관악기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 연주 수명이 짧은 편인데, 그중에서도 전 세계 오케스트라 연주자 중에 호르니스트의 연주 수명이 제일 짧다고 해요. 그러니 더욱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해요. 제가 독일 유학 때 만난 호르니스트 중에 페터 담(Peter Damm)이라는 분이 계세요. 당시 학교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하는데, 70대의 선생님이 학생과 나란히 연주하시는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연주하실 수 있는지 여쭤보니, 악기를 시작한 10살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2시간씩 연습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아주 오랫동안 좋은 소리를 내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함께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신뢰받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STAGE_ 무대 위 순간들
역시 첫 데뷔 무대를 잊을 수 없어요. 대학생 때, 강남교향악단의 객원 수석으로 예술의 전당 <교향악 축제>에 참여했었거든요. 그게 제 공식 데뷔 무대예요.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큰 무대에 서는 거라 엄청나게 떨렸어요. 그때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이 기억에 남아요. 이 곡 역시 호른 솔로가 굉장히 어렵다고 정평이 난 곡인데 큰 데뷔 무대를 무사히 치른 그때의 제가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좋았던 무대는 셀 수 없이 많아요. 지금까지 코리안심포니에서 했던 연주들이 저한테는 다 의미 있어요. 하나 고르자면 싱가포르에서 했던 공연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2악장’을 연주했는데, 이 곡이 호르니스트에게는 어렵고 부담되는 레퍼토리 중 하나거든요. 워낙에 긴 솔로를 연주해야 해서 연주할 때마다 긴장되는 곡인데, 싱가포르 공연 당시 연주가 무척 잘 됐어요. 인생에서 손꼽게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음악 하는 사람이 만족하면 안 되지만요. 그때 공연장도 연주도 무척 좋아서인지 기억에 오래 남아요. 사실 음악이 직업이 되면 마음껏 즐기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연주하는 사람이 즐겨야 듣는 분들도 즐겁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저의 연주를 보고 나서 기분 좋은 기억을 가져갈 수만 있다면 음악가로서 가장 행복한 일일 것 같아요.
기대되는 공연도 있어요. 7월 24일에 실내악 시리즈 '프렌치 시크' 공연이 있는데, 첫 무대로 프랑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의 ‘호른, 트럼펫과 트롬본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해요. 이 작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브라스와 달리 풀랑크만의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어요. 자주 볼 수 있는 편성은 아니라서 한 번쯤 들어보시면 좋을 거예요. 9월 24일에는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독주회 <가을밤의 소나타(가제)>를 열 예정이에요. 고음악이나 고음악 악기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번 기회에 베토벤의 호른 소나타를 옛날 방식으로 연주하려고 해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글쓴이 이리 (공공문화 칼럼니스트)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에 능한데 끈기가 부족하다. 일 처리를 해놔야 속 편한데 게으른 편이다. 결단이 빠르고 성미가 급한데 만든 회사 이름이 '슬로우모어'다. 완벽한 문과 체질인데 뼛속부터 이과 체질인 남자와 살고 있다. 잘하는 건 없는데 시키면 다 한다. 부캐는 순수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는데 본캐는 철저히 상업 예술로 벌어먹고 산다. 한 마디로 일관성 없는 것이 일관적인 사람.
7/24(토) 17:00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박인희, 김정(바이올린) 이경진(첼로)
이인영(오보에) 표규선(바순)
윤승호(호른) 최문규(트럼펫) 박성현(트롬본)
방준경(하프) 박미정, 최한결(피아노)
[프로그램]
풀랑크 호른, 트럼펫과 트롬본을 위한 소나타
생상스 바이올린과 하프를 위한 환상곡 Op. 124
풀랑크 오보에,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3중주
라벨 피아노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3중주
예매링크: https://bit.ly/3jsBq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