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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Jul 14. 2021

음악과 춤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인상주의 회화에 담긴 연희와 음악


활기찬 파리지앵들의 모습을 담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음악을 흠뻑 머금은 듯 경쾌하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발레리나들을 즐겨 그렸을 뿐만 아니라 공연 중인 오페라 가수와 오케스트라도 즐겨 그렸는데, 이들 작품은 공연 실황을 생중계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밖에 무도회에서 춤을 추거나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여인들의 투명한 피부와 풍성한 머릿결을 사랑했던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는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왈츠를 추는 연인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좌) 에드가 드가, <카페-콩세르에서 : 개의 노래>, 1877, 테르펜틴과 파스텔 (우) 오귀스트 르누아르, <도시의 무도회>, 1883, 캔버스에 유채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1862)에서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모여 있다. 마네의 또 다른 작품 <풀밭 위의 점심>(1863)이나 <올랭피아>(1863)에서처럼 특정 인물이 시선을 확 끌지는 않지만, 음악회를 즐기러 온 객석의 고조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작품이다. 배경 인물들이 작다고 해서 이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네는 자기 자신과 지인들의 모습을 그림 곳곳에 담았기 때문이다. 화면의 가장 왼쪽에 있는 이가 마네이며, 그 옆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은 동료 화가 알베르 드 발레로아, 그 옆에 앉아 있는 이는 조각가 자샤리 아스트뤽이다. 화면의 중앙에서 오른쪽 옆모습을 약간 보이는 이가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이며, 그의 등 뒤에 있는 안경 쓴 인물이 바로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이다. 그가 이처럼 실존하는 인물을 그려 넣은 것은 자신이 속해 있던 장소와 시간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에두아르 마네,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 1862, 캔버스에 유채, 118 × 76cm


이렇게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작품이건만 대다수 비평가는 이 작품의 가치를 그리 높게 사지 않았다. 그들 눈에 비친 그림 속 인물들은 윤곽과 형태가 흐리멍덩해 보였고, 심지어 점으로 처리된 인물도 있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작품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물들의 몸짓은 산만했고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봐왔던 아카데미 회화나 역사화에서는 군상을 이렇게 산만하게 다루지 않았었다.


하지만 실제 결혼식·장례식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비록 같은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시선을 돌리며 각기 다른 일을 보고 있다. 우리의 눈은 그 많은 사람을 한 번에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한다. 그저 몇몇 눈에 띄는 주요 인물만 포착할 뿐 나머지 인물들은 흐릿한 배경으로 존재한다. 마네는 산만한 미완성의 그림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화가의 시선으로 포착한 군중들의 개별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모습을 정직하고도 생생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의미 역시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구도상 오케스트라는 그림의 앞쪽에 있을 것이다. 과연 이들이 누구의 음악을 들으러 모였는지는 그림만 봐선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당시 사람들이 모이는 곳 어디에서나 자주 음악이 흘렀고 화가들은 이 활기찬 도시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화폭에 즐겨 담았다는 사실이다. 비록 음악과 미술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훨씬 전에 완성된 작품들이지만, 화가들이 음악이라는 풍요로운 소재를 재료 삼아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바야흐로 산업 사회와 대중 사회의 시대가 열리면서 신사 숙녀들의 멋진 패션이 등장했고 자유로운 여가 생활이 시작되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던 시절, 음악은 대중들에게 중요한 유희 거리였다. 일과를 마친 사람들은 한껏 멋을 내고 카페나 무도회를 찾아가 춤과 음악을 즐겼다. '자기만의 독특한 멋과 개성을 지닌 신사'라는 뜻의 '댄디(Dandy)'라는 단어가 유럽의 초기 산업 사회에 처음 등장했다. '인싸'들의 핫한 이슈가 모이는 이 즐거운 모임에 젊은 화가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1881, 캔버스에 유채, 96×130m


마네가 작품 제목에 그 당시 무도회장에 나온 음악의 곡명이나 작곡가 이름까지 넣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곡가 한 명을 작품에 등장시킨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는 당시 파리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 중 한 명이었다. 파리의 물랭 루즈(Moulin Rouge)하면 떠오르는 춤곡 '캉캉'도 그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Orphée aux Enfers)>의 서곡이다. 경쾌한 선율에 맞추어 다리를 쭉쭉 뻗어 올리는 드레스 차림의 무용수를 보고 있노라면 도시의 여흥과 환락이 느껴진다. 무용수들이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에 들어서면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들이 무용수들을 향해 달콤한 속삭임을 건네 오곤 했었다.


자크 오펜바흐, <천국과 지옥> 중 '캉캉'


<호프만 이야기(Les Contes D'Hoffmann)>는 오펜바흐의 말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독일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만든 곡이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B급 낭만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펜바흐에게는 독일의 낭만주의 소설이나 유럽의 오랜 전설을 감각적이고 유쾌하게 각색하는 재능이 있었다. 이 작품은 주인공 호프만이 기계인형과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배를 타고 가는 도중 한 여인의 꾐에 빠져 그림자를 잃어버리는 등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호프만 이야기>는 풍부한 서사를 담고 있는 만큼 다양한 연출의 오페라로 제작되고 있으며, 여전히 관객들은 '숲 속의 새들(Les oiseaux dans la charmille)' 일명 '인형의 노래'를 부르는 오페라 가수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폭소를 터뜨리곤 한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150년 전 파리 곳곳에 피어오르던 유쾌한 웃음소리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자크 오펜바흐, <호프만 이야기> 중 ‘인형의 노래’



글쓴이 정윤희 (미술비평가)

미술과 공연 작품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근현대 미술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편안하고 재밌게 쓰려고 노력하며, 그러면서도 본질을 꿰뚫고 싶다. 미술이라는 세계로 나를 이끌었던 것은 드가의 차가움, 가장 많은 위안을 받았던 것은 마티스의 명랑함이다. 고흐를 좋아하는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언젠가는 아이와 유럽의 미술관들을 기행 하며 책을 내고 싶다. 아이도 원한다면 말이다.



※ 이미지 출처

- 에드가 드가

Musée d'Orsay, Paris (https://bit.ly/3eclpD4)

- 오귀스트 르누아르

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 (https://bit.ly/3hClSke)

- 에두아르 마네

Gallica Digital Library (https://bit.ly/3wL9iU9)

- 자크 오펜바흐

Gallica Digital Library (https://bit.ly/3khAJ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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