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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Jul 28. 2021

은은하게 달콤하게, 천상의 노래

후기 낭만주의 음악과 리슬링 와인의 페어링

클래식 공연을 감상한 뒤 와인잔을 기울이는 일상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무더운 여름밤, 좋은 공연을 감상하고 음악에 잘 어울리는 와인을 차갑게 칠링해 즐긴다면 지금 꼭 필요한 힐링의 시간이 될 듯하다. 7월 30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 <천상의 노래>에서는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로 꼽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와 말러 교향곡 제4번을 연주한다. 독일 작곡가들의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공연인 만큼 독일 와인, 그중에서도 화이트 품종인 리슬링(Riesling)으로 생산한 와인이 훌륭한 페어링이 될 것이다. 


배경음악으로 감상하기 위해 편하게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곡이 있는가 하면, 마음먹고 음반을 꺼내 들게 되는 곡이 있다. 많은 이들에게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독일 와인을 접하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낄지 모른다. 발음부터 익숙해져야 하고 품질 등급이나 숙성 정도 등을 표기한 용어를 알아야 하니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을 준다. 하지만 독일 와인은 약간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정교하고 꼼꼼한 독일의 이미지답게 와인에 대해서도 체계적이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며, 소비자들은 그중에서 등급과 당도 등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알아도 맛있는 리슬링 와인을 고르는 데 부족함이 없다. 


독일의 와인 산지는 모젤강이나 라인강 같은 큰 강을 끼고 발달한 곳이 많다. 라인헤센(Rheinhessen), 라인가우(Rheingau), 모젤(Mosel), 팔츠(Pfalz) 등 대표적인 와인 산지를 비롯해 나헤(Nahe), 바덴(Baden) 등 총 13개의 생산지가 있다. 독일은 화이트 와인 강국으로 꼽히는데, 다른 주요 와인 생산국에 비해 북쪽에 위치해 기후가 서늘한 영향으로 레드 품종보다는 화이트 품종이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독일의 대표 품종인 리슬링으로 생산한 뛰어난 화이트 와인들은 국제적으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다른 국가에서도 리슬링을 생산하지만, 독일의 기후와 토양에서 생산한 리슬링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리슬링 포도 


산뜻하고 신선한 꽃향기와 특유의 페트롤 냄새, 미네랄 풍미가 특징인 리슬링 품종은 숙성을 거치며 진하게 농축된 꿀의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독일 리슬링 와인을 고를 때는 당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독일의 와인 등급 중 최상급에 속하며 가당이 허용되지 않는 프레디카츠바인(Pradikatswein) 등급은 리슬링의 당도에 따라 와인을 6가지로 구분한다. 수확 시 포도의 숙성도와 당분 함량을 기준으로 당도가 가장 낮고 대중적인 스타일인 카비넷(Kabinett), 그보다 늦게 수확한 슈패트레제(Spatlese), 좀 더 늦게 잘 익은 포도를 선별적으로 수확한 아우스레제(Auslese), 과숙한 포도로 만든 베렌아우스레제(Beerenauslese, BA)가 있고 수확이 늦어질수록 당도가 높다. 건포도처럼 쪼그라든 상태의 포도로 만든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enauslese, TBA)와 영하 8도 이하에서 언 포도를 수확해 만든 아이스바인(Eiswein)은 농축된 당분으로 진하고 깊은 단맛이 느껴진다. 


오래 숙성하지 않고 바로 즐길 수 있는 와인부터 장기 숙성 후 진가를 발휘하는 와인까지 리슬링으로 만들 수 있는 와인은 스펙트럼이 넓다. 개성 있고 표현력이 강하며 섬세한 품종이기 때문에 까다로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어느 자리에나 잘 어우러지며 동시에 고유한 매력을 발한다. 리슬링은 안주 없이 오롯이 그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균형감 있는 산도 덕분에 다양한 음식에 곁들이기 좋고 정갈한 한식 상차림에도 잘 어울린다. 리슬링 와인은 음식과의 페어링에만 그치지 않는다. 클래식 공연을 감상한 뒤 잔잔한 여운을 이어가고 싶을 때나 여름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즐길 때도 아주 잘 어울린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독일 리슬링 와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라인가우 지역의 라인강가에 자리한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Schloss Johannisberg)는 817년에 와인 생산을 시작했고 세계 최초로 슈패트레제와 아이스바인을 만든 전설적인 와이너리다. 오직 리슬링 와인만 생산하는데,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의 그륜락 슈패트레제(Grunlack Spatlese)’ 2019년 빈티지는 저명한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으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기도 했다. 그 명성만으로도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한 와인이다. 



모젤 지역에서 8대에 걸쳐 운영하는 마르쿠스 몰리터(Markus Molitor)는 모젤에서 가장 규모가 큰 와이너리다. 경사지에 있는 포도밭에서 손 수확한 포도로 뛰어난 리슬링 와인을 생산하는데, 로버트 파커의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으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모젤 지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떠올랐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젤팅거 존네누어 리슬링 아우스레제 화이트캡 3스타(Zeltinger Sonnenuhr Riesling Auseles white cap 3star)’는 섬세하고 복합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당도와 농축미가 돋보이는 와인이다.  




된호프(Donnhoff) 역시 이미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훌륭한 리슬링 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750년 나헤 지역에 설립된 와인 명가로 영국의 와인 전문지 <디캔터(Decanter)>가 선정한 ‘죽기 전에 마셔야 할 100대 와인’에 오르기도 했다. 1971년부터 양조를 책임지고 있는 와인 메이커 헬무트 된호프(Helmut Donnhoff)는 독일 와인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된호프에서 생산하는 여러 와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건 2018년부터 생산한 ‘니더하우저 클람 리슬링 카비넷(Niederhauser Klamm Riesling Kabinett)’이다. 니더하우스 구역의 뛰어난 포도밭인 클람(Klamm)에서 생산한 와인으로 싱그러운 과실 풍미와 세련된 산미가 어우러지며 고급 리슬링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당도를 즐길 수 있다. 



라인헤센 지역의 바인굿 빈터는 젊은 와인메이커 슈테판 빈터(Stefan Winter)가 이끄는 와이너리다. 1469년부터 와인을 생산한 역사가 있고 2000년대 이후 라이징 스타처럼 떠오르며 고급 와인의 반열에 올랐다. 2017년 독일의 미쉐린 가이드 갈라 디너에서도 바인굿 빈터의 와인이 사용돼 주목받았는데, 그만큼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리며 뛰어난 미네랄과 산미를 갖춘 와인을 생산한다. 레커베르크 리슬링 그로세스 게벡스(Leckerberg Riesling Grosses Gewach)는 40년 이상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생산하며 바인굿 빈터의 와인 중에서도 특히 섬세한 스타일로 꼽힌다.


노년의 작곡가가 가진 삶에 대한 달관의 시선이 묻어나는 ‘네 개의 마지막 노래’의 애잔한 정서는 드라이하면서도 약간의 잔당이 느껴지는 리슬링 와인과 닮았다. 한편 소프라노 솔로가 ‘천상의 삶’을 노래하는 말러 교향곡 4번 4악장의 밝고 순수한 정서는 리슬링 중에서도 다소 당도가 있는 아우스레제가 연상된다. 삶이란 결코 기쁜 날만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기억할 만한 찬란한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음악을 감상하며 확인할 때가 있다. 잘 만든 독일 리슬링 와인이 잔에서 입으로 흘러들어와 천상의 춤을 출 때처럼 말이다. 리슬링을 좋아했던 괴테는 "맛없는 와인을 마시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라고 말했다. 좋은 음악을 놓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그러니 오늘은 술이든 사랑이든 음악이든 아름다운 것들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천상의 노래'

7/30(금) 19:3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      휘 | 바실리스 크리스토풀로스

소프라노 | 이명주

연      주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프로그램]

R.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말러 교향곡 제4번 사장조


예매링크: https://bit.ly/3qVCBC8








글쓴이 안미영 (와인 칼럼니스트)

잡지사에서 문화예술 담당 기자로 일했고 몇 권의 책을 썼다. 클래식 음악과 와인은 문화의 가장 아름다운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계속 감상하고, 경험하고, 인터뷰하며, 열심히 쓰고 있다. 현재 와인21닷컴 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 사진 제공: 

- 하이트진로(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

- 올빈와인(마르쿠스 몰리터)

- 에노테카 코리아(된호프)

- 코스모 엘앤비(바인굿 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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