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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Aug 11. 2021

낯설고도 익숙한,
가깝고도 먼 신세계

미국에서 탄생한 곡들과 미국 와인의 페어링


와인에 관심은 있지만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들은 와인 생산국과 지역, 포도 품종이 워낙 많아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왠지 격식을 갖추고 마셔야 할 것만 같은 느낌도 와인에 괜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도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와인이 점차 일상에서 즐기는 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흔히 전통적으로 와인을 생산해오던 유럽 국가들을 구세계(Old World), 그 밖의 와인 생산국을 신세계(New World)라 하는데, 최근 ‘홈술’, ‘혼술’을 즐기는 트렌드 속에서 특히 신세계를 대표하는 미국 와인의 성장세가 돋보인다.


와인과 비슷한 이유로 클래식 음악에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음악 감상의 새로운 문을 열어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신세계>가 8월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미국에서 탄생한 곡들로 구성되었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연주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교향적 무곡’,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코른골트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드보르자크가 역시 미국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가 그 주인공이다. 뮤지컬 음악부터 대중에게 친근한 교향곡까지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다.


사진제공: 롯데주류


이날 연주될 곡과 잘 어울리는 미국 와인들이 있다. 정통 클래식에 재즈 요소와 남미풍 리듬을 가미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교향적 무곡’의 색채감은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의 와인들과 닮았다. 찰스 스미스는 미국 워싱턴주에서 활약하는 와인 메이커로 현재 미국 와인 메이커 중에서도 남다른 개성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전 10여 년간 음악 비즈니스에 몸담은 흥미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록 음악에 심취했던 그의 예술적 감수성은 와인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식스토 로드리게스(Sixto Rodriguez)의 이름을 딴 식스토 언커버드 샤르도네(Sixto Uncovered Chardonnay)’는 자신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와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와인은 찰스 스미스가 미국 최고의 샤르도네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오직 샤르도네만을 위해 론칭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미네랄과 산미의 어우러짐이 조화롭고, 부드러운 오크 터치가 느껴지는 와인이다.


사진제공: 제이와인


개성 있는 샤르도네가 남긴 여운은 레드 블렌드 와인으로 이어가길 추천한다. 바이올리니스트의 화려한 기교가 필요한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즐기기 좋은 와인은 마운트 피크(Mount Peak)의 와인이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작곡가 코른골트는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탄압하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 한동안 할리우드 영화음악을 작곡하던 그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화음악에서 벗어나 처음 작곡한 곡이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1886년 몬테 로소 빈야드(Monte Rosso Vineyard)에서 시작된 마운트 피크 와이너리는 캘리포니아의 10대 와이너리 중 하나로 성장했지만, 1920년에 시행된 미국의 금주령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와이너리가 폐쇄된 금주령 기간에도 빈야드의 포도나무들은 계속 자랐고 수십 년 후 마운트 피크 와인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오늘날 마운트 피크 와이너리는 올드 바인에서 생산된 포도로 뛰어난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운트 피크 그래비티(Mount Peak Gravity)’는 쁘띠 시라, 산지오베제, 진판델, 카베르네 소비뇽, 그르나슈의 5가지 포도 품종을 조화롭게 블렌딩해 풍부한 아로마와 복합미를 살린 와인이다. 마운트 피크의 와인 메이커인 마크 윌리엄스(Mark Williams)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양조 철학에서도 음악을 강조한다. 그는 “와인과 음악은 모두 열정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것이 탄생하는 장소와 깊게 공명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라고 말한다.


사진제공: 나라셀라


2부를 장식할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은 작곡가가 뉴욕에 체류한 시기에 작곡한 곡으로 부제인 ‘신세계로부터’는 그가 직접 이름 붙인 것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에 대한 감정과 고국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는 이 곡은 미국 와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Grgich HillsEstate)를 연상시킨다. 와이너리 설립자인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와인 메이커로 활약했다. 그는 자신의 와이너리를 설립하기 전 여러 곳의 유명 와이너리에서 근무했는데, 그가 만든 화이트 와인이 1976년 ‘파리의 심판’ 테이스팅에서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됐다. 이듬해인 1977년에 출발한 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는 그의 양조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한 와이너리다. 그르기치는 현재 나파 밸리에 있는 5개의 자가 소유 포도밭에서 14가지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100% 유기재배 인증과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받은 친환경 생산자다.

그르기치 힐스 나파 밸리 진판델(Grgich Hills Napa Valley Zinfandel)’은 그르기치 힐스가 소유한 포도밭 중 가장 따뜻한 곳에서 생산된다. 진판델은 이민자인 마이크 그르기치에게 고국의 포도 품종처럼 친숙한 인상을 선사해준 미국 품종으로, 실제로 크로아티아의 품종과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와인은 신선한 과실의 풍미와 후추 같은 향신료 향이 어우러져 적절한 무게감과 구조감을 이루는 것이 매력이다. 양념이 가미된 육류 요리, 피자, 파스타 등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2018년에 열린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 만찬주로 오르기도 했다. 


미국 와인은 대중적인 와인부터 쉽게 구하기 힘든 컬트 와인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다양성이야말로 미국 와인의 특징이자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고, 그만큼 가격 대비 뛰어난 품질로 인기를 얻고 있는 와인도 많다. 쉽게 즐길 수 있다고 해서 결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와인이든 음악이든 사람이든 편안함이 주는 안식이 있다. 꽉 조이는 슈트나 드레스를 입고 말초신경을 곤두세운 채 마시는 값비싼 와인이 주는 성공의 맛이 있는가 하면 헐렁한 파자마 차림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곁들여 마시는 하우스 와인이 주는 안온한 맛이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바라온 멋진 신세계는 가장 가까이, 가장 익숙한 곳에 있는 게 아닐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신세계'

8/22(일) 17: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      휘 | 크리스토퍼 앨런

바이올린 | 스베틀린 루세브

연      주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프로그램]

번스타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교향적 무곡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마단조 '신세계로부터'


예매링크: https://bit.ly/3lrE6qW








글쓴이 안미영(와인 칼럼니스트)

잡지사에서 문화예술 담당 기자로 일했고 몇 권의 책을 썼다. 클래식 음악과 와인은 문화의 가장 아름다운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계속 감상하고, 경험하고, 인터뷰하며, 열심히 쓰고 있다. 현재 와인21닷컴 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 사진제공

- 롯데주류(식스토 언커버드 샤르도네) 

- 제이와인(마운트 피크 그래비티) 

- 나라셀라(그르기치 힐스 나파 밸리 진판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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