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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Aug 24. 2021

어디선가 시작해야만 한다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과 샴페인의 페어링



역사적인 새 출발의 순간을 기념하는 무대가 있다. 바로 9월 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개화, 피어오르다>이다. 이 공연은 새롭게 단장한 해오름극장의 재개관을 축하하는 공연이다. 해오름극장은 2017년부터 무대와 로비, 객석 등을 전면 리모델링하여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최신 음향시설을 갖추면서 소리의 잔향과 입체감을 더욱 잘 느낄 수 있게 됐다.


새로 단장한 공연장에 처음으로 울려 퍼질 서양 관현악 음악은 과연 어떤 곡일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첫 곡으로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을 선택했다. 이어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김택수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더부산조',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 등 다채로운 음색을 감상할 수 있는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1부 첫 곡으로 서곡을 연주하는 것은 오케스트라 공연의 일반적인 구성이지만, 이번 공연에서 연주될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은 특히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리듬과 풍성한 음향, 화려한 전개로 관객들에게 축제 분위기를 선사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와인 중에서 클래식의 서곡 같은 와인을 꼽자면 단연 '샴페인'이다. 샴페인은 만찬의 첫 순서에 등장해 입맛과 분위기를 돋워줄 때가 많고,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싶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샴페인은 오픈하는 순간부터, 아니 고르는 순간부터 설레는 기분을 선사한다. 


흔히 스파클링 와인을 모두 샴페인이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프랑스 북동부의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생산하는 와인만 샴페인이라 부를 수 있다. 일상에서 와인을 즐기는 애호가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제는 이런 명칭에 대해서도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샴페인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품종은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뮈니에 3가지다. 화이트 품종인 샤르도네로만 생산한 와인은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이라 하고, 레드 품종인 피노 누아와 피노 뮈니에로 생산한 샴페인은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라 한다. 규정상 논 빈티지(Non-vintage) 샴페인의 경우 최소 15개월을 병 숙성을 해야 하고, 포도 작황이 좋은 특별한 해에 생산되는 빈티지 샴페인의 경우 3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1850년대 이전까지 샴페인은 당도가 높고 달콤한 와인이었다. 이후 드라이한 브뤼 스타일의 샴페인이 생산됐고, 지금은 다양한 종류의 샴페인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따라 주로 드라이한 샴페인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샴페인의 당도는 가장 드라이한 브뤼 나투르(Brut Nature)부터 엑스트라 브뤼(Extra Brut), 브뤼(Brut), 엑스트라 드라이(Extra Dry), 섹(Sec), 드미섹(Demi Sec), 두(Doux)까지 구분된다. 브뤼 나투르는 1리터당 당분이 3g 이하로 아주 드라이한 샴페인이며, 두는 50g 이상의 당분을 함유해 디저트 와인처럼 달콤하다.


장인정신으로 만든 프리미엄 샴페인이라면 모두 기품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같지만, 분명한 개성과 차이 또한 느껴진다. 각 샴페인 하우스의 전통과 철학, 테루아, 블렌딩 비율과 노하우, 당도 등에서 오는 차이가 샴페인의 고유한 개성을 만든다. 오늘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며 즐기기 좋은 샴페인 세 가지를 소개한다.



사진제공: 신세계엘앤비



먼저 100% 샤르도네만으로 생산한 '장 마크 셀레크 퀸텟(J.M Seleque Seleque Quintette)'은 샹파뉴 지역에서 떠오르는 생산자인 장 마크 셀레크가 생산한 엑스트라 브뤼 샴페인으로 4천 병만 한정 생산된다. 이 샴페인에는 다섯 개의 구획에서 생산한 샤르도네를 사용하는데, 그 의미를 담아 오중주를 뜻하는 '퀸텟'이란 이름이 붙었다. 각 구획은 샤르도네를 식재한 연도가 모두 다르지만, 마치 서로 다른 악기의 연주자들이 호흡을 맞춰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다섯 가지 샤르도네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사진제공: 하이트진로


떼땅져(Taittinger)는 1734년 설립된 와이너리를 피에르 떼땅져가 계승한 가족 경영 샴페인 하우스로 현재 전 세계 150여 개국에 수출되는 대형 브랜드다. 샹파뉴 지역에 약 300ha에 이르는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샤르도네 품종의 비율이 높다. '떼땅져 레 폴리 드 라 마께트리(Taittinger Les Folies de la Marquetterie)'는 떼땅져가 소유한 와이너리 '샤토 드 라 마께트리'의 싱글 빈야드 '레폴리' 밭에서 생산한 포도만 사용하고 샤르도네 45%와 피노 누아 55%의 비율로 블렌딩한다. 이 샴페인은 5년 이상 셀러에서 숙성한 뒤 출시해 복숭아를 비롯한 과실 아로마와 부드럽고 섬세한 기포, 뛰어난 균형감과 우아하게 이어지는 여운을 느낄 수 있다. 떼땅져 와인 중에서도 프리미엄급 샴페인이며 올해 초 한국에 출시됐다.



사진제공: 페르노리카 코리아



20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온 페리에 주에(Perrier-Jouet)는 문화예술과 인연이 깊은 샴페인 하우스다. 아티스트와 협업하기도 하고, 디자인 마이애미나 평창대관령음악제 등을 후원하기도 해서 국제적인 문화 행사에 페리에 주에의 샴페인이 자주 등장한다. '페리에 주에 벨에포크(Perrier-Jouet Belle Epoque)'는 아네모네 꽃이 새겨진 와인 보틀로도 유명한데, 이 문양은 1902년 아르누보 아티스트인 에밀 갈레(Emile Galle)가 이 샴페인의 화사한 아로마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것이다. 샤르도네 50%, 피노 누아 45%, 피노 뮈니에 5%를 블렌딩하여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흰 꽃과 과실 아로마가 매력적이다.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벨에포크의 의미처럼 로맨틱하고 우아한 스타일이 돋보인다.


스트라빈스키가 '불새' 초연을 마친 후 드뷔시에게 이 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선가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젊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불새'를 통해 보여준 새로운 시작은 환호와 호평을 받았다. 샴페인을 따는 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일…. 시작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샴페인이 특별한 날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축배를 들자. 생기 넘치는 음악과 샴페인 한 잔이 내일을 새롭게 시작할 힘과 용기를 부어줄 테니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국립극장

'개화, 피어오르다'

9/2(목) 19:30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지      휘 | 홍석원

바이올린 | 신지아

연      주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프로그램]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Op. 9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Op. 35 

김택수 오케스트라를 위한 '더부산조'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1919버전)=


예매링크: https://bit.ly/3ydvTck






글쓴이 안미영 (와인 칼럼니스트)

잡지사에서 문화예술 담당 기자로 일했고 몇 권의 책을 썼다. 클래식 음악과 와인은 문화의 가장 아름다운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계속 감상하고, 경험하고, 인터뷰하며, 열심히 쓰고 있다. 현재 와인21닷컴 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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